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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온 오리 Aug 30. 2024

이제 상처도 비워 버릴 때다.

늬들 지금 나한테 뭐하니? 다른 사람 배려하고 사랑하는 법은 안 배웠구나



아들이 목발을 뗐다. 나는 바로 휠체어를 보건소에 반납 했다.

아들은 자신이 이제 걸을 수 있다며 좋아라 하며 학교에 등교를 했다. 나도 이제 학교 교실까지 올라가지 않아도 됐다.

아직 두 달은 그래도 과격하게 운동하지 말고, 뛰지 말고 조심은 해야 하지만 그래도, 아들과 나의 두 달 동안의 집콕 여정이 끝난 것이다.


그리고 매일은 아니지만 이사 준비로 은근 바쁘다. 거실에 있는 스마트 에어컨을 처음으로 청소 했다. 에어컨 청소 업체를 불러서 정말 깨끗하고 시원하게 청소도 했다.

나를 위해서, 이사 들어 오실 세입자 분들을 위해서 마음까지 시원해지도록 청소를 했다.


조정 판결 나고, 구청에 신고해 서류까지 정리 되고 나서 더 바빴다. 행정 복지 센터로, 고용 복지 센터로, 몇 번 씩 왔다 갔다 해야 했다.

조정 판결 나고 그 인간이 애 이름으로 10만원 짜리 보험을 또 들었다 해서 아이 이름으로 통장 개설하거나 핸드폰 개설하거나 할까봐 법적인 문제도 알아 봐야 했다. 몇 년 전에 법이 바뀌어서 기본 서류에 친권자라고 기재가 안 돼 있으면 기본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확인을 받고서야 조금 안심을 했다. 친권자가 아니면 애이름을 아예 사용 못한단다.

모든 걸 내 명의로 유기하고 사용한 채 모든 걸 떠넘기고 간 인간이다. 애 이름으로 뭐라도 잘못 사용해 아이를 신용 불량자를 만들까봐 나는 신경이 곤두설 수 밖에 없다.


나는 그렇게 또 다른 처리와 정리들을 하고 있었다. 이사 가면 지금 올리고 있는 소설 4개를 열심히 쓰고 싶다. 브런치 공모전도 이번에 응모할 수 있으면 하고 싶다.









그렇게 잊고 있었다. 아니 잊지만 않았지만 이제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이미 지금까지의 소송으로 지쳐 있었다. 여건상 조정으로 끝내느라 위자료에 대한 벌을 제대로 주지 못한 게 조금 분하기는 했다.


그런데 오늘, 다음주에 있을 상간녀 변론일 때문에 상간녀가 변론서를 제출했나 보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첨부 파일과 함께 mail이 전송돼 왔다.

파일을 여는 순간 나는 '이것들이 지금 나한테 뭐하는 거지?'란 생각 밖에 안 들었다.


그 인간한테 여자가 또 있었다며 그 여자와 톡을 주고 받은 증거를 제출했다. 그리고 자신은 채무 관계라며, 자신을 상간녀라 칭하지 말아 달라고 써 놨다. 미안하다는 말은 단 한 마디도 없었다.

카톡 프로필에는 '나는 나를 너무 사랑한다.'라고 올려 놨다. 기가 막혔다. 채무 관계인데 호텔을 가고, ;여보'해 가면서 통화를 하고, 19금 관계 맺었던 얘기를 그렇게 웃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떠들었구나 싶었다.

더 기막힌 건 그 통화를 가지고 자신을 상대로 소송을 할 거라고는 정말 생각도 못했어서 당황스럽다는 듯 써 놨다.


한편으로는 '여자가 또 있다고?' 싶은 생각에 기가 막혔다. 내가 진짜 가정이란 걸 꾸리면 안 되는 정말 개 같은 인간이랑 살고 있었구나 싶었다. 인생이 뭐 이 따위인가 싶어졌다.

도대체 내가 무슨 죄를 그렇게 졌길래 저런 인간과 살고 있었던 거며, 상간녀는 또 나에게 얼마나 더 상처를 주고 싶어서 그걸 증거로 내며 나에게 알리는 걸까 싶었다.

그 인간은 그러면서도 부끄러움도 미안함도 없이 아들을 만나고 싶어 했다는 게 나는 도저히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갔다. 아들이 아빠를 만나고 싶어 하지 않으니 다행이지, 이 무슨 사람 같지도 않은 것들이 나랑 엮인 건지 그냥 기가 막혔다.


진짜 너네들 지금 나한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 알고는 있니?, 묻고 싶었다. 자신을 너무 사랑해서 남을 사랑하는 법은 전혀 못 배운 무지들이구나 싶었다. 정말이지 사람으로서 기본 매너나 예의는 아예 배우지도 않았구나 싶었다.


나는 집에서 가까운 롯데 마트로 달려 갔다. 제일 싼 로제 와인을 한 병 골라 결제를 했다. 그리고 집에 와 김치와 라면을 안주 삼아 딱 반 잔만 따랐다.

소송을 진행하면서 그 인간 때문에 스트레르도 위염 끼가 몇 달을 진행돼 그렇게 좋아하는 커피도 거의 끊다시피 하며 보냈다. 원래 술을 즐겨 마시지도, 많이 마시지도 못하지만 입에도 안 댔었다.

그런데 오늘은 반 잔 만이라도 마시자 싶었다. 그 인간이 와인 잔을 다 갖고 가 버려 아는 동생이 선물로 준 잔에 그냥 따랐다.

한 모금씩, 한 모금씩 홀짝 거렸다. 그러면서 너희들 보란 듯 정말 잘 살아야 된다는 생각만 들었다. 언젠가 우연히라도 마주쳤을 때 늬들 덕에 나는 이렇게 능력 키우고 아들이랑 부족함 없이 잘 산다는 모습 못 보여 줌 나는 정말 한이 맺힐 거 같다는 생각만 끓어 올랐다.


몇 달 만에, 진짜 몇 - 달 만에 제일 싸구려 로제 와인을 딱 반 잔만 혼자 홀짝이고 있다. 이젠 같지도 않은 상처도 다 비워버릴 차례다.









"엄마."


"왜?"


"어떤 사람이 일곱 번이나 번개를 맞았대. 그런데 더 놀라운 건 7번이나 번개를 맞고도 안 죽었대. 엄마, 7번이나 번개를 맞을 확률이 얼마나 되는 줄 알아?"


"글쎄, 엄마는 모르겠다."


"4백양이래."


모르는 숫자 단위다. 그만큼이나 찾기 힘든 확률이라는 거겠지?


아들아, 우리 그 어려운 확률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너와 내가 당당하게 우리 일상의 성공을 걸어 보자. 이제는 오직 너와 나만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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