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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미정 Dec 30. 2016

그게 욕심이야...

욕심에 둘러싸이면 욕심을 못 본다.


연주가 며칠 안 남았다. 막판 벼락치기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이번엔 처음부터 일정이 무리였다. 만만하게 봤던 실내악 곡이 막상 연습 시작하니 장난 아니다. 그것도 전악장으로 세 곡이다. 한 달 안에 구겨 넣어야 하는 게 엄청 부담스럽다. 손가락도 안 돈다. 이런 무모한 일정을 왜 잡았을까... 매번 하는 후회지만 매번 힘들고 아프다. 

욕심은 없다. 그냥 좋은 사람들하고 좋은 연주장에서 같이 연주하면 된다. 잘 할 필요도 없고 그냥 무사히 마치기만 했으면 좋겠다. '무사히...' 언제나 내 연주의 최종 목적지다.

처음 연습 시작할 때는 진도도 죽죽 나가고 이대로면 한 달 안에 어떻게 치르기는 하겠다 싶었다. 곡들이 너무 좋아서이다. 무모한 일정을 감행하게 한 범인이다. 내가 소화할 수 있는지 따져보기도 전에 '그냥 연주하고 싶게' 만든 것이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지지부진이다. 손도 안 돌고 외워지지도 않는다. 말 그대로 하루 종일 피아노 앞에 앉아서 연습하는데도 진도가 안 나간다. 음악적으로 꼼꼼히 분석하고 꼼꼼히 연습하는데도 소용이 없다. 

그냥 뭔가가 콱! 막혀버렸다. 



스님께서 말씀하신다.

"욕심이 생겨서 그래."

"욕심이요? 전 욕심 없는데... 잘 하고 싶단 생각 전혀 없고 그냥 살아남고 싶은 것뿐이에요. 앞으로 이 사람들하고 계속 연주할 수 있었으면 좋겠거든요.


"그게 욕심이야"

"......" 그게 어떻게 욕심이야! 잘 하려는 게 아닌데...


저항한다. 욕심이 아니라고... 이 정도는 연주하는 사람의 기본적인 소명이라고. 연주하겠다는 생각도 없이 어떻게 연주한단 말인가.........(한참이 흐른다)...

그게 욕심인가? 욕심이었어? '잘' 하겠다는 게 아니라 '하겠다'는 것 자체가 욕심이었어?


그랬다. 

그 무대에서 살아남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던 것이다. 그 사람들하고 앞으로도 계속 연주하고 싶다는 것 자체가 욕심이었다. 인정받고 싶다는 그 생각에 음악을 못 보고 있었던 것이다.그래서 콱! 막혀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또 하나의 숙제가 보인다. 욕심이란 걸 알았지만 욕심을 내려놓는다는 것조차도 욕심이다. 욕심을 내려놓으면 잘 될 거란 걸 알기에.. 더 잘하기 위해 욕심을 내려놓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도 욕심이다. 욕심의 고리는 정말 끝이 없다. 그래, 내려놓으리, 끊임없이 내려놓으리, 끊임없이... 


마음 닦는 수행 


 輪迴火宅門                    윤회화택문 

 於無量世                        어무량세

 貪慾不捨일새니라              탐욕불사 


불에 타는 듯 온갖 고통 속에 윤회하는 것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월 속에서 

헛된 욕심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초발심자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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