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에 신이 놀러 오시면

요가와 식사

by 영지



내 몸에 신이 놀러 오시면 어떤 음식을 내어드릴까요,

내 몸에 신이 놀러 오시면 어떤 말들을 입에 담을까요.

아무거나 먹어서 되겠나 아무 말이나 해서 되겠나,

아낌없이 주고자 하시니 내 그릇을 깨끗이 닦아.


내가 좋아하기로 손에 꼽는 가수 수잔의 <alive>라는 앨범 중에 수록된 '수신여신' 가사의 일부다. 신명 나는 선율 위에서 통통거리며 노는 추임새가 담긴 노래. 저런 가사가 어떻게 노래가 될지 모르겠다고 생각된다면 바로 들어봐도 좋을 것 같다. 흥얼흥얼 따라 하기 좋은 노래일 것이다. (클릭) 내 몸에 신이 놀러 오시면 어떤 음식을 내어드려야 할까.



- 네가 없으면 세상도 없어.

몇 해 전, 고기를 덜 먹으라는 요가 선생님의 말에 채식을 한다고 말씀드리니 돌아온 답변이다. 선생님의 말이 꼭 ‘네가 뭘 알고나 채식을 하냐’라는 말로 삐딱하게 들려서 이후로도 그 말을 몇 번이나 곱씹었다. 아니 선생님은 공장식 사육이 얼마나 잔인한지 알고 하는 소리인가, 채식한다고 한 겨울이 오이를 와그작 먹지는 않는다고, 하면서. 아직 선생님에게 말씀드리지 않았지만 최근에 10년 가까이 잡고 있던 채식주의자의 정체성을 내려놓았다. 이유는... 나의 모순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를 보고 오직 인간이 먹기 위해 기르는 돼지가 어떤 환경에서 자라는지를 보고는 충격을 받았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눈물을 흘리며 단박에 비건을 결심한 그때 나이가 23살. 내가 먹는 식사를 제대로 차려본 적도 없는 것은 물론이고 재료가 가진 성질에 대한 이해도 없는 때였다. 샐러드와 비건빵, 구황작물을 주식으로 삼다가 두 달 만에 월경이 중단된 건 당연했다.


뒤늦게 너무 차가운 성질의 음식이 몸을 차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몸이 좋지 않아서, 바뀐 환경에서 급식을 먹을 수밖에 없어서 등 몇 번의 우여곡절을 거친 후에 직접 요리를 할 수 있는 환경에서 지내며 채식생활이 보다 나아졌다. 누군가에게 대접할 만큼 요리실력이 늘었을 때는 채식운동 단체에서 활동도 하고 비건 친구들도 사귀면서 즐거운 채식 생활을 이어갔다.


비건에 적응해 가는 것 같았으나 실은 내 안에 고기를 먹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엄마에게 채식하는 딸을 하나도 '배려'하지 않는 밥을 차려준다고 불평하면서도 오랜만에 만난 엄마표 제육볶음 앞에서 마음이 흔들렸다. 채소만 건져 먹다가 채소 아래에 고기를 감춰서 먹었다. 부끄럽고 맛있었다. 어느 날은 피로와 스트레스가 쌓인 퇴근길에 돈까스가 너무 먹고 싶어 충동적으로 분식집엘 들어갔다. 돈까스를 주문하는 것보다 먼저 한 일은 내가 채식주의자라는 걸 이 공간에 아는 사람이 있는가 없는가를 살피는 일이었다. 돈까스는 찝찝하고 맛있었다. 어려서부터 나의 소울푸드인 순대트럭에 마음껏 반가워 할 수도 없었고, 가끔 기운이 달려 먹을 때에도 부끄러운 일로 고백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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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런 모순이 쌓여가 어느 시점이 이르렀을 때 나는 조금 더 솔직해지고 싶었다. 할아버지댁 마당에 모여서 친척들과 바베큐를 먹을 때 그만 눈살을 찌푸리고 싶었다. 식당에 가서 메뉴판을 받을 때 그만 눈치 보고 싶었다. 갑작스러운 희귀병을 판정받고 병원을 오가던 어느 날 아빠가 가끔 고기를 먹어도 괜찮다고 말했을 때 마음의 빗장이 스르르 풀렸다는 것은 괜히 덧붙이는 핑계일까.


