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쁜 기다림도 있어요

버림받은 자아 위로하기

by 오하루


"항상 기다렸네요. 하루 씨는.."

상담 선생님께서 말했다.


"네, 전 늘 기다렸어요."

나는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그때 어떤 기분이었어요?"


"음..."

입술이 떨려와서 아무 도 할 수 없었다. 얼마 뒤 나는 펑펑 울며 말했다.


"버림... 받은 기분이요... 비 오는 날 버려진 유기견처럼... 주인을 계속 기다리는데, 주인은 안 와요. 사랑한다고 했는데 그래서 기다렸는데... 안 와요."


기다림은 나에게 버려짐과 같다. 과거 무관심하게 방되었던 경험 때문에 이 공식이 머릿속에 각인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일상생활에서 사소하게, 당연하게 기다리는 것이 참으로 힘들다.


조증과 울증이 함께 나오는 지점일 때 유독 심하다. 기본적으로 출퇴근하기 위해 지하철과 버스를 기다리는 것만 봐도 그렇다.


가만히 기다리는 게 안된다. '심심하니까, 음악이나 듣자'와 같은 편안한 마음이 아니라 '기다리는 거 너무 싫어. 초조해. 그러니까 뭐라도 해야 해. 음악을 들을까, 글을 쓸까, 누구한테라도 연락을 할까, 기도를 할까?'와 같이 갈팡질팡, 안절부절못한 마음이다.


이 가운데 하나라도 내 마음을 차분하게 해 주면 다행이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소용없을 땐 대중교통을 기다리는 5분, 10분이 정말 미칠 것 같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팀장님께서 처음으로 나에게 짜증 낸 적이 있는데, 내가 팀장님의 컨펌 메일 회신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리로 종종 찾아갔 때문이다.


팀장님께서 "나에게 생각할 시간을 좀 줘요!"라고 소리쳤다. 그때 알았다. 기다리는 것이 싫다고 상대방을 독촉하고 있다는 것을!


그다음부터는 독촉하지 않으려고 많이 애썼다. 우선 구두로 보고 드리면서 '몇 시까지 생각하시고 말씀해 달라'라고 하는 식으로 말이다.




상담 선생님께 이 에피소드들을 얘기하니 어릴 때 겪었던 일 중에 기다린 적 있는지 물어보셨다


"그러면 기다림의 첫 기억은 뭐예요?"


"음... 지금 기억나는 거는... 할머니가 쓰러져 병원에 있을 때인 거 같아요. 엄마가 짐을 잔뜩 들고 저희 삼 남매를 데리고 버스를 탔었거든요. 병원에 가려고요."


그때 언니와 나는 다섯, 여섯 살쯤이었고 남동생은 완전 아기였던 거 같다. 그때 시내버스를 탔는데, 좌석에 어른들이 가득 앉아 있었고 우리만 서있었다. 나는 우리가 위태롭게 느껴졌고 어른들이 자리를 양보해주길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도 자리를 양보해주지 않았다. 결국 버스가 급정거했을 때, 우리는 볼링핀처럼 와르르 넘어졌다. 그때 너무나 부끄러웠고 지금 생각하면 도움의 손길을 기다렸는데, 사람들의 무관심에 상처 받은 것 같다.


다른 기억은 가족 단위의 모임에서 겪었던 일들이다. 한 오빠가 있었는데 나를 너무 괴롭혔다. 그 오빠가 테니스 공을 내 얼굴에 던져 눈을 얻어맞았고, 운동장을 달리고 있을 때 작은 돌을 내 얼굴에 던져 볼에 맞았다.


그때마다 울거나 힘들어하며 어른들에게 갔지만 돌아오는 건 보호가 아니라 '그 오빠가 너를 좋아해서 그래.'라는 다소 어처구니없는 답변과 '아이고 그랬어?'하고 다시 어른들과 대화하는 단답식 무관심한 태도였다.


나는 어른들이 보호해주길 기다렸다. 직접 가서 보호를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보호받지 못했고 그들의 방관으로 '나는 소중한 존재가 아닌가'며 외롭다고 느꼈다.




"하루 씨, 기쁜 기다림도 있잖아요. 선물 받기 전이나 데이트하기 전에? 그런 적은 없나요?"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있죠! 제가 허리 디스크인데 엄마가 자세교정 아이템을 두 개나 사주셨어요! 그거 배송 기다릴 때도 좋았고, 친구들 만나러 가는 길은 언제나 좋아요!"


"맞아요. 기쁜 기다림도 있어요. 슬픈 기다림에 매몰되지 말고, 기쁜 기다림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일상을 지내보세요."



조울러인 나는 오늘도 기다린다. 기다리지 않아도 될 것을 기다린다. 이미 가족에게, 연인에게, 친구에게 사랑받고 있음에도. 버려진 유기견처럼 기다린다.


우울 시기에는 슬픈 감정이 올라와 어찌할 수 없이 불안하고 괴롭다. 그럴 때면 주변 사람들에게 참으로 미안하지만 계속 연락을 기다리고 독촉하게 된다.


상담을 통해 슬픈 기다림, 버림받은 기다림에 매몰되어있던 나를 발견했다. 그 이후로 초조함과 불안이 밀려올 때면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하루야, 지금 초조하구나. 왜 초조하니? 버스는 곧 올 거야. 지금은 눈에 안 보이지만 여기로 오고 있어. 넌 이 자리에서 편안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돼."


he doesn't know (1).png


이전 12화환상 속의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