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기억
주말 아침에 일어나 밖을 보니 눈이 펑펑 오고 있었다. 폭설이었다. 등산 약속을 취소해야 했기에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내일 운전할 일이 있어 그때까지는 멈추려나 싶어 날씨 어플을 뒤적이던 중, 밖이 시끄러워 커튼을 살짝 들어 슬며시 내려다보았다. 아이들이 꺄르르거리며 흰 눈을 뒤집어 쓴 채 뛰어다니고 있었다. 기분이 약간 나아졌다.
어린 시절의 흐릿한 추억 하나가 문득 떠올랐다. 나의 유년 시절의 8할은 강원도 정선에서의 기억인데, 10살이 되던 해 겨울쯤 이었나? 그때도 이런 눈이 펑펑 왔던 듯하다. 학교에서 집까지 오는 길은 강 하나를 건너고 마을 2개를 지나 넓은 밭을 가로질러야 했기에 그 작은 발걸음으로 통상 40분 정도가 걸렸다.
그날은 안 그래도 폭설이 오는데 하교 시간을 넘긴 지 2시간이 되어도 내가 집에 도착하지 않아 부모님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밖으로 뛰쳐나가 나를 찾아다녔다고 한다. 한참을 찾다가 이윽고 얼음이 꽝꽝 언 강 위에서 나를 발견했다고 하셨다.
어린 아이가 그 해맑은 웃음으로, 새빨간 볼을 하고선 춥지도 않은지 눈을 가득 머금어 축축해진 벙어리 장갑을 흔들며 “엄마~” 하며 웃던 모습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하신다. 어렴풋한 기억으로 나는 그때 강에서 눈을 맞으며 걷던 중이었던 것 같다. 걷고 걷고 또 걷고. 뭘 하지도 않고 그저 눈을 맞으며 강위를 걸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의 난 그게 뭐가 그리 좋았던 걸까?
어른이 된 지금은 눈이 오면 길이 미끄러울까 봐 걱정부터 하고, 문제되는 일이 없는지부터 검토한다. 감기에 걸리진 않을까? 밖에서 약속 잡은게 있었나? 우산이 집에 있었던가? 눈이 언제쯤 그칠지 인상을 찌푸리며 날씨 예보부터 찾아보는 그런 어른.
지금의 내 모습이 눈 속을 뛰어다니던 어린 날의 기억과 겹쳐 기분이 묘하다. 스마트폰을 덮어놓고 눈이 펑펑 오는 밖으로 잠깐 나가본다. 우산도 없이 정말 오랜만에 눈을 온전히 맞아보는 듯하다. 피부에 닿자마자 갓 깨어난 꿈처럼 스르르 녹아 없어지는 눈송이에서 시리도록 차가운 감각을 느끼며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흐르는 대로 몸을 맡기고 그 순간의 감각을 오롯이 느껴보는 시간. 걱정이나 다른 부차적인 생각들은 접어놓고, 그저 현재에 몸을 맡겨 온전하게 존재해 보는 것. 이 감각을 이렇게나 오래 잊고 지냈다니…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갈 때 즈음, 아이들을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살짝 웃으며 잠시 하늘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