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 나의 감정은 365일 응급실행

오하라의 온:살롱

by Oh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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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넷플릭스에서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보고 있다.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2017년 8월, 캐나다로 오기 전까지 나는 워킹맘이었다.


지금은 전업맘으로 ‘이직’해, 육아를 전투적으로 감당하며 살아가고 있다. 사실 육아를 일이라 생각하고 하고 있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서는 여전히 지인들이 성장하고 빛나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속으로는 부럽기도 하고, 대단하다는 마음으로 응원도 해보지만, 문득 ‘나도 커리어를 놓지 않고 저 자리에 있었다면?’ 하는 상상을 하며 울컥한 마음이 드는 날이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성실하고 긍정적으로 살았던 사람들은 지금도 자기 자리에서 여전히 빛나고 있다. 그들을 보며 나 역시 에너지를 얻기도 하기에, 결국은 응원하게 된다.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후, 아이에게 더 집중하고 싶었다.


하지만 처음엔 세심히 살피지 못했고, 아이 문제로 학교에 갈 때면 이유도 모른 채 고개를 숙이곤 했다.


워킹맘이었던 나는 정보가 부족했다. 다른 엄마들이 그렇다면 그런가 보다 했고, 누군가가 아이를 두고 거짓말을 할 거라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보다는, 단톡방에 올라오는 메시지 하나하나에 휘청였다.


그냥 괜히, 모두에게 미안했다.


결혼 후, 직장 생활을 하며 억울한 일도 많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말들은 전형적인 성희롱이었지만, 그땐 참고 넘길 수밖에 없었다.


| “술은 예쁜 여자가 따라야 제맛이지.”

| “ 야, 부장님 외롭잖아. 부르스 좀 춰 드려.”

| “여자들은 주인의식이 없어.”

| “왜 이렇게 피곤해 보여? 밤새 무슨 일 있었어?”


회식이 싫었던 이유는 단순했다. 술을 따르라 하고, 노래방에선 춤을 강요했다.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시키는 대로 했지만, 상사의 허리를 감싸야하는 부르스 춤은 내겐 너무 모욕적이었다. 싫다고 말한 뒤부터, 노골적인 견제가 시작됐다. 말 그대로 왕따를 시전 하시는 팀 내 구성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비흡연자는 나는 하루 종일 일에만 집중을 하고 7시쯤 퇴근하려 했고, 사실 함께하는 저녁식사 후 이어지는 술자리 회식 자리를 피하려고 먼저 퇴근하겠다고 말한 것뿐인데, “여자들은 군대를 안 갔다 와서 조직 문화를 몰라.”라는 말이 따라왔다. 일찍 퇴근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 정시보다 1시간 늦게 퇴근하는데 함께 저녁을 먹지 않았고, 함께 노래방을 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모진 말들을 계속 들어야만 했었다.


내가 남자였다면, 결혼하지 않았다면, 모든 회식에 참석해 상사를 즐겁게 해 드렸다면 그 회사에 계속 남아 있을 수 있었을까?


승승장구하던 여성 선배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나도 한때 ‘엄마’라는 이름이 낯설고 억울했다. 왜 나만 희생해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모성애라는 이름 아래, 워킹맘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 아이는 무시당하기도 했다.


|"워킹맘들의 애들은 관리가 안돼!"

|"쉽게 정보 얻어가려는 사람들이니 정보 주지 말아야 해!"


나는 ‘내 이름’으로 멋지게 살고 싶었지만, 많은 사람들은 엄마로서의 나만 인정하고 하려 했다.


| “애가 어릴 땐 엄마가 돌봐야지.”

| “워킹맘 애들은 성격이 별로야.”

| “학원만 돌리네, 불쌍해.”

| “저 엄마, 이기적이야.”


그 말들은 잔인했다.


아이들이 유아기일 때, 나는 매일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평균 수면 4시간. 퇴근 후 아이들을 데리러 가고, 친정엄마가 준비한 저녁을 허겁지겁 먹이고, 목욕을 시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밤 9시.


아이들은 쉽게 잠들지 않았다. 나는 뒤에는 딸을, 앞에는 아들을 아기띠에 매고 한 시간씩 집 근처를 걸어야 했다.


잠든 아이들을 눕힌 뒤, 밀린 집안일과 이유식을 준비했다. 남편은 자주 늦은 귀가를 하여 간혹 일찍 들어오는 날에는 아이들을 함께 재우러 나가곤 했지만 사실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모성애는 아이들을 잉태하는 순간부터 생기는 자동반사라면, 부성애는 시간을 들여야 싹이 트고 아이들과 소통을 하면서 극대화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시절은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아이들이 웃는 얼굴을 보면 살아갈 힘이 저절로 생기는 기억을 맛보았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그 시간이 떠올랐다. 워킹맘이라는 말도 생소하던 시절, 나는 일에 자존감을 걸었고,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안고 살았는지.


육아를 도와주는 친정에조차 눈치 보였고, 아이 아플 때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가슴이 쿵 내려앉곤 했다.

직장에 있어도 마음은 늘 집에 가 있었다.


그 시절, 참 힘들었다.


아이들이 자라나는 속도만큼 내가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다.


그래서 오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잘하고 있어. 정말 멋지고, 대단했어.”




오하라의 온:살롱'에서, 소박하지만 따뜻한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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