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삶을 깊어지게 한다.
문상을 갔다. 어릴 적 친구의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나는 그 분을 뵌 적이 없다. 혹여라도 뵈었더라면 훨씬 더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2년 전엔 시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작년엔 어릴 때 날 키워주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분들을 보내고 나서야 죽음을 겪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 했다. 막상 옆에 계실 땐 전혀 느끼지 못했던 존재감이다. 느끼지 못했던 만큼 그 상실감은 크다. 땅이 뒤흔들릴 만큼. 준비되지 않은 상실이기에.
그리고 그 상실감은 다른 존재에 대한 눈길로 이어진다. 늘상 붙어 있어 감사함을 모르고 지내던 가족, 친지, 지인들, 그리고 그동안 잊고 지내던 친지들, 지인들. 그래서 그들의 죽음은 산 사람들을 새롭게 이어준다. 관계를 살리고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그래서 죽음은 삶을 깊어지게 한다. 정말 중요한 게 뭔지 다시 돌아보게 한다.
한번도 뵌 적이 없는 친구의 아버지이지만 그분이 뿌려 주신 의미 있는 씨앗을 감사드린다.
빗속을 걸었다.
정한 바 없이 내리는 비를
정한 바 없이 느끼고 싶었다.
겨울의 끝자락을 움켜쥐고
봄을 순순히 내놓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겨울의 고집이 아니라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겨울의 의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