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 속의 나

실존자아 바라보기

by 오하루


나는 너무 먹었다.


2주 전부터 평소보다 조금 더 먹었는데, 일주일 전부터는 겨우 끊었던 야식증이 도졌고 퇴근 후 침대에 누워서 목구멍까지 음식이 올라올 때까지 먹었다. 그렇게 먹고 양치도 안 하고 씻지도 않고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턱살과 뱃살을 만지며 "살쪘네. 쩠어." 하며 다이어트를 걱정했다.


정신과를 방문했을 때, 지난주 심리상태와 겪었던 일을 이야기하자 아직 불안이 높은 편이라고 했다. 불안 최고치를 넘었던 처음보다 괜찮은 수치였지만.


나는 뭐가 불안한지 이야기했다. 내가 웃으면서 "아~ 저 너무 먹어요~ 진짜 살쪘어요~"라고 쿨하게 이야기하니까. 의사 선생님이 빵 터지며 웃으셨다. 나도 같이 웃으며 "왜 웃으세요~?"했다. 의사 선생님은 나를 귀여운 듯 쳐다보며, "아직 자신의 얘기를 남 얘기하듯 하는 건 안 고쳐지네요. 불안하고 걱정되면서 그렇게 농담 섞인 어조로 얘기하는 건, 아직 자신을 바로 보지 못하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 나는 마음 속 깊이 숨겨 두었던 말을 꺼냈다. "사실은요. 뭔가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 것 같아요. 약에 의존한다고 해야 하나? 공황 발작이나 극도의 불안감이 사라지고, 지금 그럭저럭 살만 하니까. 상담치료나 약물치료 말고 스스로 할 수 있는 노력을 하지 않게 돼요. 특히 뭔가 놓치고 있는 것 같아서 너무 불안해요."


선생님은 내가 마음 깊이 숨겨진 고민을 감추려고 다른 고민인 다이어트를 꺼내 든 거라고 했다. 계속 먹는 행동을 통해 자해하고 비교적 중요하지 않은 살 빼기에 집중하려 한다는 뜻이었다.


"본질을 봐야 해요. 진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단점과 장점을 가졌는지. 많이 괴롭고 아플 각오를 하고 스스로를 분석하고 객관화하는 노력이 필요해요."


나는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좀 억울했다. 나는 하고 싶은데, 정말 방법을 모르겠다. 의사 선생님은 하나씩 적어보라고 했다. 나의 좋은 습관, 나쁜 습관, 행동, 감정, 사람을 대하는 태도, 살아온 날들 등등 나를 찬찬히 뜯어보고 관찰하고 정리하라 했다. 그러면 내가 만들어 놓은 이상적인 자아에서 벗어나 진짜 자아를 마주 볼 수 있다고 했다.


아, 듣고 나니 귀찮았다. 이렇게 나를 분석하는 게, 나를 알아가는 게 귀찮았다. 약을 먹고 증상이 약화되면서 내 절실함도 사라졌나 보다.


그런 내가 적극적 자세를 취하도록 해 준 것은 남동생이었다. 정신과를 다녀간 다음 날, 갑자기 서울에 왔다며 저녁을 먹자고 했다. 나는 기분이 좋았다. 남동생과 대화하는 일은 참 즐겁기 때문이다.


식사를 막 시작할 때, 남동생이 물었다 "요즘은 지내는 거 괜찮아?" 나는 눈을 피하며 얼버무리다가, 정신과 선생님과의 일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남동생이 샤르트르의 실존주의를 이야기해주었다. 간단히 얘기하면 지금 행동하고 있는 내가 진짜 자아이지, 내가 만들어 놓은 모습은 진짜 자아가 아니라는 것이다. 즉 환상 속 완벽한 나의 모습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자신이 아닌 것이다.


내가 우울한 이유는 환상 속의 나, 가짜 자아가 자신이라 생각하고 거기에 부합하지 않은 나를 끊임없이 채찍질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존감이 떨어질 수밖에. 나를 사랑하지 않고, 내 삶을 부정할 수밖에 없었겠지.


동생은 좀 더 쉽게 예를 들어주었다. "나는 비겁한 사람이었거든. 남을 더 도와줄 수 있는데, 귀찮으니까 그냥 하던 만큼만 했어. 그러면 그 순간 내 자아는 비겁한 사람인 거야. 그런데 내가 용기 있는 선택을 했어. 남을 도와주기 위해 내가 힘들어도 좋은 일을 해서 누군가에 도움을 줬다면 그 순간 내 자아는 용기 있는 사람인 거야."


실존! 지금 이 순간.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바로 나이다. 환상 속에, 머릿속에 그려 넣은 자아는 이 세상에 없는 자아인 것이다. 아! 실타래처럼 엉켰던 막막함이 해소되는 순간이었다. 드디어 나에게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았던 환상의 존재를 쉽게, 용기 있게 마주할 방법을 찾았다.


정말 기뻤고 앞으로 내가 할 일이 그려졌다. 남동생과 대화하는 그 순간 우울한 감정이 들지 않았다. 진취적으로 용기가 났다. 진짜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나의 조울증은 분명 나아질 것이다. 그 확신이 지금도 나를 희망차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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