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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미정 Feb 24. 2017

극락과 지옥...

지옥이라 생각한 그 곳이 극락으로 가는 바로 그 문이다.


수유리 화계사. 산문을 들어서니 꽤 번잡했던 주변이 말끔히 정리된다. 이게 도시에 자리한 절의 매력이구나. 도시의 마음을 쉬게 해주는 힘이 있다. 크지 않은 주차장을 지나 대웅전에서 간략 참배한다. 겨우 셋이 들어섰을 뿐인데 이미 꽉 찬 느낌이다. 대웅전을 나와 게으르게 누워 있는 뚱땡이 고양이를 보니 시간이 멈춘다. 고양이에게서 눈도 발도 못 떼는 동생을 몰아서 노스님의 처소로 들어선다. 노스님께서 다리를 다쳐 불편하신 데도 흔쾌히 마음을 내 주신 자리다. 작은 방이다. 작지만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와도 다 들어앉을 수 있을 것 같다. 해리 포터의 텐트처럼. 먼저 오신 분들이 벽으로 바짝 붙어 앉아 주시니 무려 셋이어도 절할 공간이 나온다.

운이 좋다. 먼저 오신 분들보다 좀더 안쪽의 구석자리를 확보한다.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우면 마음도 자유롭다. 여느 스님들의 방과 다르다. 고나무로 만들어진 장도 꽤 높고 입구를 제외하고는 사면이 거의 다 찼다. 제멋대로 높이 솟아오른 장들이 자유롭게 삐뚤빼뚤 서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다. 노스님도 고목나무처럼 움직이지 않으실 것 같다. 노스님의 온화한 미소도 이 고목나무의 일부가 되어 있는 것 같다.

노스님께서 이야기 보따리를 푸신다. 백장스님을 찾아와 불락인과를 물은 여우 이야기이다. 이야기란 언제 어디서 누가 해 주는지에 따라 그 빛깔과 맛이 다르다. 책에서 읽은 적이 있지만 노스님의 음성으로 들으니 역시 찰지다. 어릴 때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자란다는 게 이런 거겠다 싶다.  미처 누려보지 못한 호사다. 뒤이어 춘성 스님 이야기를 해 주신다. 극락세계를 접수하신 이야기다. 흥미진진, 신기방기하다. 뭐든 자동으로 척척 다 해결되는 극락세계보다 굳이 애써서 씹어야 하고 마셔야 하고 굳이 땀내서 걸어야 하는 사바세계가 더 좋다고 돌아오셨다 한다. 결국 극락이란 것도 생각하기 나름인가 보다.


그러고 보면 그렇게 힘들어했던 결혼 초기도 모두 나의 어리석음 때문이 아니었던가. 가져도 '더' 가지지 못한 걸 힘들어하고 공부하면서도 '더' 공부하지 못하는 걸 힘들어했다. 있어야 할 것들은 '이게 없었으면' 더 잘 살 것처럼 생각했다. 남편은 좋아도 시월드는 쏙 빼놓고 싶어했다. 이론적으로는 알았다. 당연하지... 시월드 없이 남편이 우째 지금의 남편이겠느냐고. 하지만 이론이 이론일 때는 현실에서 저만큼이란 얘기다. 그 '당연'의 힘이 클수록 현실에의 저항감은 더 크다. 그럼 남편이 좋으면 시월드도 좋을까? 살아본 사람은 안다. 순~ 새빨간 거짓말인 거... 남편이 좋을 수록 시월드로부터 오는 압박감과, 그리고 그에 비례하여 시월드에 대한 나의 저항감은 오히려 더 커진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에게 물었다. '더' 가졌으면 행복했을까? 더 가져서 그렇게 일할 필요가 없었으면 행복했을까? 아니다. 더 가졌어도 똑같이 일했을 것이다. 일하는 것도 재미있었으니까. 더 가졌으면 더 가졌다고 오히려 더 많이 썼을지도 모른다. 공부를 '더' 했으면 행복했을까? 원하는 만큼 공부했으면 행복했을까? 아니다. 시간이 더 있었어도 공부하는 양은 똑같았을 것이다. 시간이 많았으면 시간이 많아서 오히려 지지부진했을지도 모른다. 공부의 양은 집중력이지 시간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시월드는? 음... 여기는 좀 다르다. 워낙 역동적이고 복합적이다. 내가 언제 실수하고 있는지 모르는 게 가장 큰 실수다. 질문이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내가 해야 할 일이었고 내가 거부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 그 실수는 열 배 백 배가 되어 돌아온다. 그러고 보면 나도 참 둔하다. 그렇게 못 알아들었을까... 시월드의 언어를 알아듣는 데 거의 20년이 걸린 거 보면 오히려 내가 시월드의 인내심에 감사해야 할지도... 이 악순환의 고리는 어른께서 편찮으시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20년만에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이걸 왜 못 알아듣지?'



'이걸 어떻게 알아듣지?'


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최소한 서로가 못 알아듣는다는 걸 확인한 게 어딘가. 아버님 돌아가시고 어머님과 같이 살면서는 폭풍이 지나가기만 숨 죽이고 기다렸다. 그리고 그 폭풍은 오대산 보궁을 다녀오면서 멎었다.(우리 메느릴시더) 폭풍이 멎고 나니 지옥이라 생각했던 그 곳에 꽃이 피고 봄이 온다. 극락이다. 지옥이라 생각한 그 곳이 극락으로 가는 바로 그 문이었던 것이다.





煩惱卽是菩리

번뇌가 곧 깨달음이다.

-육조단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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