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러의 일상 4
2020년 12월 24일. 조증 상태에서 N잡러로 일하다가 울증 상태가 된 지 2주 정도 됐을 때였다. 당시 나는 방 안에 혼자 있지 못하는 상태였다. 언제부턴가 나를 집어삼킨 불안함과 공포감에 안절부절못했다. 발작의 전조 증상이었을까. 나는 다리를 덜덜 떨고 시선 처리가 불안정했으며 숨쉬기도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다... 진짜 미쳐버릴 것 같아.'
나는 서둘러 짐을 챙기며 생각했다. 천만다행으로 어젯밤 친한 여행메이트 언니가 부산 숙소를 예약해두었다며 그냥 내려오라고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정말 정신을 놓아 미쳐버렸을 것이다.
집 밖으로 나오니 좀 살 것 같았다. 나를 스쳐 가는 차들과 사람들. 올망졸망한 강아지까지 당시에는 뭐라도 쳐다보려 애썼다. 지나가는 뭔가를 보면 조금은 숨을 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혼자 있을 때의 정적과 침묵은 고독과 외로움을 낳았다. 이것은 또다시 얼마 전 나를 대차게 차 버린 남자친구에 대한 미련과 기다림을 떠올리게 했다. 그렇다. 안 그래도 심각한 내 우울증세에 불을 붙인 건 그의 이별 통보였다.
나는 부산행 기차를 타기 위해 영등포역으로 향했다. 그 와중에도 전 남자친구를 떠올리게 하는 검은 머리에 검은 코트를 입은 남자가 지나갈 때면 내 심장은 떨렸고, 눈은 그 남자를 끝까지 쫓았다. 혼자일 땐 눈물을 훔치다가 누군가에게 연락이 오면 미소 가면을 쓴 채 메신저를 보내고 전화를 했다.
어렵사리 도착한 부산에서 여행메이트 언니를 만났다. 함께 해운대와 동백섬을 관광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누군가와 같이 있으니 숨은 쉬어졌지만, 마음은 무겁고 우울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밤에는 너무 외롭고 가슴이 문드러지도록 슬퍼서 기도문을 틀어놓고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다음 날, 그날은 공황 오기 딱 좋은 날이었다.
근래 들어 가장 우중충한 날인 데다 추적추적 비는 내렸고, 크리스마스를 맞아 부산역에는 사람들이 와글와글했다. 여행메이트 언니와 헤어진 후 나는 갑작스러운 가슴 통증에 주저앉았다. 그러나 심장을 움켜쥔 나에게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군중 속의 고독. 극한의 고독함이 나를 더 고통스럽게 했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더는 역 안에 있기 힘들어 밖으로 뛰쳐나왔다. 맞은편 아파트 건설 현장은 그 공간을 더 을씨년스럽게 했다. 나는 (코로나 19) 마스크를 벗어 재꼈다.
"스읍, 하. 스읍, 하...."
공기를 한 움큼 빨아들였다. 하지만 공기는 계속해서 턱없이 부족했다. 추운 겨울인데도 식은땀이 줄줄 났다. 분노가 가슴을 꽉 막고 있는 것처럼 답답하고 이곳이 어딘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정신이 혼미했다. 심장은 요동쳤다. 쿵쿵쿵. 귀를 때리는 심장 박동에 나는 당장 질식해 죽을 것 같은 공포에 휩싸였다. 온몸이 덜덜 떨려왔고 고통과 공포가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아 눈물이 온 얼굴을 뒤덮을 정도로 흘렀다. 그리고 철도로 뛰어들어 죽어버리자는 생각이 머릿속을 꽉 채웠다.
그때였다.
'잠시 후 서울행 열차가 곧 출발합니다...'
안내 방송이 어렴풋이 들려왔다.
'정신 차리자. 돌아가야지. 정신 차려.'
나는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기차를 타러 갔다. 하지만 좌석에 앉아서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고 불안과 공포는 여전했다. 자제력을 잃어 미칠 것 같았다. 나는 이대로 서울까지 3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숨 막혀 죽을 것 같았다. 그래서 휴대폰을 들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 시간 동안 오열하며 살려달라는 내게 엄마는 아낌없는 위로와 기도로 나를 다독여 주셨다.
2020년 겨울, 나를 덮친 공황발작으로 나는 공황장애를 얻었다.
공황발작.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신체적, 정신적으로 극심한 불안과 공포를 느끼는 질환이다. 위험 상황 발생 시 빠져나가기 힘든 공간, 예를 들면 지하철이나 백화점, 광장과 같이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 있기를 힘들어한다.
내가 겪은 공황발작은 정말 심각한 정도여서 만약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았다면 큰일이 벌어질 상황이었다. 발작이 일어났을 땐 눈에 보이는 3가지를 빠르게 찾아 그것이 무엇인지 떠올리면서 생각을 다른 곳에 집중시켜야 한다.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쉬면서 호흡을 고르는 것이 꼭 필요하다. 그때 이걸 알았다면 조금 더 수월하게 공포감에서 빠져나왔을 것이다.
공황발작이 일어난 후 나는 밤에 잠을 자다가 심장에 총을 맞은 듯 아파서 벌떡 일어나기도 했고, 호흡 곤란을 겪기도 했다. 출근길에 지하철을 타면 식은땀이 났고, 손이 벌벌 떨리면서 심장 소리가 점점 커졌다. 공황 증세가 3번 이상 반복되면 공황장애로 판정받을 수 있다. 나는 조울증에 공황장애도 가진 사람이 된 것이다. 그리고 매일 밤 나를 찾아오는 어떤 여자 때문에 제대로 잠자기 힘든, 불면증에 시달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