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 강박과 함께 산다는 건

의지적으로 싸우기

by 오하루


조울증 말고도 내 안에는 병적 증상이 몇 개 더 있다.


그중에 하나는 외모 강박이다. 외모 지상주의, 루키즘과도 유사하다. 쉽게 말하면 그냥 예쁜 것을 좋아한다. 특히, 자신에 대한 외모 기준이 매우, 매우, 매우 엄격하다.


그래서 편한 죽음과 예쁜 죽음 가운데 선택하라면 기꺼이 후자를 선택할 거다. 붉은 입술로 사과를 베어 물고 죽는 백설공주처럼, 향기 가득한 유리관에 누워 있는 백설공주처럼 예쁜 죽음을 말이다.


강박증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어떤 생각이나 장면이 떠오르는 것이다. 주목할 점은 의지로 조절 불가한 질병이라는 것. 그래서 불안해지고 그 불안을 없애기 위해서 어떤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


예를 들면, 하루 중 많은 시간 동안 '예뻐져야 하고 날씬해져야 하는데 지금은 뚱뚱하다. 어쩌지?'라는 생각이 머리 전체를 휩싼다. 운동하지 않고 앉아있는 자신을 비난하며 안절부절못한다. 심할 때는 계속해서 끊임없이 살 빼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여러 차례 자리에서 일어나기를 반복하거나 반대급부로 폭식을 지속하기도 한다.


이러한 외모 강박은 내 하루의 행복을 갉아먹고 우울하고 비참하게 만든다.




8살 때였던가, 아버지께서 디즈니 비디오테이프를 사다 주셨다. 정말 행복했다. 동네 친구들이 없던 나에게 디즈니 공주들은 그 빈자리를 채워주는 고마운 존재들이었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 신데렐라,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백설공주... 그중에 최애는 단연 백설공주였다. 백설공주가 허름한 하녀 옷을 입었음에도 내 눈엔 그녀만 보였다.


깨끗하고 새하얀 피부에 까만 머리카락, 동그랗고 빛나는 눈과 체리 같은 입술로 새들과 함께 노래하던 장면이 눈에 선하다. 그리고 왕국 최고 미녀인데 공주다. 마음씨도 곱고 동물들과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며 노래도 잘한다. 심지어 죽을 때도 예쁘다.


나도 백설공주처럼 되고 싶었다.


그래서 그렇지 못한 푸석한 삼각김밥 헤어와 태양에 그을린 피부, 평범하기 짝이 없는 티셔츠가 싫었다. 낡은 샌들과 운동화보다 구두가 더 갖고 싶었다.


외모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 가운데 나는 유난히 피부색에 집착했다. 사춘기에 접어들며 하얘지기 위해 엄마의 미백 제품을 바르고 태양을 피해 그림자를 찾아다녔다.



나이가 더 들어 중학생이 되었다. 반곱슬이 었던 머리카락은 어느새 곱슬이 되었다. 작은 우물인 초등학교에서는 남자애들이 나와 짝꿍 하려고 밀치고 싸웠는데, 더 큰 우물인 중학교에서는 투명인간처럼 인기 없는 사람으로 전락했다.


난 참 꾸밀 줄 몰랐다. 아마 수수하시고 치장하지 않으시는 엄마의 영향일 거다. 못난 나를 더 못나게 만드는 부스스한 곱슬머리와 허리가 들어가지 않은 네모 박스 교복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포인트였다.


당시엔 매직이나 스트레이트 파마같은 헤어 시술이 있다는 사실을 몰라서 곱슬머리는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그래서 교복이라도 몸매가 드러나게 맞추고 싶었으나 엄마가 안 된다고 하셨다. 나중에 더 크면 못 입는다고 말이다.


그러다 보니 나는 더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그 무렵 초등학교 때 사귀었던 남자친구가 다른 여학생에게 고백했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많이 안 좋았다.


또 무슨 데이는 뭐 그리 많은지,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로즈데이! 데이 데이 마다 여자애들은 선물도 받고 고백도 받는데, 난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그럴 때면 스스로가 참 실망스러웠다.


학창시절을 보내며 아름다움에도 계급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이 강박으로 깊어진 것은 대학교 때이다.


그때 사귄 남자친구와는 1년 3개월 정도 교제했다. 사귄 지 1년쯤 지났을까. 그 사람은 같은 과 여학생 집에서 잠을 자기 시작했다.


자기들은 힙합 동아리 연습을 하느라 그랬다고 말했지만, 둘만 당당하면 뭐하나 그들의 말과 행동이 정말 무례했던 것을. 남자친구가 핸드폰 전원을 끄고 그녀의 집에서 밤을 보낼 때면 내 가슴은 타들어 가듯 고통스러웠다.


그렇게 그가 바람 아닌 바람을 피우던 어느 날, 내가 더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헤어지자고 했다. 비참하게도 그는 기다렸다는 듯 그러자고 했다. 그 뒤로 3개월뒤 그와 그 여자가 사귄다는 소식이 나에게 전해졌다.


그 여자는 참 날씬하고 화려하게 꾸밀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나와 달리 메이크업도 잘했고 짧은 치마에 달라붙는 옷을 입고 구두를 신었다. 그녀만의 스타일과 개성도 강했고 노래도 랩도 잘했다. 그녀는 나와 매우 달랐다.


이후로 나는 외모에 집착이 점점 강해졌다. 피부, 눈썹, 눈 모양, 얼굴 윤곽뿐 아니라 몸매, 스타일, 손가락에 난 털 하나까지. 세세하게 예쁘지 않은 부분을 찾아내어 고민하고 가지지 못한 것에 힘들어했다.


'사랑받으려면 예뻐야 해.' 이 문장이 상처 위에 뜨거운 인두로 지져져 지금까지 남아있다.




외모 강박은 극심해서 주변 사람이 불편해할 정도였다. 대화 중에 자꾸 거울을 보고, 반복해서 셀카를 찍거나 대화 주제가 기승전다이어트였다. 요즘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에게 내 인사말은 "나 살쪘어..."이니까, 말 다 했다.


나 자신도 참 힘들다. 얼굴에 난 뾰루지 하나 때문에 밖에 못 나간 적도 있고, 살이 72kg까지 쪘을 때는 낮에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만 같아 밤에만 외출했다.


거울을 가까이 들여다보며 눈주름이 얼마나 깊은지, 코에 모공이 얼마나 큰지, 입술에 각질이 얼마나 많은지 자꾸만 세어보게 된다.


예전에는 피부에 티끌이 있는 걸 못 참았지만, 요즘은 살덩어리가 너무 싫고 짜증 나서 그 스트레스 때문에 자꾸만 먹는다. 미련 곰퉁이, 백설 공주는 커녕 뱃살공주가 되었다.


예전보다는 나아졌지만 난 여전히 외모 강박에 시달리고 있는데, 이놈의 강박증은 내 일상을 괴롭히는 것도 모자라 조울증 치료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왜냐하면 몸무게와 감정 기복은 반비례하기 때문이다. 몸무게가 올라가면 기분은 우울 우울 내려간다. 몸무게가 내려가면 기분은 다시 바짝 올라간다. 이러니 조울증 치료가 제대로 되겠는가.


조울증의 친구인 외모 강박. 이것을 극복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고 분명 진전이 더딜 것이다.


그래도 나는 의지적으로 오늘을 산다. 야식을 줄이고 한 걸음 더 걷고 좋은 책을 읽고 내 이야기를 쓰면서. 의지로 조절되지 않는 외모 강박을 내 의지으로 극복하기 위해 계속 싸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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