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도 아픈 것 같다."
회사에서 업무를 하다 문득 든 생각입니다. 회사 입사 후 영업 직무와 엔지니어 직무를 거쳐 인사팀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회사의 다양한 문제를 마주하였습니다. 태만한 직원, 직원 간의 갈등, 서로 업무를 미루고 책임을 전가하는 부서들, 미래를 등한시하고 근시안적인 결정을 내리는 경영진. 회사의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위치에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회사의 이면과 민낯을 보게 된 것이죠.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직원들이 경영진을 욕하거나 서로를 물어뜯고 있었고 익명의 회사 카카오 오픈채팅방에서는 "이직이 답이다.", "탈출은 지능순." 같은 글들이 난무하였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다니는 회사가 다 무너져 망해가는 곳은 아닙니다. 2024년 10월 기준 대한민국 시가총액 30위 안에 드는 건실한 기업에 다니고 있습니다.)
회사'도' 아픈 것 같다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저도 몸이 아프기 때문입니다. 코로나와 회사 스트레스가 주된 원인으로 생각되는데 대장에 궤양이 생기고 자율신경기능에도 장애가 생겼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건강을 잃고 개인적으로는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떻게든 건강을 되찾고 싶었던 저는 살기 위해 내 몸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몸의 각 기관들의 작동원리를 공부하고 왜 병이 생기는지를 공부했습니다.
그러다 한 가지 (개인적으로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회사라는 조직이 인간의 몸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있다'라는 사실입니다. 이 생각은 발전해 '건강한 조직은 건강한 인간의 몸과 닮아있다.'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수 조개의 세포가 모여 하나의 개체를 이루고 개체 속 다양한 기관이 서로 협력하여 무한한 가치를 만들어내는 '인간의 몸'은 그야말로 '이상적인 조직'이었습니다. 인간의 몸도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수만 년 동안의 진화 속에서 몸의 모든 세포가 협력하고 효율적으로 작동하도록 만들어진 '가장 완벽에 가까운' 조직임에는 분명합니다. 이 '이상적인 조직'을 통해서 기업 경영의 지혜를 얻는다면 어떨까요? 환경 변화에 적응하고 생존한 비결을 알 수 있다면? 창조적 발상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킨 역량을 배울 수 있다면? 수많은 직원들이 우리의 '몸'처럼 기민하게 협력하고 하나의 개체처럼 움직일 수 있다면? 상상만 해도 강력하고 경쟁력 있는 조직의 모습이 눈에 그려지지 않나요?
이 관점을 가지고 나니 머릿속에 안개가 걷혔습니다. 회사가 가지고 있는 문제와 나의 위치, 내가 해야 할 일이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제 출근하면 감사팀 자리에는 백혈구가 여러 명 앉아있는 것처럼 보이고 생산부 직원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근육세포들이 수축, 이완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임원을 만날 때는 회사의 뇌세포와 대화한다고 생각하죠.
이 책은 생물학을 좋아하는 공대출신의 한 회사원이 기업을 하나의 생명체인 '사람'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스스로는 '기업 생리학'이라 부르며 공부하고 정리했던 내용들을 (내심 부끄럽지만) 독자들과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새로운 관점이 지금의 기업들이 직면하고 있는 조직문제 해결을 위한 '자극'이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저연차 직원이나 신입사원 또는 취준생들이 회사라는 조직을 한 번에, 쉽게 이해하게 하고 싶다는 욕심도 담겨있습니다. 글을 쓰면서 재미가 있었습니다. 세상의 진리에 한발 더 다가간 듯한 기쁨도 느꼈습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조직이 하나의 사람처럼 움직인다면 나의 조국이 놀라운 경쟁력을 가질 것이라는 꿈도 꾸었습니다. 저의 시선을 통해 무수한 조직에 몸 담고 있는 리더와 직원들이 자신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의 해결을 위한 작은 실마리라도 발견하길 바랍니다.
그럼 재미있는 기업 생리학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