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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미정 Jan 11. 2017

무엇이 꿈이고 무엇이 현실이지...

꿈 속의 꿈...

여행... 첫번째 이야기

유일하게 놀라운 것은 아직도 우리가 놀랄 수 있다는 것이다.


-프랑수아 드 라로슈푸코


나이가 들면 웬만해서는 놀랄 일이 없다. 놀랄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새로움이라는 것 자체가 더 이상 새롭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요 며칠의 경험은 나에게는 특별하다. 새로움이 '새로움이 아닌 곳'에서 다가와서일까...


이태리... 나에게는 '대부'의 나라였다. 줄거리는 전혀 생각나지 않지만 정말 조폭 출신일 것 같은 알파치노의 화면을 뚫어버릴 것 같은 눈빛, 자욱한 담배연기, 안개 속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듯한 c minor 다 단조의 주제가... 이태리 사람들은 다들 '패밀리' 출신일 것 같다. 진중하고 정교한 독일음악에 젖어있는 나에게 이태리 음악은 왠지 가벼운 것 같다. 유럽 문명의 뿌리, 그리스 로마 신화의 로마가 이태리 로마라는 게 왠지 낯설다. 나에게 이태리는 그런 나라였다. 

밀라노에 도착해서 다음 날 저녁 고속기차로 앙코나로 향한다. 밀라노에서 동쪽, 로마에서 북동쪽으로 세 시간 정도 떨어진 항구마을이다. 화려한 조명의 대도시 혹은 한국의 소박한, 해수욕장을 낀 횟집 중심의 어촌 마을에 익어져 버린 나에게 낮게 깔린 공기와 인적이 드문 이런 항구는... 다르다. '다르다'고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한 번도 웃어본 적이 없을 것 같은 퉁명스러운 주인, 좁은 엘리베이터, 그리고 옆 방의 TV소리가 바로 코 앞에서 펼쳐지는 것 같은, 여관 같은 호텔... 이상하게도 낯설지 않다. 

올 것 같지 않던 아침이 오고 새해다. 남편이랑 해변에서 일출을 보고 싶었다. 지도상으로는 분명 바로 옆이 바다인데 가는 길을 찾을 수가 없다. 사람도 없고 차도 없다. 무뚝뚝하고 무표정한 도시다. 내가 생각하던 '해변'이 좁은 의미의, 문화화된, 학습된 해변이었구나... 마치 1Q84의 아침을 다녀온 느낌이다. 아니, 거꾸로다. 늘 1Q84의 아침에 있다가 지금이 진짜 '현실'의 아침인 것이다. 

불꽃놀이, 제야의 종, 운집한 사람들, 목소리를 한껏 높이는 TV 속 아나운서들, 이 모든 것들이 만들어진 것들이다. 원래는 아무 것도 없는데... 무엇을 있다 하고 무엇을 없다 하는 걸까... 있는 걸 없다 하고 없는 걸 있다 하는 것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 누군가 있다 하면 실제로 있는 양 누군가 없다 하면 실제로 없는 양 착각하며 그게 진실인 줄 알고 산다. 


내가 생각하던 이태리는 이태리와 아무 상관이 없었고 

내가 생각하던 한 해의 마지막 날은 한 해의 마지막 날과 아무 상관이 없었고

내가 생각하던 새해는 새해와 아무 상관이 없었다.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꿈일까...

이 모든 게 꿈에서 꾸는 다른 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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