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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온 오리 Aug 14. 2024

그래도 웃으니까 좋다^^

아들과 나는 서로를 의지하며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 가고 있다.



한 시간 넘게 걸으니 숨이 좀 답답해 오는 게 느껴졌다.


"엄마 너무 눈부셔."


더웠다. 여름 방학이지만, 아들의 발목 깁스에 목발을 짚어야 하는 상황이라 집콕을 한 지 한 달 만에 동네 산책을 했다. 동네 보건소에서 무료로 휠체어를 대여해 준 덕분이다. 


그래도 시민 위원으로서 시 회의 참석하고 모니터링 다니며 주워 들은 건 많았는지 무료 휠체어 대여가 생각났다. 금새 보건소라는 걸 알아내 전화를 걸어 대기를 걸었다. 휠체어 한 개를 최대 한 달 대여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대기를 걸어 놓으면 먼저 사용 하던 사람이 무료 대여 했던 휠체어를 반납하면 다음 대기자한테 연락이 오는 순이다. 


이주에서 한 달 걸릴 수도 있다고 하더니 일주일 만에 금새 전화가 와서 고마웠다. 나와 아들은 한 달 만에 휠체어를 타고, 끌고 동네 산책을 했다.











집 전세 계약이 완료 됐다. 언제 되나 했는데 되려니 또 우습게도 쉽게 됐다. 하지만 내가 원하던 금액으로는 계약할 수 없었다. 내가 원하던 금액 보다 2천만원 싸게 계약을 해야 했다.

부동산에서 가격 내릴 생각은 없냐고 조심스레 눈치만 주시다, 그날은 보러 온 사람들이 바로 계약하고 싶은데 가격만 조금 내릴 수 없냐고 했단다. 우리 동에 있는 다른 집도 하도 안 나가서 그 가격에 내 놨다는 말까지 건네 주셨다. 알아 보니 그게 현실이었다.


나는 한 푼이라도 더 아쉬운 상황이지만 당장 생활 문제로 또 부모님과 지인들에게 걱정 끼치기도 싫고해 바로 계약을 했다. 전세 들어 오실 중년 부부 분이랑 부동산에 앉아서 얘기를 하는데 언니 분이 또 나랑 같은 교회 다니신단다. 우리 집을 제일 처음 본 건데 이 동네에 10년 이상 살아서 대충 아신다며, 보자마자 너무 깨끗하게 집을 잘 관리한 거 같아 마음에 드신단다. 그래서 첫 집 보자마자 금액만 맞으면 계약하자고 했단다.


이것도 인연인가, 사람 사는 일이 참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서로 연결 되어 이렇게 또 엮이는 구나 싶었다. 진짜 어디가서 나쁜 짓 하지 말아야지 하며 같이 웃었다.


그렇게 전세 계약을 하고 나니 나와 아들이 살 집을 빨리 결정해야 했다. 아들의 학교 근처로 가려 했더니 생각보다 더 낮은 가격에 전세 계약을 해서 쓰는 돈을 더 줄여야 했다. 이혼한 인간에게 재산 분할하기로 한 4천만원을 주기로 돼 있어 그것까지 지출에 넣어야 했다. 한숨만 나왔다. 진짜 남는 게 없었다.


다다음 날 아침, 일찌감치 일어나 아들과 아침밥도 못 먹고 휠체어를 타고, 끌고 밖으로 나갔다. 점점 휠체어를 타고, 끌고 걸을 수록 숨이 답답해 오는 폭염 속에서 걷고 또 걸어야 했다. 


"나 좁은 집 싫은데, 우리 살던 대로 방 3개 가면 안돼?"


아들은 너무 좁고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집으로 갈까봐 조금 걱정이 됐나 보다. 나는 웃으면서 부드럽게 타일렀다. 


"미안해. 지금은 그 인간이 대출, 위약금 등 자기 책임지기 싫고 손해 되는 거는 너랑 나한테 다 떠넘기고 가서 돈을 진짜 아껴야해. 최대한 깨끗하고 괜찮은 집 찾아 보자."


월세가 제일 싼 집은 집 주인이 부동산 오십 군데에 내 놨는데 너무 까다로워서 부동산들에게 아예 안 해 준단다. 그래도 물어봐 달라 했더니 아기도 아니고 초등생 아이인데도 아기나 아이 있는 집은 세입자로 싫다고 했단다. 애완동물 키우는 세입자도 싫다고 했단다. 신혼부부도 싫다고 했단다. 

도대체 어떤 세입자를 받으시려고 하는 걸까 싶은 의문이 들기도 하자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 다음으로 싼 집은 벌써 계약 하고 있는 중이라 안된다고 했단다. 


"아들 어때?"


"음, 괜찮네."


결국 보증금 2천 짜리로 월세가 좀 더 나가는 집을 계약해야 했다. 방 2개에 거실 1개와 화장실 1개가 있는 곳이었다. 그래도 집 근처에 있는 높은 건물로 조용하고 깨끗하게 쓰신 집이었다. 세탁실은 없었다. 작게라도 테리스조차 없는 집이었다. 세탁기는 주방 싱크대 옆에 놓을 수 있게 돼 있었고, 건조기는 거실 구석에 놓아야 할 거 같았다. 


그래도 아들이 구경하더니 괜찮은 편이라고 했다. 나도 청소만 깨끗이 하고 들어옴 되겠다 싶어 바로 계약을 했다. 그것마져 놓치면 더 부담이 될 거 같았다. 








아들과 나는 오전 9시 전부터 휠체어를 타고, 끌고 나와서 폭염 아래서 계속 돌아 다니느라 더위에 지쳐 있었다. 일을 다 끝내고 보니 오후 2시가 다 돼 가고 있었다. 너무 배가 고팠다.

아들은 자신이 자주 가던 백화점 안의 돈까스 전문집에 가고 싶어 했다. 나도 너무 배가 고파서 뭘 따지고 계산하고 망설이고 할 겨를이 없었다. 그래, 오랜만에 가서 먹자 하고 아들이 좋아하는 돈까스 집으로 들어 갔다.


우리는 먹으니까 살 거 같다며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식당 안에서 진짜 맛있게 먹으며 웃었다. 아들과 나는 웃으며 그래도 웃을 수 있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인간 때문에 올해 초부터 정말 힘들었는데 이제 마음만은 편하게 웃을 수 있어서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는 참아주고 참고 사는데 한계를 느낀 결정으로 인해 지금 당장은 초라하다. 앞으로 어떻게 살지 걱정도 한 가득이지만, 아들과 둘이 마주 보며 웃을 수 있어 좋았다. 


"엄마 사람이 숨을 쉬어야 하잖아? 이제는 숨은 편하게 쉴 수 있어 좋다."


아들의 말에 나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지금의 나는 나이가 어린 것도 아니고, 부모님처럼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빚도 해결해야 하고, 아들을 고생 시킬 일이 생길까봐 미래가 불투명하고 알 수가 없다. 

남동생이랑 통화할 때마다 부모님이 제일 부럽다고 하는 중이다. 빚 하나 없으시고, 연금 따박따박 나오시고, 그래도 이 동네(나름 드라마나 뉴스에도 나오기는 하는 동네다.)에서는 제일 비싼 아파트에, 각자 갖고 계신 현금에, 제일 부러운게 부모님이다. 우리도 부모님처럼만 돼자 하고 서로 힘내라고 응원하고 버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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