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러의 일상 6
'이것이 말로만 듣던 혼재성 증상이구나!'
나는 이제껏 본 적 없는 새로운 세상에 입성한 듯 눈이 번쩍 뜨였다. 매번 증상이 나타날 때마다 조증인지 울증인지 도통 모르겠더라니. 그 이유가 있었다.
혼재성 증상은 조증과 울증이 섞여서 나타나는 증상이다. 몸은 우울하고 무기력한데, 생각은 빠르게 파바박 흘러가는 증상이다. 심지어 부정적인 생각으로 말이다. 그래서 불안감이 고조되어 결국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라고 느껴지게 되는 위험한 상태이다.
어떤 분은 27년간 조울증을 겪었는데, 이 증상을 경험해보지 않았다고 하니 흔치 않은 증상일 것 같다. 나는 이렇게 말로만 듣던 혼재성 증상를 마주하게 되었다.
새로운 녀석을 경험하게 해 준 것은 다름 아닌 회사였다. 퇴사자 발생으로 새로운 업무가 추가되었다. 원래는 공식몰 내 콘텐츠 기획과 라이브 방송 기획을 주로 했는데, 외부 채널 영상 기획, 매거진과 뷰티 체험단, CSR 업무까지 하게 되었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일.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
예전에는 회사 출근하고 일하는 게 재밌기까지 했다. 새로운 일을 배우는 맛에, 곧 찾아올 연봉 협상이라는 보상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찼기 때문이다. 그리고 3년간 잘 적응해서 회사 내에서 꽤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 자신감과 당당함으로 회사에서 커리어를 쌓아가는 내가 좋았다.
그런데 이번에 추가된 업무는 손은 많이 가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업무였고, 보람을 느끼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보상, 즉 연봉 협상은 내 기대보다 한참 못 미쳤다. 내가 나를 과대평가한 것일까. 회사가 나를 과소평가한 것일까. 아니면 상대평가의 폐해일까.
나는 크게 실망했고 상처 받았다. 열심히 일한 대가가 이것이라면 나는 회사에서 쓸모없는 존재가 아닐까. 없어도 되는 존재가 아닐까. 부정적인 생각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몸에 힘이 축축 빠지고 회사 일이 귀찮고 재미없어졌다.
회사에 있으면 다리를 덜덜덜 떨었고, 5일간 해야 할 일을 미처 다 끝내지 못할까 불안해서 수요일이면 대부분의 일을 끝내버렸다. 그리고는 집에 오면 뻗어버린 몸을 일으키지 못하며, '나는 게으르고 의지가 약해서 결국 운동도 하지 않고 글도 안 쓰고 이렇게 자는구나.' 하며 잠에 빠져들었다.
이렇게 무거운 몸과 날뛰는 의식의 공존, 혼재성 증상이 찾아왔다.
"요즘은 어때요? 우울해요?"
"잘 모르겠어요."
"에너지가 막 넘치고 그래요?"
"음... 모르겠어요."
정신과 상담을 받으면서 나는 모르겠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정말 아리송하기만 했다. 믹서기에 찐득하고 어두운 생각을 갈아 버린 것처럼 묵직하게 머리에 뭔가 가득 찼다. 몸은 무기력해서 간단한 정리정돈도 못 하는 상태였다.
나를 유심히 보시던 의사 선생님은 말했다.
"지금 불안한 거 같은데요. 굉장히 불안해요."
"불안이요? 불안은 아닌 거 같은데, 아닌가 불안한가? 오늘은 괜찮아요. 몸이 아파서 회사를 쉬었거든요."
"회사 업무 스트레스 매우 심했잖아요. 지금도 그래요?"
"얼마 전에 연봉 협상했는데, 제가 B등급이래요. 저는 A등급인 줄 알았는데, B래요! B!"
나는 선생님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다른 말을 했다. 참았던 감정을 터트리듯 말이다.
선생님은 "왜요. 잘한 거지요. B면 중상위권이라는 건데, 충분히 잘한 거예요."라고 격려해주셨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성에 차지 않았다. 나 자신이 매우 실망스러웠다.
그런 나에게 선생님은 다시 위로의 말을 건냈다.
"지금 번아웃 상태 같아요. 일이 많아서 힘들어서 번아웃이 아니라. 보상의 번아웃이요. 인정받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상처 받은 거 같아요."
"맞아요. 상처 받았어요. 그래서 자꾸 먹고 살쪄서 우울하고 불안한데 머릿속은 복잡해요. '이직할까 운동할까? 러닝하고 인스타 올려야 하는데, 빨리 글을 써서 브런치에 올려야 하는데! 지금 뭐 하는 거야. 정말 한심해! 가만히 누워서 왜 아무것도 안 하는 거야.'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회사에서 저는 없어도 되는, 쓸모없는 존재가 된 거 같아요. 하나도 티 안나는 존재 같아요."
"음.. 일단, 안정제를 좀 줄게요."
"선생님, 이건 약으로 치료되는 부분은 아니죠?"
"그렇죠. 이번 기회에 스트레스 면역을 키우고 불안을 다스리는 연습을 해보기로 해요. 그렇게 되면 지금 이 힘든 상황은 의미 없는 게 아닌 거잖아요."
나는 그 말에 동의했다. 이번에 찾아온 새로운 녀석을 기회로 삼아 더 강인한 사람이 되어 보기로 했다. 안정제나 다른 약물로 혼재성 증상에서 잠시 빠져나올 수는 있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나 스스로 찾아야 할 것이다.
머리에 생각이 가득 차고 스트레스가 심할 때는 몸을 움직이거나 명상으로 비워내며, 객관적으로 내 상태를 바라보기 위해 감정과 상황을 적어보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말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조울증을 이겨내려는 의지는 사라지고 어느새 약에만 의존하게 될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