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 첫눈이 무서웠던 출근길

택시는 잡히지도 않았다. 쌓이고 쌓이는 눈 길 위를 걷고 걸어서...

by OH 작가



"택시도 안 잡혀."


아무리 콜을 눌러 봐도 택시는 배정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도시 한복판의 전철역이 버젓이 있는 거리는 평소와 다르게 차들도 거의 없었다. 차들의 속도도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조심스러웠다. 버스도 거의 안 보였다.


아들은 내 얼굴을 쳐다 봤다. 그리고 하얗게, 정말이지 온 세상이 하얗게 쌓인 거리를 쳐다 봤다. 그러고 있는데 학교 알림이 떴다. 폭설로 인해 학교 등교가 오전 10시까지로 조정 되었단다. 같은 반 엄마들의 단톡방도 알림이 울리기 시작했다.


"걷자, 아들. 오늘 같은 날은 어쩔 수가 없다."


"엄마, 출근 안 늦어?"


"오늘 같은 날은 늦지 않는 게 더 이상해."


나는 아들과 걸어서 15분인 학교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시에서 재설 작업조차 쉽지가 않은지 시청과 전철역이 버젓이 자리한 도시 속 거리의 한 복판이 무섭게 내린 눈으로 가득했다. 하얀 첫 눈으로 쌓이고 쌓여서 나뭇 가지들 위에도 빈 틈없이 하얗게 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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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 넘어질까봐 차고 미끄러운 눈길을 아들과 함께 걸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걷기가 힘들었다.


아들의 학교 앞은 더 가관이었다. 대책 없이 쌓인 눈을 누구도 치울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시의 재설 작업 트럭이 학교 골목으로 들어 오긴 했지만 눈길에 빠져 오도가도 못하고 있었다. 어떤 여자 분은 경차를 끌고 나왔다가 경차가 눈길에 갇혀 꼼짝도 못 하고 있었다.

도시 한복판의 아파트 단지 바로 옆 길가에는 가지 위에 쌓인 눈의 무게를 못 견디고 길 위에 쓰러져 있는 나무들까지 한 두 개가 아니었다.


나는 아들을 학교 바로 옆 친구네 집에 데려다 주고, 다시 바로 집 앞에 있는 전철역을 향해 걸었다. 시외버스는 줄이 너무 길어서 탑승까지 30분은 넘게 걸릴 거 같았다.


넘어지지 않게 조심스러운 발걸음과 조급한 마음으로 전철역에 겨우 도착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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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을 두 번이나 보냈다. 몇 년 만에 정말 무섭게도 내리는 폭설에 도로 상황은 물론이며 거리 상황 자체가 최악이었다. 전철 안은 만원일 수 밖에 없었다.


비집고 전철을 타, 사무실에서 제일 가까운 전철역에서 내렸다. 15분에서 20분을 눈 쌓인 거리를 걸어서 사무실에 도착 했다.


나름 부자 동네 중 하나이자 신축 아파트들이 즐비하고, 강남으로 바로 빠질 수 있는 10차선 대도로변이 길게 뻗은 거리를 지나 5분 정도 걸어 들어 오면 의외의 흙길이 나타난다. 시멘트로 길이 닦여 있지 않은 그 흙길 안쪽에 컨테이너로 된 사무실이 있다. 컨테이너로 된 사무실이지만 그 사무실 안에는 있을 게 다 있다. 화장실도 있고, 대형 냉장실도 있다. 전동차인 코코를 7대에서 8대는 주차해 놓을 수 있는 공간도 있다. 점장님과 사무 경리의 책상도 나란히 놓여 있다.

그런 사무실 앞은 개인 텃밭들이 꽤 넓게 펼쳐져 있다. 사무실 옆에는 산이 있다. 사무실 한 쪽 옆에는 3층 짜리 개인 저택이 지어져 있다. 그 옆에는 또 짓다만 3층 짜리 건물이 버젓이 방치돼 있다.


그런 사무실 앞의 길들도 하얀 눈으로 꼼꼼하게 쌓여 있었다. 자동차를 끌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 제품 배달을 위해 회사에서 제공하는 전동기인 코코도 도저히 드나들 수 없을 정도였다.


한 마디로 2024년의 첫 눈이자, 폭설인 하얀 눈의 기습으로 내가 출근한 사무실은 하루의 영업과 매출을 망쳐 버린 거다.


점장님은 새벽에 나오셔서 매니저 여사님들에게 코코가 드나들 수 없고, 일을 할 수 없을 정도이니 사무실로 오지 말라는 문자를 전송하셨다. 그리고 혼자 사무실 앞에 쌓이고 쌓인 하얀 눈들의 한 가운데를 장장 4시간에 걸쳐 쓸어 버리고 겨우 길을 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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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는 직원이기에 늦어도 출근을 안 할 수 없는 나와 점장님만 출근했다. 본사 직영점인 사무실의 업무는 처리해야만 했다.

