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일 땐, 말잇못

조울러의 일상 5

by 오하루


'반 고흐도 이런 증세로 자살했을까.'


나는 천장에 목매달아 죽어 있는 여자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며칠째 불을 끄면 저 여자가 보였다. 침대에 누우면 어김없이 등장해 보란 듯이 목을 매달아 죽는 과정을 반복했다.


처음에는 끔찍했지만 이젠 전혀 놀랍지도 않다. 숨이 막혀 발버둥 치는 여자를 무던하게 바라보다가 그녀의 팔다리가 축 쳐지면 '아, 죽었네?'하고 눈을 감았다 뜬다. 그러면 낡은 비디오가 자동 재생되는 것처럼 지지직. 여자는 다시 밧줄에 목을 매단다.


조증에서 우울증으로 넘어가고 얼마 후, 심장을 쥐어짜는 공황발작을 겪었다. 조증 때 내가 저질러놓은 일을 수습하느라 정신이 반쯤 나갔었고, 자책과 좌절, 자존감 하락은 극에 달해 있었다. 심지어 두 달 사귄, 어린 남자 친구가 '이제 연락을 끊자'라고 내 가슴을 후려쳤다. 그리곤 내 우울증은 더욱 심해졌다.


공황발작을 느꼈을 때, 숨이 막혀 (코로나 19) 마스크를 낄 수 없을 정도로 답답했다. 미어지는 가슴에 눈물이 폭포수처럼 흘렀고, 눈 앞이 흐릿해지더니 실신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 후로 저 여자는 매일 밤 나에게 찾아왔다.


섬망. 우울증이 극에 달할 때 생길 수 있는 증상이라 한다. 수면장애와 환각, 의식장애, 정신 운동 장애에 의해 생긴다. 갑작스럽게 발생하며 일시적인 망상과 환각이 보이고 초조함과 떨림이 동반되기도 한다. 정신의학과 전문의들 의견에 따르면 빈센트 반 고흐도 조울증과 섬망 등이 겹쳐 자살에 이르렀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나도 그렇게 되는 것일까?'


그러나 난 빈센트 반 고흐하고는 좀 달랐다. 나도 그처럼 끝없는 바닥까지 나를 끌어내리는 우울감과 희망 없는 미래가 두려웠다. 그래서 처음 저 여자를 보았을 때 무서워서 덜덜 떨며 울었다.


하지만 이젠 이 증세가 아무렇지 않은 걸 넘어서 재밌는 지경에 이르렀다. 찬찬히 생각해보니 나는 죽는 게 사는 것보다 더 편하다는 쪽이고, 자살이나 죽음에 대한 공포가 별로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 저 여자와 함께 불면의 밤을 지새웠다.


밤에 제대로 잠을 못 자는 탓도 있지만, 우울증일 때는 원래 모든 것이 무기력하다. 무거운 우울감이 마음에 박혀있고 행동은 나무늘보같이 느리다. 늦잠은 기본. 이동하는 발걸음에도 힘이 없고 키보드를 치는 손가락도 매가리가 하나도 없다.


방바닥 쓸기나 설거지는 말해 뭐하나. 화장실에 머리카락이 쌓이고 곰팡이가 피어도 청소를 하지 않았다. 조증일 때 시작한 뮤지컬 동호회, 형태소 분석 알바, 러닝은 정말이지 내팽개치고 싶다.


몸이 무기력하니 뇌를 굴리기도 매우 귀찮다. 그냥 머리가 텅 빈 허수아비처럼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러다 보니 아이데이션과 기획이 전부인 내 업무에 차질이 생겼다. 헐레벌떡 아슬하게 출근 도장을 찍고, 오전 4시간, 오후 4시간 대충대충 시간을 때우면서 버틴다.


조증일 땐 회사에서 "하루 씨가 하니까 일이 빨리 끝나네.", "에이스네요."라는 말을 자주 들었는데, 우울증일 땐 죄송하다는 소리를 달고 산다.


특히 같은 업무를 하는 옆 짝꿍에게는 자판기처럼 "하루 씨"라고 부르면 사과부터 했다. 그렇다고 진심이 아닌 것은 아니다. 나의 뇌가 말을 들어먹질 않으니 일에 효율이 안 나고, 새로운 일거리가 들어와도 내가 하지 못한다. 그럼 고스란히 그 동료의 몫이 되었다.


진정으로 그 동료에게 미안하지만, 나는 정말 머리가 안 돌아가서 일을 못하는 것이지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주면 좋겠다.


우울증일 때의 또 다른 증상은 불안함에 다리를 덜덜 떨고,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지도 못하는 것이다. 회사에서 거의 30분에 한 번씩 물 뜨러 바람 쐬러 화장실 가러 자리에서 일어난다. 내 기획안이 늦으니 디자인팀과 영상팀의 스케줄도 빡빡해져 버렸다. 그럴 때면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꾸역꾸역 일을 하고 퇴근을 했다.


집에서는 더 가관이다. 이유 모를 두려움과 불안함에 적막함을 견디지 못한다. 성가부터 재즈, 가수인 전 남자 친구의 노래를 번갈아가며 틀어 재낀다. 옆집에서 클레임을 걸든 말든 민폐 이웃으로 그렇게 미친년처럼. 더러운 몸을 씻지도 않고 엉엉 대성통곡을 하며 하루를 마친다.


우울증일 때의 내 삶은 말 그대로 말.잇.못. 말을 잇지 못할 정도다. 4개월 만에 사라진 열정에 스스로 끈기와 인내가 부족한 패배자라고 낙인찍게 된다. 조울증인지 몰랐을 때는 더더욱 그랬고, 알고 나서도 그건 변하지 않았다.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을 줄 알았는데, 자존감은 끝없이 내려가고 자기 비하와 몸과 뇌의 게으름은 매일매일 나를 더 못난 이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러운 순리 인양, 공황발작라는 새로운 친구가 나에게 찾아왔던 것이다.


그렇다. 나의 일상은 조증과 울증, 그들의 친구인 공황장애와 함께 뒤엉켜 있다. 어떻게 흐를지 모르지는 감정을 오롯이 받아내며 매일 새로운, 또 다른 나를 맞이하며 산다.




이전 08화공황 오기 좋은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