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변덕쟁이

조울러의 일상 1

by 오하루


천만다행이게도 이 회사를 3년째 다니고 있다.


지금은 뷰티 브랜드 마케팅팀에서 오래 근무하고 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 직장, 한 직종에 진득하게 머물러 있지 못했다. 알고 보니 조울증인 사람에게 보이는 증상이라고 한다. 생각이 너무 많아 여러 가지 일을 계획하고 하던 일을 제대로 끝내기 전에 새로운 일에 뛰어든다. 그래서 심하면 경제활동을 아예 못하는 상황에 놓인다.


나도 하나의 직업이나 분야에 집중하기 참 어려웠다. 만성 조울증인 내가 꿈꾸거나 실제로 거쳐간 직종은 정말 다양했다. 많은 경험치를 쌓았다고 애써 포장하며 살고 있지만, 단기간에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빠르게 변하다 보니 자신뿐 아니라 주변 사람까지 힘들게 만들었다.




나는 대학 졸업 후 학원 정규 강사로 취업했지만 8개월 만에 그만두었다. 세계를 여행하며 돈을 버는 인기 직업, 승무원이 되겠다고 말이다. 그동안 모았던 150만 원은 승무원 학원비로 고스란히 사라졌다. 하지만 결과는 보나 마나. 영어도 못하고 살이 많이 쪘던 나는 몇 개월 만에 포기했다.


이제 뭐해 먹고 사나 고민하던 차에 아르바이트로 기사를 기고하던 것이 생각났다. 그래서 주간지 신문사에 취직했다. 정말 박봉이었다. 하지만 사무실에 묶여 있지 않고 전국 곳곳을 누비며 사진 찍고 취재하는 활동이 재밌었다. 콘퍼런스나 행사에 가면 기자라는 이유로 대접받고 무료로 호텔에 묶을 수 있어 좋았다. 그래서 1년, 비교적 오랜 기간 근무할 수 있었다.


하지만 1년이 되자 이 직업의 단점을 뼈저리게 느꼈고 새로운 관심사가 생겨 퇴사했다. 내 새로운 관심사는 홍보팀. 취재를 하다 보면 여러 회사 홍보팀과 접촉하게 된다. 그들이 사원증을 목에 걸고 기자들과 얘기하며 멋진 오피스에서 일하는 모습이 화려해 보였다. 그래서 높은 빌딩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열심히 일하는 홍보팀의 일원이 되고 싶어 졌다.


나는 근거 없는 자신감과 새로움에 대한 격한 흥분감으로 눈앞에 보이는 뻔한 결과를 보지 못했다. 역시나 취업 실패. 돈이 없어 허덕이고 방에서 빈둥거리던 나를 구제해준 건 언니였다. 언니의 소개로 P2P브랜드 운영팀 면접 기회를 얻은 것이다. 다행히 그곳에서 일하게 되었다.


사실 몇 개월 만에 퇴사하고 싶었으나 언니에게 미안하고 고마워서 1년간은 꾹 참고 근무했다. 하지만 사업을 하겠다고 무모하게 회사를 때려치웠다. 하필 이때가 조증 최고 상태였던 거 같다. 각양각색의 아이디어가 떠올라 성공가도를 달릴것만 같았다. 그리고 사업 자금도 없으면서 신용카드부터 긁어댔다.


그러다가 4개월 만에 이건 아니다 싶어 부랴부랴 취업 준비를 했다. 나도 참, 취직 하나는 잘한다. 꽤 유명한 성형외과 인하우스 홍보팀에 단박에 합격했기 때문. 하지만 어릴 적 꿈이었던 뮤지컬이 너무 하고 싶어서 2개월 다니다가 그만두었다. 그 당시 아마추어 뮤지컬 공연 연습 중이었는데, 취미생활로 하는 뮤지컬 연습에 너무 빠져서 이것만 하고 싶어 졌다. 그래서 그냥 그만둬 버렸다.


이렇게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다 보니 이력서는 너덜너덜 해졌고, 자기소개서에 쓸 말을 더더욱 없었다. 보다 못한 지인이 아는 원장님을 소개해주었고, 어학원 홍보행정팀에서 취직했다. 이후 1년 4개월간 근무했다.


그리고 더 이상 헤매고 싶지 않아서, 가족과 주변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서 직업 상담을 받았다. 실현 가능성 있는 직종과 직업을 알아보고, 나의 흥미와 경력에 맞춰서 컨설팅해주는 상담이었다. 5번의 상담 결과 마케팅 분야가 나왔다. 산업 분야는 미용, 예술 쪽이었다. 그래서 뷰티 브랜드 마케팅팀을 목표로 3개월간 취업 준비를 했고, 지금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나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게 뭔지 모르고, 의지도 약하기 때문에 직장을 옮긴다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나중에는 사고뭉치에 가난하고 못난 나를 극도로 싫어하게 되었다. 조울증 판정을 받고 오히려 안심하고 기분이 좋았던 이유는 이렇게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의 원인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나는 치료받기 전부터 좋게 풀리고 있었다. 한 직장에 안착하면서 경제적 어려움도 많이 해결되었고, 공연 예술은 물론 이렇게 글도 쓰고 여러 문화생활도 즐기게 되었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새 일을 찾으려는 조증보다 생계 위협을 느낀 우울증이 우세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농담이다. 장난기 빼고 말하면 주변 사람의 도움이 굉장히 컸고 직업 상담을 받은 것은 신의 한 수였다. 지금 하는 마케팅 기획 업무가 조울증인 나에게 나름 제격인 업무다. 늘 새로운 프로젝트가 기다리고, 다양한 시각에서 매출을 끌어올릴 방안을 고안해내는 일이다 보니 일 벌이기 좋아하는 나에게는 꽤 괜찮은 직업인 것이다.


나의 조울증 이야기는 참으로 롤러코스터 같다. 위로 아래로 극도의 감정 기복과 빠른 생각 전환으로 정신없는 삶을 산다. 혹시 주변에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의지박약, 사회 부적응자라고 비난하기 전에 먼저 감정 상태는 괜찮은지, 조증은 아닌지 잘 살펴보고 힘이 되어줬으면 한다. 나도 가족과 지인들의 도움으로 이만큼 잘 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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