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

약 부작용 감당하기

by 오하루


나는 꿈꾸던 대한민국 1%가 되었다.


사회에 진출해보니, 난 전혀 특출 난 사람이 아니었다. 사회에서 티끌보다 못한 존재인 나는 대중들의 기억에는 없는 사람인 것이다. 특히 1%를 위한 사회 부속품으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싫어서 우울 베이스가 늘 마음 한편에 깔려 있었다. 나는 한낱 부속품으로 죽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대한민국 1%를 꿈꿨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분야에서 그 꿈을 이뤘다. 바로 정신질환. 대한민국 조울증 환자 비율이 1%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내가 겪는 조울증약 부작용은 신체 반응이 정말 예민한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증상도 있다. 약 복용자 가운데 단 2%에게만 나타나는 부작용 말이다. 내 몸은 대한민국 1% 중에서도 2%인 것이다.


지금 하는 얘기는 재밌자고 한 말이지만, 희귀한 부작용은 상상도 못 하게 노잼이었다. 부작용은 사람에 따라 기간도 세기도 증상도 다르다. 흔하게는 가벼운 어지럼증, 손 떨림, 무기력, 지속적인 하품이 있고 심하면 언어장애, 기억력 감퇴, 체중 증가 또는 감소, 구토, 근무력증 등이 있다. 이 많은 부작용을 약을 처음 먹은 날부터 지금까지 모두 겪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힘들었던 부작용 2개를 나눠보려 한다.




세상은 요지경

약을 먹으면 조울 증세가 바로 좋아질 줄 알았는데 몸과 정신만 피폐해졌다. 약의 효과는 2주 정도 지나서 나타나지만 부작용은 참 빠르게 나타났다.


의사 선생님께서 저녁은 꼭 먹으라고 하셨다. 내 인생 첫 조울증약. 저녁 8시쯤 나는 매콤한 불닭게티를 야무지게 먹은 후 약을 털어 넣었다. 불면증에 좋은 약도 들었다고 했나? 아무튼 배도 부르고 침대도 푹신하니 눕자마자 바로 잠이 들었다.


새벽 3시. 갑자기 눈이 번쩍 떠졌다. 마치 내 몸이 '지금 안 일어나면 죽어!'라고 정신을 팍 깨우는 듯했다. 처음에는 꿈인 줄 알았다. 천장이 고인물 위에 떨어진 기름 같은 모양새로 이지러져 있었다. 순간 현실임을 직감한 나는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우욱. 갑자기 구역감이 들었다. 방안의 모든 물건은 고흐의 그림처럼 넘실거렸다. 나는 극심한 두통과 어지러움에 눈은 뜨지도 못하고 손을 더듬어 화장실로 향했다. 변기를 붙잡는 순간, 꾹 눌러 참았던 구토가 쏟아져 나왔다. 속이 뒤집어지는 느낌이었다.


한참 게워내고 더는 나올 게 없어 노란 위산까지 내보내고 나니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나는 축축한 화장실 바닥에 널브러져 멍하니 앉아 있었다. 눈을 슬쩍 떠보니 여전히 눈앞은 팽글팽글. 내 세상은 여전히 요지경이었다.


그날 나는 밤을 새웠다. 앉으나 누우나 어지러웠다. 오전 7시 '아, 출근해야 하는데.' 이 와중에도 회사 생각이 나서 더듬더듬 휴대폰을 찾아 팀장님께 연락을 드렸다. 당시 내가 조울증인 사실은 팀 내에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몸이 아파 급하게 연차를 쓴다고 말했다.


나의 요지경 세상은 그날 밤이 되어서야 사라졌다.



살아있는 좀비

근무력증. 최악의 약 부작용이다. 몸 전체 근육의 힘이 다 빠져서 걷는 것조차 힘들기 때문이다. 눈꺼풀과 혀도 느리게 움직여서 피곤해 보이고 말이 느릿느릿해진다. 음식을 삼키기 어려워 사레가 자주 들리다 보니 기침을 계속하게 된다.


조울증약 부작용이 줄어들 때까지 회사를 쉴 수는 없는 노릇. 좀비처럼 훌렁훌렁 걸어 다녔다. 정신은 말똥말똥 한데 몸이 내 마음대로 컨트롤이 안 되니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손에 힘을 꽉 주려 해도 힘이 들어가지 않고, 정말 몇 걸음만 가도 숨이 턱턱 막히고 땀이 줄줄 흘렀다. 허벅지 근육으로 걷지 못해 발목에 힘을 주어 쿵쿵 걸으니 무릎 관절과 허리 통증은 전보다 더 심해졌다.


씻고 머리 말리고 옷 입는 시간이 평소에 2배가 걸렸다. 일찍 일어나도 시간은 늘 촉박했다. 게다가 버스가 도착하는 걸 근거리에서 봐도 뛰어가 탈 수 없어서 지각도 꽤 많이 했다.

원래 주 1~3회 러닝을 했는데, 이 당시에는 아예 뛰지를 못했다. 다행히 요즘은 주 1회 정도 천천히 뛸 수 있지만 말이다.


근무력증은 정말 희귀한 부작용이어서 대부분 이렇게까지 겪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약을 먹은 지 3주 차 때 이 부작용이 생겼고 지금도 가끔 나온다. 내 몸이 빨리 조울증약에 적응해서 부작용이 사라지고 효과만 제대로 나타났으면 하고 간절히 기도할 뿐이다.




조울증약 처방은 정말 까다롭다고 한다. 조증과 울증을 동시에 치료해야 하는데, 두 증세에 쓰이는 약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항우울제는 조증일 때 쓰면 아무 효과가 없거나 오히려 조증을 심하게 만들어서 더더욱 신중하게 약을 처방해야 한다.


실제로 나는 항우울제를 먹고 조증이 심해져서 하루 2~3시간만 자도 피곤함을 모르고 깨어있기도 했다. 그러나 앞서 풀어낸 다양하고 심한 부작용에도 내가 약을 계속 먹는 이유는 당연히 효과가 있어서다. 들쭉날쭉하던 감정 기복이 많이 줄었고, 우울감이 걷힌 평온한 상태를 오랜만에 느껴보기도 했다.


대한민국 1% 조울증 환자의 2%만 느끼는 부작용. 앞으로도 계속된다면 나는 그냥 순응하려 한다. 조금씩 약에 적응하는 내 몸을 응원하며, 나를 위해 조울증약 부작용을 받아들이고 치료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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