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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미정 Dec 23. 2016

나는 안 갈란다~

시어머니와의 특별한 여행

가깝고도 먼 그대...


나는 시어머니의 말씀이 외국어보다 어렵다. 알아들었다고 생각하는데 나중에 보면 아니다. 어느날, 운동을 갔다오신 어머님이 말씀하신다.

"누구는 올해만 외국을 벌써 네 번을 갔다 왔단다. 나는 그런 거 다 필요없다.

해외 여행 같은 거 안 가도 아~무 상관없다."

그래도 이번엔 알아들은 것 같다. 게다가 마치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 대만 제원사 부처님 점안식에 참여하는 불교성지순례 기회가 찾아왔다. 남편도 열렬히 환영한다. 자리가 없어 대기자 명단에 올린 것도 순조롭게 풀려 다들 벅찬 마음으로 준비한다. 며느리랑 둘이서 간다고 동네에 자랑하시는 것도 완료. 그게 키 포인트다.

"(V자 손가락을 만들어) 며느리랑 둘이서 간다."

출발 당일 아침...


"나는 안 갈란다."


엥? 이게 웬 청천벽력인가! 안 가시다니... 이제 와서... 오늘 출발인데... 그렇게 원하시던 해외여행인데... 내가 뭘 또 잘못했나... 무슨 일이지...

"어제 후남이 (미국 사는 셋째 시누다. 물론 본명은 따로 있다.) 한테 전화왔는데 안동 가서 사 달라는 게 있으니 나는 안동 가서 장 볼란다."

"안동은 대만 갔다 와서 가시면 되쟎아요."

"아이다. 어제 전화 왔으니 내가 당장 가야 된다."

옆에 있던 남편이 버럭한다. 100% 감정이입이다.

"이제 와서? 그럼 가지 마소. (나를 가리키며) 당신 혼자서 가."

정말 그랬음 좋겠다. 어쨌든 취소하라시니까 취소하겠습니다, 하고서는 쫓기는 일정 주우러 나선다. 집에 돌아가는 길이 무겁고 무겁다. 들어가 보니 출타 중이시다. 음... 진짜 안 가시려나 보다. 나도 이 참에 생색 한번 내 보려 했는데 그러지 말았어야 하나 보다. 그래도 어차피 환불도 안 될 거고 내 짐이라도 싸야겠다.


문 여는 소리를 못 들었는데 언제 오셨는지 어머님이

"이 가방이면 될라 ('되겠니'의 안동 사투리)?" 하신다.

"그건 작으니까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명품' 가방을 가리키며) 이거 쓰세요."

휴우... 안심이다. 과정이야 어찌 됐건 가신다니까 좋다.


늦게 합류한 데다 대기까지 하는 바람에 비행기의 연결편을 구하지 못해 부산까지 운전이다. 어젯밤엔 소풍 가는 전날처럼 들떠서 새벽 두시까지 잠을 못 잤다 하신다. 의혹이 뭉글뭉글...


두시까지? 소풍가는 전날처럼? 들떠서?

이건 좋으셨다 얘기 아닌가?

그런데 아침에 안 가겠다 하신 거야?

헐... 뭐지?


여쭤보고 싶은데 5시간 내내 정말 한숨도 안 주무시고 열렬히 이야기 보따리를 푸신다. 물어볼 수가 없다. 너무 신나 하셔서 찬물 끼얹고 싶지 않다. 옛날 이야기... 살아오신 이야기... 의외로 새로 듣는 이야기가 많다. 깊은 데 꽁꽁 싸매 두셨던 이야기들이다. 듣다 보니 감정이입이 되면서 나도 재미지다. 아침 일이 어느새 감정 밖으로 사라진다.


다음날 아침, 김해공항서 일행들과 합류한다. 부산, 광주, 통도사 등 여러 곳에서 오셨다. 어머니 연배의 낯익은 보살님들이 계셔서 다행이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여튼... 출발이다. 

대만... 날씨가 따뜻하다. 바나나, 파파야, 코코넛 등 tv에서 보던 나무들이 지천이다. 이게 아열대의 모습이구나. 길마다 가득한 오토바이, 칼같이 정확하게 주차된 모습이 인상적이다. 대만에 불교가 성할 거라 짐작은 했지만 솔직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가는 데마다 모셔진 부처님들의 사이즈에 완전히 압도당한다. 부처님들이 법당보다 더 큰 것 같다. 그 큰 부처님들을 보고 내내 감탄사를 연발하시는 어머니를 보니 귀엽기도 하다.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부처님을 찾지 말라셨지만 그래도 우리같은 중생에게 특정한 공간과 특정한 규모에서 느껴지는 그 무게감을 통제하기란 쉽지 않다.

어느새 어머니는 비슷한 연배의 보살님들과 한두마디 주고받기 시작하신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눈에 서로 알아보시는 그 친화력이 좋다. 나로서는 따라가기 힘든 경지이다. 그게 연륜이던가. 걸음이 불편하신 터라 불안한 마음에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데,


"나는 안 올라 캤는데

우리 메느리가 하도 가자 캐싸서.."

아하~ 탁! 하고 불이 들어온다. 당신은 전혀 마음이 없는데 메느리가 하도 성화여서 오게 되셨다. 그러고 보니 그 쪽이 모양새가 더 낫다. 당신이 오고 싶다셔서 자식들이 보내드리는 것보다 자식들 성화로 억지로 (?), 자식들 체면 (?) 생각해서 와 주시는 쪽으로. 바보바보! 그런 깊은 뜻도 모르고...

자다가 생긴 "떡"이다. 얼떨결에 어머니를 깊이 생각하는 며느리가 되었다. 표정관리가 안 된다. 나는 취소하라시는 줄 알고 정말 취소할 뻔했었는데...

이제는 기꺼이 버럭 해 드리리. 어머니의 귀여운 투정에 이제는 기꺼이 장단 맞추리.


불광사가 넓어 걷기 힘들어 하신 어머님! 두개의 바퀴 달린 휠체어로 편의 이동



                                

行智具備는                행지구비

如車二輪이요             여거이륜 


自利利他는                 자리이타

如鳥兩翼이니라          여조량익 



지혜와 행 

이 둘을 갖춤은

길을 굴러가는 수레의 

두 바퀴와 같고 


자기를 이롭게 하면서 

남도 이롭게  하는 것은 

허공을 나는 

새의 두 날개와도 같도다.


              -초발심자경문, 법공양 





나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는 며느리와 함께 

서로 날개를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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