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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미정 Mar 03. 2017

길을 걸으며...

나는 정말로 걷고 있을까?


우연히 많은 사람들이 걸어가는 모습을 꽤 오랫동안 본 적이 있다. 늘 걷는 게 길이건만, 길에서 늘 보는 게 사람들이건만 정작 사람들이 걷는 걸 본 건 그 때가 처음인 것 같다. 힘겨워 보이는 사람도 있고 한 걸음 한 걸음 땅이 꺼질 듯 무겁게 걷는 사람도 있다. 인생의 무게가 느껴진다. 걸음이 빠르면서 경쾌한 사람이 있고 빠르면서 땅을 딛지 않고 앞으로 날아갈 듯 걷는 사람도 있다. 성격이 급할 것 같다. 조심스럽게 걷는 사람도 있다. 생각에 잠겨 걷는 걸 전혀 신경 못 쓰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다. 장난기 가득한 어린아이의 걸음에서는 생명이 느껴진다. 풋풋하고 순수한 생명감이다.

순간, 그런 생각이 든다.

'사람은 자기가 살아온 대로 걷는구나.' 살아온 모습이 한 순간에 모두 응축되어 있구나.


나는 걸을 때 정말로 걷고 있을까?


걸으면서 걷는다는 걸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목적지에 대한 생각, 다음 일정에 대한 생각, 입체적으로 펼쳐지는 여러 가지 계획 등등 늘 무언가에 쫓기는 것처럼 살았다.

아니, 바쁘고 싶었다. 늘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야 잘 사는 것인 줄 알았다. 헛헛함을 그렇게라도 채워야 하는 줄 알았다. 그렇게 하면 헛헛함이 채워질 줄 알았다.


하지만 헛헛함은

무언가를 채우려 할수록

무언가로 채울수록

더욱 커질 뿐이다.


이제...

걷는다.

한 발 한 발 정성껏 걷는다.

땅을 느끼며

바람을 느끼며

소리를 들으며

걷는다. 처음으로...

맨발에 전해져 오는 땅의 온기를 느낀다.

바람의 고운 손길이 내 몸에 스며드는 걸 느낀다.

많은 사람들의 소리없는 기도를

그들의 경건한 마음을 듣는다. 그러자...


멈춘다.

어딘가로 가겠다는 생각이...

멈춘다.

무언가를 하겠다는 생각이...


충만한 느낌이 올라온다.

그리고 그 자리에...


두 손을 모으고 선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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