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XX들

환경적 요인 1

by 오하루


"그 XX들이 약 탄 거 아냐? 어떻게 소주 한 잔 마시고 기절을 해?"

친구의 말을 듣고 순간 멍해졌다.


열아홉, 어느 가을 저녁. 난생처음 소주 한 잔을 마셨다. 그리고 새벽 3시, 동네 교회의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서 누운 채로 눈을 떴다.


10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 왜 소주 한 잔에 기절했는지, 나는 몰랐다. 그런데 친구 말을 들으니 가해자들이 약을 탔다는 확신이 들었다. 왜냐하면 몇 개월 뒤, 대학 입학 날 맥주와 소주를 꽤 마셨지만 기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정신을 잃은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들은 나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일까.




당시 나는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가해자들의 횡포는 고등학교 2학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는데, 그 이유는 공부였다. 당연히 가해자들과 내 기억에 차이는 있겠지만 나는 지금도 그들을 극도로 혐오한다. 더 이상 '용서했어'라는 말로 나를 두 번 죽이지 않을 거다.


괴롭힘의 시작은 좋게 말해서 내 오해일지도 모르겠다. 중2 때부터 고1 때까지 친하게 어울렸던 친구들이 어느 순간 나를 비꼬거나 나만 모르는 이야기를 할 때가 잦아졌다.


그들은 공부보다 다른 것에 관심이 많은 애들이었다. 관심사가 다르니 같은 시간에도 다른 대화를 했다. 그것이 누적되어 나는 그들과 멀어졌고 그들도 은근히 나를 소외시켰다. 그걸 체감하던 나는 체육시간에 다른 동급생들 앞에서 엉엉 울었다.


"나 도저히 쟤네랑 못 다니겠어."


이 한마디로 나는 '공부 때문에 친구를 버린 년'이 되었다. 심지어 교실 칠판에 크게 저 말을 써놓고, "공부 때문에 친구를 버렸다!!!"라고 외치며 나를 단체로 비난했다. 특히, 나에게 소주를 권한 그 남자애가 말이다.


그 이후 고등학교 졸업 날까지 약 730일이 넘는 기간 동안 심장이 떨리지 않은 적이 없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방관했고, 선생님들은 성적이 낮은 친구들과 나를 비교하는 어리석은 발언으로 나를 너무나 곤란하게 만들었다.


사람이 사람을 고문하는 방법은 참 다양한 것 같다. 남녀 가릴 것 없이 그들은 잔인했다.


체육대회 때 웃기게 찍힌 내 사진을 교실의 커다란 모니터에 띄우고 많은 아이들이 조롱했다. 지나가면 비꼬고 툭툭 치는 것은 기본. 뒤에서 욕하면서 앞에서는 교과서나 노트를 빌려달라고 친한 척을 했다. 내가 그걸 아니꼽게 생각하니까 시험 기간이면 교과서를 훔치거나 숨겼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행동은 과감해졌고 범죄에 가까워졌다. 그들도 고3이라는 지옥의 기간을 통과해야 했고, 희생양이 필요했던 것이다.


다시 생각해도 경악을 금치 못할 괴롭힘은 발신 번호를 감춘 채 성행위를 하는 이모티콘을 만들어 나에게 보낸 것이었다. 2008년도에는 발신자 번호를 0000과 같이 변경해서 보낼 수 있었다. ●로 얼굴을 ㅣ--ㅣ__로 몸통을 만들어 성행위를 하는 남과 여를 표현했다.


그들은 어른이었다면, 혹은 요즘 시대였다면 「성폭력처벌법」 통신매체 이용 음란죄로 처벌받게 될 짓을 서슴지 않고 저질렀다. '그 머리로 공부를 해라, 차라리.' 지금과 같은 단단함을 갖추었다면 이런 말을 했겠지만.


당시의 나는 너무나 연약했고 어떤 어른도 나를 보호해주지 못했다. 오롯이 혼자 견뎌야 했다.


최고로 수치스러운 사건은 새벽 3시, 차가운 교회 바닥에서 깼을 때다. 가해자 가운데 유독 심했던 두 명의 남자애들은 나를 기숙사 밖으로 불러냈다.


"졸업도 얼마 안 남았고, 그동안 우리가 미안했다. 네가 이거 한 잔만 마시면 내일부터 우리는 친구가 되는 거야."


그들은 소주 한 잔 마시고 털어버리자고 말했다. 나도 참... 순수했다. 2년 간 고문을 당해 놓고도 바보처럼 그 말을 믿었다.


분명, 소주 한 잔이었다. 그리고 나는 기억을 잃었다.


끙끙거리며 눈을 떠보니 교회 바닥에 남자애 두 명이 쓰러져 있었다. 나는 내 상태부터 확인했다. 다행히 옷은 입고 있었다. 남자애들도 정신들었는지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갑자기 숨을 쉴 수 없었다. 심장이 아파오고 아무리 깊게 숨을 들이켜도 공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헐떡거리던 나는 그에게 살려달라고 말했다.


"야야! 얘 왜 이래! 야, 너 빨리 일어나. 가자!"


그러나 그는 자기 친구만 깨우고 현장에서 도망쳤다. 나는 다시 정신을 잃었다.

새벽 4시. 어둡고 시린 그곳에서 나는 다시 눈을 떴다.


'아, 나 살았구나.'


겨우 몸을 일으켜 세웠다. 부들부들 떨리는 팔과 다리를 이끌고 쥐새끼처럼 살금살금 기숙사로 돌아왔다.


다음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들은 교실에 앉아 있었다. 나 또한 그렇게 했다. 영원히 숨기고 싶은 그날의 기억은 크나 큰 공포였나 보다. 나는 그 일을 잊어버린 척 스스로 최면을 걸었다. 덕분에 몇 년간은 정말 잊고 살았다.




어떤 이유에서도 폭력은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다. 그 범위는 언어적, 신체적 폭력을 포괄한다. 누구나 아는 실험도 있지 않은가. 꽃에게 좋은 말을 하면 더욱 싱싱해지지만, 나쁜 말을 하면 금세 시들어버린다는 실험 말이다. 언어의 힘은 그만큼 강력하다. 그렇다면 악의를 가지고 특정 사람에게 가하는 언어적 폭력은 얼마나 강하겠는가.


또 다른 연구진은 언어적 폭력이 뇌에 미치는 영향을 실험했다. 신체적 압박과 언어적 폭력을 가했을 때, 각각 뇌에 전달되는 스트레스가 어떠한 지 살펴보는 것이었다. 결과는 의외였다. 악의적인 말과 몸에 가하는 폭력의 고통은 세기가 동일했다. 네 옆에 앉은 누군가가 당신에게 심한 말을 했다면 그는 당신의 뺨을 때린 것과 같다.


아,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했는데. 나의 동급생들은 말로, 눈빛으로, 비겁한 행동으로 2년 간 나를 때렸다. 이렇게 불안한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었던 나는 타인에 의해 감정이 왔다 갔다 했고, 뇌에 커다란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다.


감정이 안정될 틈이 없었던 그 시절, 뇌의 감정 조절 장치가 참지 못하고 고장 나 버렸다. 내가 살 길은 오직, 같은 시골 출신이 없는 대학교에 진학하는 것뿐이었다. 나는 목숨 걸고 공부했다. 그러다 보니 상처 난 곳을 치료할 겨를이 없었다. 덮고 덮어서 무의식의 최하단에 숨기기 바빴다.


그래서일까. 서울의 유명 대학, 그것도 같은 학교 출신이 한 명도 없는 곳에 가서도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공허하고 불안했고 우울함이 디폴트가 된 삶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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