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러의 일상 2
'나 진짜로 분위기 파악 못 하고 눈치 없구나'
요즘 새삼스럽게 자주 드는 생각이다.
나는 학창 시절 눈치 좀 챙겨라, 분위기 파악하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게 상처가 되어서 늘 주변 사람의 눈치를 보며 지냈다.
가끔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센스 있는 행동으로 칭찬을 들은 적도 있지만, 대부분은 아니었다. 스스로 감정 표현의 통제가 안 되고 모터 달린 듯 입이 움직이는 경우가 잦았다.
그래서 나는 분위기 파악도 못 하는 센스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낙인찍었는데, 이것이 조울 증상 가운데 하나란다.
조울증 환자는 주변 환경과 다른 감정 표현을 하기도 하며 다른 세상에 사는 듯한 느낌을 준다. 말할 때 목소리가 크고 상대방의 이야기에 정상적인 소통이 어려울 정도로 끼어든다. 비정상적인 사고의 흐름으로 심한 경우 말하는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 사실을 알고 나니 하나씩 예전 일들이 떠올랐다.
올해 초 조울증이란 사실을 가족에게 말할 때의 일이다. 엄마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매우 힘들어하셨고 툭툭 말을 던지던 남동생은 전보다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빠와 언니도 겉으로는 괜찮은 척하지만, 마음이 아픈 것이 느껴졌다.
"왜? 왜 그렇게 심각해? 난 괜찮은데~ 그동안 사는 게 힘들었던 이유를 알게 되어서 좋은데? 하하하!"
이런 심각한 분위기에서도 나는 신나고 즐거운 감정을 표현했다.
또 다른 예로, 내 실수로 회사가 손해를 보고 일정이 꼬이게 된 상황이었다. 물론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나는 팀장님께 정중하게 죄송하다고 말하고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보고 드려야 했었다. 그러나 내 입에서는 세상 발랄하게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팀장님~~ 저 사고 쳤어요!!! 하하하! 뭐 제가 뒤처리는 할 건데요. 뭐~ 그냥 그렇다고요~~!!"
아. 팀장님께서 성격이 좋아서 망정이지, 일반적인 팀장이었으면 난 벌써 혼나고도 남았다.
이 외에도 참 다양하다. 회사 동료나 친구들에게 A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에 갑자기 D를 얘기하는 것이다.
"이 옷 진짜 편하고 예쁜 것 같아. 컬러도 좋... 와! 저 와플 맛있겠다!!!"라고 외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럼 돌아오는 대답은 "ㅋㅋ 갑자기?" 또는 "아ㅋㅋㅋ 역시 웃겨ㅋㅋ 그 의식의 흐름은 도대체 뭔데?"이다.
장례식에서도 숙연하기보다 철없는 아이처럼 박장대소를 터뜨리기도 하고, 지인들과 즐겁게 떠난 여행에서 혼자 고독한 쓸쓸함에 울기도 한다.
이러다 보니 다른 사람과 동화되지 못하고 항상 고립감을 느끼며 살았다. 혼자만 다른 세상, 다른 공간에 있는 듯 말이다.
주변 분위기와 다른 감정을 표현하는 건 안 좋은 결과를 낳는다.
인간관계에서 가볍고 정신없는 사람으로 보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대화에 집중을 못하다 보니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진을 빼놓기도 한다. 회사에서는 진중한 면모를 보여야 진급에도 유리할 텐데 그건 뭐. 실망스럽지만 할 수 없다. 병이니까.
이렇게 인간관계나 사회생활이 힘든 것보다 더 심각한 건 자신의 감정을 정면으로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 조울증 판정을 받았을 때 스스로가 안쓰러워 슬픈 감정임에도 표면에 드러나는 감정은 즐거움이었다. 그러면 우울 기간에 꾹꾹 눌러 감췄던 감정이 터져 나와 나를 더욱 구석으로 몰아세운다.
분위기 파악. 올바른 감정 표현. 타인과의 관계. 자신과의 관계. 조울러인 나에겐 뜻대로 되지 않는 영역이다. 그렇지만 스스로 노력하고 주변에 양해를 구하며 일상을 보내려 한다. 조울증이라고 해서 타인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걸 정당화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분위기 파악? 저는 못 합니다. 조울러라서요. 하지만 조금만 이해해주세요. 저는 상담도 받고 약도 먹고 운동도 하고 식습관도 바꿔나가며, 조울증 치료를 위해 노력하는 중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