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안티 없애기

자책하지 않기

by 오하루


"하루 씨 마음은 이슬 같아요.

깨끗하고 좋은 것만 모으고 모은, 그런 것 있잖아요."


정신과 선생님에게 부모님과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던 참이었다. 한참 들으시던 선생님이 나에게 건넨 말이다. 처음 듣는 말이었다. 이 말은 자책의 늪에서 발버둥 치던 나를 맑은 바다에서 유영하도록 만들어줬다.


"부모님에게 못 해 드린 게 너무 많아서 죄송해요"


"뭐를 못 해 드렸는데요?"


"제가 돈을 아주 많이 버는 능력 있는 딸이었다면 부모님께 필요한 옷, 멋진 가방을 사드릴 수도 있고, 노후 걱정 없이 사시도록 빚도 갚아 드릴 수 있고, 여행도 보내드리고..."


"와~ 하루 씨 부모님 부럽다. 제 딸도 하루 씨 같았으면 좋겠어요."


선생님께서는 타인에게 너무 잘해주려다 보니 그게 거꾸로 자책이 돼버렸다고 했다. 그래서 굳이 자책이 필요 없는 경우도 자책하는 습관이 생겼다고 한다. 심지어 서로 상처를 주고받거나, 일방적으로 상처받았을 때도 자책을 하게 된다고 하셨다.


예를 들자면, '남에게 상처를 주거나 남 탓하는 건 옳지 못한 행동이야.' 부모님께서는 나에게 좋은 가르침을 주셨다. 그래서 상대방이 내 말을 듣고 나서 무슨 감정을 느끼는지, 혹시 내가 잘 못 한 건 없는지 관찰했다.


그런데 문제는 일방적으로 당해서 화낼 상황에서도 내 탓을 했다. 나의 적은 나인 듯. 샅샅이 뒤져서 나의 티끌 하나를 꼭 찾고 내 탓을 했다. 그러곤 '그래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라고 사과했다.


사람 사이에 갈등에는 대부분 양쪽 책임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나는 상대방과 내가 서로 주고받은 상처를 보고 해결하기보다 그 사람이 받았을 아픔만 생각했다. 그러면서 내가 못 돼먹었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완전 저자세를 취했다.


어떤 사람은 그런 나에게 자기도 잘못했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적반하장으로 "그래! 네가 잘못했지!"이러면서 나의 잘못을 약점 잡아 활용하거나 악담을 퍼부었다.


'의지가 약해서 그래.' '네가 잘했으면 됐잖아.' '왜 별것 아닌 것 가지고 유난이야?'


그들의 말을 계속 듣다 보니 스스로를 정말 의지가 약하고, 스스로 인생을 망친, 예민한 사람이라고 믿게 되었다. 이런 시간들이 쌓이며 나는 내 마음과 감정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게 되었고 나를 보는 법을 잊었다.


나의 분노는 무슨 색인지, 나의 슬픔은 짙은 지 옅은지 보지 않았다. 남을 과하게 배려하다 보니 가장 소중한 나를 배려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나는 늘 죄인의 마음가짐으로 살았다.




'자책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은 이런 습관을 가지게 된 자신을 또 자책한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되는 끝없는 자책. 약 10세 때부터 20년간 스스로를 책망해온 나는 이 말에 격하게 공감한다. 조울증에서 벗어나려면 자책하는 습관을 없애야 한다. 현재 내가 자존감이 낮고 조울증까지 도진 건 자책하는 습관과 그로 인해 자신의 상처와 감정을 바라보지 않은 이유도 크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무례하게 말하는 사람 또는 무심코 말하는 사람들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를 책망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내 탓은 그만하고 정당하게 남 탓도 해보려 한다.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이슬 같은 사람이다. 맑고 순수하다. 그래서 이슬 같이 투명한 마음에 누군가 연두색으로 다가오면 연두색으로 기쁘고, 주황색으로 침범하면 주황색으로 놀라고, 파란색으로 찌르면 파란색으로 운다. 그러니 너무 예민하다고, 너무 운다고, 너무 갈팡질팡한다고 자책하지 않길 바란다.


깨끗하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우리가 보이는 반응은 어린아이 같고 순수하다. 그래서 더욱 상대방의 의도가 쉽게 담기고, 그 의도가 곧 내 책임처럼 느껴지는 것뿐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뭐, 맑고 투명한 우리가 좀 봐주자!"라며 당당하게 조금은 남 탓도 해가며 살았으면 좋겠다.


길고 장황하게 썼지만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 한 마디다.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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