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하라의 온:살롱
오랜 타향살이 속에서 내가 매일 안고 살아가야 했던 감정은 '불안'이었다.
처음엔 이 감정이 뭔지 몰랐다. 우울이나 외로움쯤으로 생각했다. 타향살이를 시작했던 첫해부터 3년까지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지냈다. 특히 한국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해져, 자연스레 그들에게 의지하며 살아갔다.
이곳에서 나는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전혀 새로운 환경에 던져졌다. 익숙한 한국이 아닌, 전 세계에서 모여든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 맺으며 살아야 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불안이 시작된 건.
누군지도 잘 모르지만, 살아가기 위해 알아야만 하는 사람들.
유학생 특성상 1~2년 머물다 떠나는 이들.
만남과 이별이 반복되며, 신뢰는 얕아지고 관계는 늘 불안정했다.
물론 다양한 문화와 인종을 경험하며 시야가 넓어졌고, 다문화에 대한 편견은 줄어들었다. 하지만 반대로 불편한 점도 분명히 존재했다. 나와 너무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늘 피로감을 안겼다.
나는 외향적인 사람이 아니다. 친화력이 과도한 사람들과 어울릴 땐 더더욱 불편했다. 감정적으로 갑자기 다가오거나, 무리한 부탁을 하거나, 가볍게만 아는 사이에 나를 평가하려 들 때면, 나는 쉽게 지쳐버렸다.
내가 지키려는 매너나 거리감을 "정이 없는 서울깍쟁이"라고 부르며 나를 몰아세우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 '본인들이 더 깍쟁이면서...'
그 '정'이라는 말. 누가 정한 건지도 모르는 그 말은, 타인의 마음을 자기 방식대로 판단하고 조종하려는 수단처럼 느껴졌다. 한국에서조차 경험해보지 못했던 정서적 교류가 낯설게, 때론 폭력적으로 다가왔다.
|'여긴 캐나다 아니야?'
|'개인의 감정과 의견이 더 존중받는 나라 아닌가?'
|'왜 해외에서 살면서도 80년대 서울에 머무는 기분이 드는 걸까?'
해외에서 오래 살았다는 사람일수록, 과거 한국의 정서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옆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던 1980년대의 정서 그대로, 여전히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예를 들어, 내 집을 안방처럼 드나들면서도 정작 자신의 집엔 지켜야 할 경계가 분명한 사람들. 자신에 입장에서 조금이라도 불편한 상황이 생기면 “여긴 캐나다야”라는 말로 선을 그었다. 늘 아이러니한 대답뿐이었다.
이런 경험들이 반복되며 피로감은 쌓여갔다. 감정의 혼란, 불확실한 관계, 예측할 수 없는 미래. 이 모든 것이 결국 불안을 낳았다.
나는 한국에서 독립적으로 살아왔고, 외로움을 잘 타지 않는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외로움은 전혀 달랐다. 그건 외로움이 아니라, 불안이었다.
나는 매일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기분으로 살았다. 신호등을 기다리며 마주한 사람들의 낯선 얼굴들을 보며, 문득 꿈을 꾸는 건 아닌가 싶었던 순간들도 있었다. 정작 주변에 아는 사람들은 많지만,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가족이 없기에 언제나 마음 한편이 갑갑함으로 가득했다.
내 차 안 글러브 박스엔 한국 가족의 연락처, 대사관 번호, 내 인적사항이 손글씨로 빼곡히 적힌 종이가 있다. 그 종이를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겨우 종이 한 장이 뭐라고...’ 싶지만. 그래서 알게 되었다. 타향살이의 기본 정서는 ‘불안’이라는 걸.
평온하지만 왠지 모르게 불편한 하루.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감. 반복되는 감정의 요동.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을 때 오는 막막함. 해결되지 않는 일들. 모두 불안에서 비롯되었다.
게다가 사춘기를 맞은 아이들의 변화무쌍한 감정과 내 타향살이가 겹쳐지니, 그 불안은 더 커졌다.
엄마의 감정은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나의 불안이, 나의 흔들림이, 아이들에게 전이되고 있었다.
얼마 전, 아들과 함께 먼 길을 운전해 가는 길. 아이는 스트레스와 미래에 대한 불안을 짜증으로 표현했다. 그 모습이 꼭 예전의 나의 모습 같았다.
걱정 많은 나를 닮은 아들에게 나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 “엄마, 예전엔 운전할 때마다 무섭고, 울기도 했어. 그런데 지금은 많이 편안해졌어. 그 이유가 뭘까?”
| “글쎄. 엄마가 이제 익숙해졌으니까?”
| “맞아. 길을 알게 되면 마음도 편해지거든. 인생도 비슷한 것 같아. 처음엔 무섭고, 두렵고, 막막하지만 그냥 하다 보면 그 길 끝이 보이더라.”
|“엄마의 좌우명 뭔지 알아?”
|“Just do it. 그냥 해보는 거야. 두려움을 없애는 마법 같은 말이야.”
아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한참을 조용히 달렸다.
지금, 늘 불안한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지금 두려운 당신, 그냥 해보세요. 당신의 경험 하나가 늘어났을 뿐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만큼 단단해졌을 겁니다.”
타향살이의 불안은 결국, 익숙하지 않은 세상에 마음을 열지 못한 나의 몫이었다. 그 불안을 이겨내기 위한 첫걸음은, 결국 ‘그냥 해보는 용기’뿐이다.
그리고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그 길의 끝엔 분명히 익숙한 빛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오하라의 온:살롱'에서, 소박하지만 따뜻한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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