사무실 안의 대형 냉장고 안에는 하루를 공쳐 버려서 쌓인 발효유 제품들과 우유 제품들, 신선식 제품들이 출고도 못한 채 쌓여 있었다.

나는 재고 정리를 하며 머리가 지끈거렸다. 안 그래도 아직 초보에 미숙한 나다. 안그래도 우유 주문 갯수를 잘 못 맞춘다고 답답해하는 점장님의 눈치가 보였다.


유통기한 관리가 중요한 제품들 천지다. 유통 기한을 넘기고 배달을 못 하게 되면 사무실의 여직원과 점장이 책임을 져야만 할 거다.

사무실 안을 왔다 갔다 하시는 배달 매니저 여사님들만 18명에서 20명이다. 매일 배달 제품을 챙겨 나가는 사람들 손만 여럿이다. 출고장도 있고, 각자 갖고 나가는 제품들의 갯수를 적어 놓고 확인하지만 제품의 갯수가 안 맞을 때가 있다. 마이너스 나는 제품들도 못 찾으면 점장님은 여직원과 점장이 책임을 져야 한다면 CCTV를 뒤져서라도 찾아 내라고 하신다.

하지만 그걸 찾아 내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하물며 이렇게 공쳐 버린 날, 유통기한이 중요한 제품들이 처리 되지 않으면 정말 골치 아프고 곤란해질 수 밖없다.


아-아-악, 하얗게 흩날리는 첫 눈이 이렇게 싫은 적은 처음이다.

더구나 전임자는 사무실에 출 퇴근한 지 한 달 밖에 안 됐다며 아는 것만 대충 알려 주고 갔다. 그 전에 전임자하고는 일면식도 없고 연락처도 모른다. 점장님은 이것도 저것도 다 모르신다며, 다른 지점 부점장들에게 물어 보거나 알아서 해결하라신다. 점장님 본인의 업무와 스트레스 만으로도 짜증이 나시는 거 같았다.

그래서인지 점심 밥도 잘 안 드신다. 전임 담당 매니저와 새로 온 신입 매니저 인수인계 일을 함께 봐야 한다고 아침에 나가셔서 오후에 들어 오신다. 냉장고 안의 제품 오전 재고 파악을 나 혼자 다 하다가 조금이라도 실수 하면 기본도 안됐다는 듯이, 이렇게 잘못 체크해 놓으면 안된다고 짜증이시다.


우유 주문 수량을 못 맞춘다고, 제일 기본 업무부터 제대로 빨리 숙지하라고 답답해 하시며 카톡으로 누군가에게 내 흉을 보셨는지, 너무 몰아 붙이지 말라고 답장 받는 걸 봤다. 보고 싶어서 본 게 아니다. 업무 처리땜 점장님 책상 앞에 갔다가 컴퓨터로 로그인 해 놓은 카톡이 우연히 보였을 뿐이다.


인수인계도 제대로 받지 못한 상황이고, 다른 지점들 사무 경리들은 "과장님 안 계세요? 과장님께 물어 보세요."라고 물어 보기도 한다. 내 상황을 듣고 질문이 많을 수 밖에 없고, 못 알아 듣는 게 많은 나한테 뭐라 길게 말하지도 못하고 끊는다.

매니저님들도 답답해 하시면서도 결국 몇 몇 매니저님들은 "쟤를 잡을 일이 아니라니까. 일을 잘 알고 잘 하는 애한테 인수인계를 받았어야지 뭘 알지. 한 두 달만 잘 배워봐. 그럼 되지?"라고 말해 주실 정도다.


사회는 냉정하고, 알아서 일을 잘해 내는 것도 능력이라지만 나로서도 점점 소화가 안되고 힘들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 그런 상황에 냉장고 안에 출고도 못하고 쌓인 우유들을 보며 한숨만 나왔다. 유통기한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 제품들을 어떻게 현명하게 출고 시키고 수량을 맞출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하얀 눈이 내리고 쌓이면 팔짝 뛰며 좋아하던 십 대가 아니다.

아침에 학교 등교를 위해 도시 한복판 도보에 쌓인 눈길을 헤치고, 힘든 발걸음을 조심스레 옮기면서도 그래도 눈 싸움 할 수 있다고 좋아하던 초등 아들의 얼굴이 생각났다. 그 초등 아들 옆에서 미끄러질까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걱정이 앞섰던 내 모습이 생각났다.


그러게, 나는 어느새 어른이다. 눈이 내리고 비가 내리면 운전이 신경 쓰이고 힘든 출 퇴근이 신경 쓰일 나이의 어른이다. 하루의 일과가 평소보다 평탄하지 않을 골치아픔이 더 걱정되는 어른이다.


아-아-아-악, 온 세상을 한 치의 빈 틈도 없이 덮어 버린 하얀 세상이 아름답게 빛나는 것을 천진난만하게 좋아할 나이가 아니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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