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거미줄

시집 모른다 아직은

by OH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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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거미줄



대문을 박차고 걸어

나간다, 집 앞의 천을 따라

한참을 걷다가 외진 골목으로

들어가 한적한 등산로로

걸어 올라간다


깊숙히, 깊숙히 들어가

버린다,

큰 나무 위에 걸린 거미줄,

한 줄 한 줄 엮이고 엮여

나무의 가지들을 넓게 둘러싸고

있는 그 거미줄, 나는 거미가 되어

그 거미줄 위로 올라가 기어간다


저기 저, 거미줄 가운데

두 마리의 거머리가 보인다,

거미줄에 나란히 걸려 벗어나려

발버둥 치는 그 거머리 두 마리를 향해

나는 거미가 되어 기어간다


내 차 안, 블랙 박스 안에서 들었던

나와 결혼 반지를 나눠 낀 그 남자와

간드러지게 웃으며 깔깔 거리는

그 여자의 목소리가

거미가 된 내 빨간 눈 안에서

이글거리며 타오른다,


여봉, 비가 내려, 너와 함께 부비부비 해야는데, 너만 보여, 집에 있으면 그 새끼(아들)가 자꾸 뭐 해 달래서 짜증나 너한테 갈까?, 기억나? 내가 그날 많이 안아 줬자나, 너를 닮은 딸을 낳고 싶어, 너한테 갈게, 지금 가고 있어, 우리 이대로 잘 만나고 있잖아, 조심해 그녀가 들으면 어떡해, 너와 나만의 비밀인데, 그녀에게 너를 닮은 딸을 낳아 나에게 달라 해, 어서, 너는 나만 보면 되잖아


나는 아주 빠르게 기어가

그 거머리 두 마리를 집어

삼킨다, 망설임 없이 집어 삼켜서

부서지고 부서져 가루가 되도록

씹어 먹어 버린다


나는 거미줄 위에 사는

거미가 되었다, 거미줄 위의

포식자가 되어 그 거머리들을

집어 삼켜 버리는 거미가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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