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한 살의 어리광

혼자라고 생각하지 않기

by 오하루







"나 진짜 돈 없을 때는 차비 없어서 2시간 동안 걸어서 출퇴근했어."


"아이고.. 아빠한테 얘기하기 그랬어?"


어느 날, 아빠와 단둘이 차를 타고 가면서 슬쩍 과거의 아픔을 말했다. 아빠는 도와달라고 하지 왜 혼자 끙끙거렸냐고 안쓰러워하셨다.


나는 가족들에게 부탁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참으로 어려웠다. 어릴 때부터 어리광을 제대로 피우지 못했던 탓일까. 커서도 힘들다고 찡찡거리지 못했고 좋은 모습만 보여드려야 한다는 압박이 늘 따라다녔다.


어리광은 허물없이 상대방에게 어리고 예쁜 태도를 보이거나 응석을 부리는 행동이다. 보통 부모와 자녀, 연인처럼 신뢰가 돈독한 관계에서 보이는 행동이다. 그러나 나에게 가족은 허물없이 대하기엔 멀었고, 응석을 부리기엔 내 존재가 위태롭다고 느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은 고생을 많이 하셨다. 가족 구성원은 할아버지, 할머니, 삼 남매였는데 할머니는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하셨다. 그래서 아빠는 돈을 버느라, 엄마는 시부모님을 모시느라 우리 삼 남매의 어리광을 다 받아주기 버거우셨다.


어린아이들도 다 느낀다. 부모님이 자신들을 챙길 여력이 없다는 것을. 언니와 나, 남동생은 또래에 비해 어리광을 부리지 않았고, 자라면서 내가 가족에게 소중한 존재인가, 가족이 나에게 소중한 존재인가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부모님께 그렇게 중요한 존재가 아닌데, 못난 상태가 되어 칭얼거리고 도와달라고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심각한 상황이라 남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할 때도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됐다.



나는 적어도 대학교 2학년 때까지는 좋은 딸이었다. 중고등학교 학비는 대부분 장학금으로 다녔고, 비싼 학원을 다니지 않고 스스로 공부했다. 꿈은 예술 분야였지만 부모님 말에 순종하며 인문계에 진학했고 알아서 글을 쓰고 알아서 상을 타 왔다.


하지만 대학교 2학년 2학기. 남자 친구의 무례한 행동과 바람기로 심신이 피폐해지면서 우울증세가 찾아왔다. 부모님과의 상의 없이 휴학을 결정했고, 복학해서도 학점은 점점 떨어졌다. 살은 72kg까지 찌며 대인기피증도 찾아왔다. 그렇게 7년간 암흑기를 보내며 나의 부끄러운 모습을 새롭게 갱신했다.


폭락해버린 나의 자존감을 스스로 견디기 힘들었다. 그러한 모습을 가족에게 숨기고만 싶었다.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명절 연휴가 가장 힘들었다.


'잘 나가던 딸의 좌절과 실패를 보여드리면 부모님은 나에게 실망할 거야.'


남들에게 보일 때 난 자랑스럽고 잘난 딸이어야만 했다. 그래서 명절에 가족을 보러 갈 때면 마음은 썩어가고 눈에 슬픔이 가득했지만 괜찮은 척 크게 웃고 과하게 행동했다.


카드값에 쫓겨 독촉 전화를 받고 있을 때에도, 취업 사기를 당해 내 명의의 대포 통장이 생겨 경찰 조사를 받았을 때에도, 사랑의 상처로 마음이 문드러졌을 때에도, 출처를 알 수 없는 우울감에 목이 쉴 때까지 우는 밤이 많았어도. 연휴 내내 미소 가면을 쓰면서 지냈다.


그리고 눈치를 많이 봤다. 엄마가 음식을 하면 상 차리기 귀찮고 뒹굴며 놀고 싶어도 숟가락을 놓았다. 연휴 동안 쌓인 빨래를 보면 '엄마가 힘들 거야' 라며 일을 했다. 엄마를 돕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싶은 마음도 컸다.


이런 내적 갈등까지 더해져 명절 연휴가 끝나고, 혼자 사는 원룸으로 돌아오면 나는 꼭 몸살이 났다.




이러한 나의 이야기를 듣던 상담 선생님은 나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 어리광을 안 부려요?"


"안 그래도 부모님이 힘든데, 저까지 보태고 싶지 않았어요."


"오하루 씨한테 부모님은 그렇게 약한 존재예요? '엄마~ 나 오늘은 엄마가 해준 밥 먹고 싶은데, 나 그냥 쉬면 안 돼요?' 이렇게 말해봐도 되잖아요. '아빠 나 차비가 부족해요. 이번 달은 용돈 주실 수 있어요?' 할 수 있잖아요."


그러게, 나는 왜 못했을까. 아마 앞서 말한 그런 이유들 때문일 것이다. 나는 상담이 끝나고 언젠가 어리광을 꼭 피워보겠다고 다짐했다. 부모님과 나는 사랑하고 신뢰가 깊은 사이니까 어리광 피워도 되고, 부모님은 강한 분들이니까 솔직하게 힘든 부분을 얘기해도 된다고 생각을 바꿨다.


그 뒤로 나는 종종 어리광을 피우고 시시콜콜한 일상 이야기와 심각한 조울 증세도 부담 없이 나눴다. 거의 대부분 참고 들었던 엄마의 종교 이야기도 너무 길어지면 오늘은 그만하면 안 되냐고 말하기도 하고, 아빠에게 조울 증상과 회사에서 있었던 힘든 일들을 나누기도 했다.


심지어 저번 가족 모임 때는 엄마에게 재킷 주머니 부분을 고쳐달라고 가져왔다. 예전 같았으면 '혼자서 그냥 하고 말지!'하고 집에 두고 왔을 텐데. 이번엔 굳이 그 옷을 입고 왔다. 엄마는 웃으면서 재킷을 받아 들었고 언니까지 합세해 주머니를 뚫어주었다.


그때 나는 정말 좋았다. 사랑받고 있음을 느꼈다. '나이 31살에도 어리광 피우고 도움을 요청해도 괜찮구나.' 엄마는 귀찮아하지 않았고 나에게 실망하지도 않았고 사랑스럽게 대해주셨다.


나는 늘 혼자서 모든 걸 하려 했다. 고통은 삭히고 기쁜 일만 말했다. 기쁜 일이 없을 땐 기쁜 척을 했고, 도움을 요청하지도, 흔한 어리광도 부리지 못했다. 나는 이제 어리광 실컷 부릴 거다. 가족의 도움이 필요하면 적극적으로 요청할 거다. 어릴 때 못해본 거, 이왕 조울증 판정받은 김에 실컷 다 해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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