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하늘 은하수

오하라의 온:살롱

by Oh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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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어릴 적 자주 부르던 동요였다. 부끄러움이 많았지만, 노래 부르는 것을 참 좋아했던 어린 나. 특히 할머니가 막걸리를 드시는 날이면 "노래 한 자락 해라" 하셨고, 나는 그 앞에서 동요를 신나게 불렀다.


문득 잊고 지냈던 노래 한 소절에 할머니가 떠올랐다.


막걸리를 좋아하시던 친할머니의 막걸리 심부름은 늘 내 몫이었다. 아주 오래전 일이라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대폿집'이라 불리는 곳에 양은 주전자를 들고 가면, 스르륵 미닫이문을 열자마자 아주머니가 주전자를 받아 막걸리를 부어주시며 말하셨다.


| "할머니 심부름이구나!"

| "네."

| "아이고 착해라. 조심히 들고 가거라.


할머니는 요즘말로 동네 인싸였다. 모르는 사람들이 없었다.


할머니가 쥐여주신 동전을 전해드리고, 막걸리를 받아 신나게 집으로 달려가던 길.


문득 그 맛이 궁금했다. 누가 볼까 조심스레 주전자 주둥이에 손가락을 넣어 찰랑하고 닫는 막걸리가 손가락 끝에 닿자마자 바로 빼어 입으로 넣어버렸다.


| “우웩, 이게 무슨 맛이야?”


후다닥 주전자를 들고 집으로 뛰었다. 막걸리를 받은 할머니는 국그릇을 가져오라 하셨고, 시원하게 한잔 들이켰다.


| “캬, 맛나다!”

| “할머니, 맛있어?”

| “응, 맛있어.”


나는 할머니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 “나도 먹어보고 싶어.”


그 말을 들은 할머니는 막걸리를 냉면 사발에 따르고, 사이다와 설탕, 얼음을 넣어 휘휘 젓더니 숟가락을 세 개 꽂으셨다. 언니와 나 그리고 동생은 그 숟가락을 들고 첫맛을 보았다.


| “우와! 맛있다.”


그건 부드러운 우유에 설탕을 탄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밀키스의 원조 같기도 하다. 할머니의 막걸리 제조 비법 덕분에 우리는 그날 이후로도 종종 그 맛을 즐겼다. 물론 몰래.


엄마는 아이들이 술을 마시는 걸 싫어했기에, 우리는 할머니 방으로 몰래 숨어들었다. 어린 시절의 작은 일탈, 그 중심엔 늘 할머니가 계셨다.


할머니는 담배도 피우셨다. 처음엔 청자를, 나중엔 88을 피우셨다. 주말마다 친척들이 찾아와 북적였고, 담배선물이 너무 많이 들어올 때면 슈퍼에 가서 현금으로 바꿔 과자를 사주셨다.


어느 날, 손님이 돌아간 틈에 할머니 방으로 들어간 나는 아직 피다 남은 담배꽁초에서 올라오는 연기에 홀려 그것을 집어 들었다. 코끝을 찌르는 연기에 기침을 하고, 재빨리 재떨이에 내려놓고 아무 일 없다는 듯 뛰쳐나왔다.


그날의 짧은 순간은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나중에 자매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모두가 할머니 담배를 몰래 피워본 적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한참을 웃었다.


중학교 1학년 가을, 도덕 시간에 교무실로 불려 갔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으니 집으로 돌아오라는 전달이었다.


나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할머니를 생각하며 그리움에 눈물이 터져 나왔다.


요즘, 감정이 사춘기 소녀처럼 요동친다. 기쁨, 슬픔, 우울, 분노, 미안함이 하루에도 몇 번씩 교차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할머니를 떠올리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따뜻해진다.


중년이 된 지금도 나를 온전히 지지해 주는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사춘기의 불안은 마음의 방향을 모를 때 생기지만, 중년의 불안은 방향을 알면서도 응원을 받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어른에게도, 더 큰 어른의 응원이 필요하다. 그것은 우리는 여전히 모두 불안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오하라의 온:살롱'에서, 소박하지만 따뜻한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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