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적 요인 2
서울에서 태어난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낯선 시골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괴롭힘을 당했고 서울특별시로 돌아가길 간절히 바랐다. 서울로 돌아갈 유일한 방법은 서울 소재 대학교에 입학하는 것. 나는 오로지 공부에만 몰두했고 내 고향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
5년 반 만에 다시 찾은 서울은 생각보다 훨씬 많이 변해 있었다. 카드로 지하철과 버스를 탔고, 처음 보는 카페 프랜차이즈가 곳곳에 있었다. 커피 종류는 왜 그리도 많은지, 소개팅에 나가서 에스프레소가 아메리카노인 줄 알고 시켰다가 쓴맛에 소리 지를 뻔한 적도 있다.
높이 솟은 빌딩과 넓은 8차선 대로를 쌩쌩 달리는 자동차, 밤이면 더욱 장관을 이루는 남산 타워 그리고 야경이 끝내주는 한강. 나는 서울에서 누릴 아름다운 날들을 상상하며 기대에 차 있었다. 화려하고 특별한 서울처럼 나도 그런 존재로 빛날 줄 알았다.
그러나 돈 없는 서울 생활은 각박하고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한 달, 두 달 시간이 갈수록 서울에서 살기가 점점 버거워졌다. 특히 주변 여대생들과 나의 다른 점을 발견할 때면 심장이 옥죄어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런 증상이 나타날 때면 괜한 우울감에 먹을 것을 찾았고, 집에 돌아와 뒹굴뒹굴 무념무상으로 시간을 허비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런 고약한 기분은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놈이었다.
상대적 박탈감. 개인이 실제로 잃은 것은 없지만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거나 무엇을 빼앗긴 듯한 기분을 느끼는 것. 혹은 개인이 이상적으로 기대하는 삶의 조건과 실제 생활의 격차에서 비롯되는 사회적, 심리적인 긴장 상태를 의미한다.
서울특별시에서 대학 생활을 하면 TV나 영화에 나오는 여대생처럼 꽃길만 걸을 줄 알았다. 고급스럽게 찰랑거리는 생머리, 트렌드에 맞는 스타일링과 메이크업, 한 손에는 전공 서적 또 다른 손에는 명품백 하나 정도 들고 다닐 줄 알았다.
참나. 돈 나올 구멍도 없으면서 왜 이런 기대부터 했는지. 아버지께서 주시는 용돈 30만 원으로 저 많은 걸 쇼핑하는 건 무리였다. 하필 대학교 첫 친구가 내가 원하던 모습으로 대학교에 다녔다. 붙어 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입는 9,800원짜리 레깅스 청바지와 그 친구가 입는 고가의 게스 청바지는 핏부터 달랐다.
친한 무리가 생기면서 당연한 듯 주변 카페로 들어가 커피나 프라페를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공강 시간 때마다 이러니 내 용돈으로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친구들과 멀어지기 싫었고 전공 서적을 사는 대신 아메리카노를 선택했다.
상대적 박탈감이 반복되니 마음에 구멍이 생겼다. 그리고 구멍 안에 '나는 없어, 나는 모자라, 나는 부족해'라는 단어가 가득 들어찼다. 그러면서 돈이 있어야 특별한 사람이 되는 거라고 믿게 되었다.
이렇게 나의 20대는 조울증이 발병하기 딱 좋은 긴장 상태에 놓여 있었다. 서울 생활 10년간 벗어나지 못했던 심리적인 긴장 상태. 이미 감정 조절 장치가 망가진 나에게 상대적 박탈감은 너무나 위험한 존재였다. 서울에 혼자 남겨진 환경은 조울증이 생기기 충분했던 것이다.
특별한 존재. 사람은 서울특별시에 살아서, 돈이 많아서, 아름다워서 특별한 것이 아니라, 유일무이한 존재이기 때문에 특별하다. 나는 서른 한 살 조울증 판정을 받고, 상처받은 자아를 안아주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자살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기적이고, 내 존재 자체가 특별하다는 것을 말이다.
사실 나는 아직도 서울서울서울, 돈돈돈 거린다. 예전에 비해 나아지긴 했지만, 가끔 스스로가 억척스럽게 느껴질 만큼 여기에 얽매여있는 것을 발견한다. 친구나 연인에게 그런 모습을 들킬 때는 무척 부끄럽다. 솔직히 말하면 쪽팔린다. 없이 생활한 게 티 나는 것 같아서 말이다.
그럴 때 나는 객관적으로 나의 상황을 적어 본다. 그리고 되뇐다.
'실제로 내가 잃은 건 없어 남과 비교하면서 느껴지는 박탈감일 뿐이야.'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삶은 무의미해. 지금 내가 사는 삶이 진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