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돌아온 오리 Nov 12. 2024

본격적인 워킹맘의 하루

싱글맘이 워킹맘으로서 내딛는 첫발은 생계다



"내일은 안 될 거 같고요. 모레 면접 보실래요?"


맘 카페에 뜬 공지를 보고 그냥 전화해 본 거였다. 될 거란 생각도 못했고, 연락이 올 거란 생각도 못했다. 아직 국민 취업 지원을 받고 있는 중이라 20일부터 사무 행정 컴퓨터 수업에도 들어가기로 돼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뜬금없이 갑자기?


내가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싱글맘이 된지 어느 새 4개월이 다 돼 간다. 소송 시작 했다고 생활비 끊긴지는 9개월 째고, 조정 이혼으로 마무리 하고 양육비도 안 들어 오고 있다.

이혼하고 제일 먼저 느낀 건 생계였다. 계절 바뀌어 매년 사 주던 아들의 옷, 아들의 학원비, 아들과 나의 식비, 자잘하게 들어가는 소소한 소비들 때문에 살아야 했다.










지겨웠다. 상간녀의 항소 이유장을 받아든 나는, 너는 진짜 아직도 그 놈에 대해 잘 모르는구나 싶었다. 상간녀와 이혼 소송하면서 둘이서 낸 변론서를 그냥 갖다 붙여서 더 부풀려 놓은 거 빼고는 다른 증거도, 다른 이유도 없었다.

미안해서 어쩌나 싶기도 했다. 나는 너희들이 말한 그것들에 대한 증거와 증인들이 넘쳐나는데 그 놈이 그 얘긴 안해 줬나 보다. 그쪽 변호사들도 참 딱하다. 투명하게, 솔직히 다 까놓고 자신의 얘기를 다 한 것도 아닌 인간들 변호를 맡은 건가 보다. 하긴, 그 놈이 나한테도 철저히 숨기고 한 결혼인데, 너한테라고, 변호사들한테라고 다 얘기를 했을리 없다.


그런데 얘들아, 나 바쁘다. 나도 변호사한테 맡겨 놓고 아들이랑 살아가야해 바쁘다.



나는 금요일에 첫 출근을 했다. 면접을 보고 함께 면접 본 젊은 친구들을 보고 안 되겠거니 했다. 내가 제일 나이가 많았다. 아니, 나만 마흔 대에 제일 나이가 많은 거 같았다. 더구나 나는 엑셀을 만진 지 오래다. 대충 하면 만지기는 하겠지만 수식을 어떻게 하는지 잘 기억이 안난다.


그런데 최종 면접 심사에 나랑 한 명이 더 올랐는데 고민 중이라더니, 나에게 물으셨다.


"진짜 되시면 아이 학교 등교 문제나 아이 케어 문제 등 일에 맞추시고, 어려움 극복해 가며 하실 수 있겠어여? 오래 하실 수 있겠어요?"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아들하고는 이미 대화를 나누었었다.


"이제 엄마랑 너랑 살아가야 하잖아. 그러면 돈이 필요하고, 엄마가 일을 하고 돈을 벌어야 네 학원비도 내고, 네 옷도 사 주고, 우리 먹고 싶은 것도 사 먹을 수 있잖아. 그러니까 엄마가 일을 하면 너랑 엄마랑 학원 시간 조절도 잘 해서 협의를 해야하고 서로 도와야 하는데 할 수 있겠어?"


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엄마 얼마 벌 거냐고 물었다. 나는 참 웃펐다.

 나를 바라보는 아들의 질문에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게, 엄마 돈 많이 벌고 싶은데 일 해보고 부딪혀 봐야 알겠지 싶은 생각만 들었다.


어찌 됐든 나는 결국 면접에 합격해 금요일에 첫 출근을 했다. 배달 매니저로 일했던 대기업의 직영점 사무실이다. 4대 보험도 되고, 한 달 월급도 200만원이 넘는다.


나와 아들이 사는 동네의 바로 옆 동네지만, 요즘 차가 밀리기에 차 몰고 16분이면 갈 거리를 30분 가까이 걸렸다.


출근은 한 마디로 전쟁이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아침밥을 준비하고 7시에 아들을 깨운다. 세수 시키고 아침밥 먹고, 학교 도서관이 문을 여는 8시까지 학교에 등교 시킨다.

그러고 나면 나는 부리나케 사무실로 간다. 오후 5시 30분까지 일하고 나면 바쁘게 또 아들의 마지막 스케쥴 학원으로 데리러 간다. 그리고 아들과 다정하게 집으로 와 청소기를 밀고, 물걸레질을 하고, 저녁 밥을 챙겨 먹는다. 그리고 2시간 정도 쉬고 나면 부지런히 잘 준비를 한다.

다음 날 아침을 위해서.









첫 출근하고 쉬는 다음 날, 토요일에 열이 내려가질 않았다.

오전 9시에 아들과 이비인후과에 가 나란히 진료를 받고 집으로 와 콧물, 기침, 가래를 가라 앉히는 아침 약과 점심 약을 챙겨 먹었다. 그런데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오후 4시 47분쯤 119화 통화를 해 확인을 하고 타이레놀 해열제 한 알을 챙겨 먹었다. 그런데 열은 점점 더 높이 올라가고 있었다.




저녁 8시가 넘어가면서 나는 결국 아들도 걱정되고, 출근이 걱정돼 응급실로 뛰어 갔다.

집에서 걸어서 10분도 안걸리지만 도저히 걸어갈 몸 상태가 아니었다. 재빠르게 택시를 잡아 탔다. 열이 39도가 넘었다.

응급실에서는 피 검사, 소변 검사를 진행하고 X-ray를 찍었다. 결과가 나올때까지 응급실 침대에 누워서 해열제가 포함된 수액을 계속 맞았다. 2시간 넘게 수액만 3봉을 맞은 거 같다.


초기라서 안 잡히는 것일 수도 있고, 다른 바이러스라 안 잡히는 것일 수도 있다며 검사 결과는 별 다른 이상이 없단다. 염증 수치가 낮단다.

겨우 열을 37.7도로 내리고 아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 갔다. 아들과 나는 주말을 누워서, 그냥 누워서 쉬었다.


그리고 나는 다음 날 아침, 이를 악물고 새벽 6시에 일어나 아침밥을 차리고 7시에 아들을 깨워 함께 밥을 먹었다. 도저히 운전도 불가 했고, 렌트카를 이미 반납했다. 아들을 8시까지 택시로 학교에 등교 시키고, 나는 그대로 그 택시를 타고 사무실로 향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하지만 일을 해야 했다.


열은 아직도 37도로 유지되고 있다. 지끈거리는 두통은 이제 좀 가라앉을 듯 하고 있다. 그렇게 이틀을 병원에서 준 약과 해열제로 버티며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이전 26화 2025 스타벅스 다이어리가 탐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