아무튼 나는 10년 만에 기름진 돈까스가 먹고 싶으면 눈치 보지 않고 먹고, 순대트럭을 만나는 반가움을 숨기지 않는다. 세상에 채식주의가 아닌 것이 이렇게 편리한 것이었나 매번 놀랍다. 그렇다고 내가 고기를 먹지 않았던 이유들을 깡그리 덮어두는 것은 아니다. 채식주의 정체성을 내려놓아도 나의 식사의 대부분은 채식으로 이루어지고, 바깥 식사에서 허물없이 고기를 선택하는 일이 너무 잦아지지 않게 주의를 한다. 내 안에는 여전히 가둬져 자라는 돼지와 닭, 소를 보고 우는 내가 있다. 살생하지 않는 것을 금지계로 새기는 요가 수련자도, 기후위기시대에 어떤 먹거리를 선택할 것인가 고민하는 세계시민도, 채식인들의 어려운 외식환경을 개선하려는 활동가도 모두 내 안에서 더 나은 역할을 고민하고 있다.


식탁 앞에서 나의 모순을 바라보면서 요가 선생님이 한 말이 종종 떠올랐다. ‘내가 없으면 이 세상도 없다’는 말. 채식에 대한 이해가 적은 사람들은 채식을 곧 샐러드라 생각을 하기 쉬운데 아마 선생님도 그러시지 않았을까. 몸이 찬 내가 몸을 더 차게하는 음식들을 자주 먹을까 봐 걱정한 것이 아니었을까. 내 몸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내적 동기가 아니라 '외적 동기'로 식사를 선택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단순한 결심으로 매 끼니를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으니까. 그렇게 시작한 채식에서 분명 풀기 어려운 매듭을 지어낼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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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인데, 뭘 또 먹나.

이번에는 큰 스승님이다. 저녁 수련 전에 삼삼오오 모여서 싸가지고 온 음식을 풀어놓는 것을 보고 지나가면서 하는 말씀이다. 스승님은 수련을 하면서, 건강을 위해서 소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때마다 자주 말씀하시기에, 어쩐지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것 같아 민망했다. 스승님의 지도를 받는 도반들은 너무 많이 퍼 온 식사 앞에서 자주 눈치를 보며 소식 '흉내'를 내기도 한다.


'어떻게 먹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너무나 많은 세상이다. 다양한 먹기 방식의 홍수 속에서도 '소식(小食)'만큼은, 서로 대치되는 점이 많은 동서양의 의학에서도 모두 인정하는 건강한 먹기의 방법이다. 생태 운동가이자 언론인인 후나세 슌스케는 책 <절반만 먹어야 두 배 오래 산다>에서 '하루 세끼를 먹는데 드는 에너지는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는데 드는 에너지와 맞먹는다'라고 주장하며 ‘삼시 세 끼’의 의무감을 깨고 소식을 강조한다.


위스콘신대학교 연구팀이 원숭이를 대상으로 20년간 실시한 실험에 따르면 70%만 먹은 원숭이의 생존율이 마음껏 먹은 원숭이의 1.6배가 된다고 한다. 연구는 저칼로리식이 수명을 연장하고 나이를 먹었을 때의 생활의 질도 향상되며, 특히 암이나 심장병, 당뇨의 발병을 현저히 낮추고 뇌기능과 성기능을 개선한다고 한다. 또한 세계에서 수많은 열량 제한 실험들이 이루어지고 있고 열량 제한에 따른 수명 연장 효과는 효모나 짚신벌레 등의 원생동물로부터 선충 등의 미생물, 나아가 물벼룩 등의 갑각류, 곤충, 그리고 쥐와 원숭이 등의 포유류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생명체에 공통적으로 관찰된다고 주장한다. (동물실험에 이용되는 모든 동물들에게 안타까움과 감사를 표합니다.)


많은 이들이 소식의 중요성을 알지만 쉽지 않다. 스트레스가 많은 현대사회에서 먹는 것은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것에서 벗어나서 해소하는 방법이 된다. 내 몸은 지금 살집이 없는 몸이지만 10대 후반에서 20대 중반까지 15kg의 몸무게 변화를 겪어왔다. 전공의 특성상 빡빡한 규칙이 들어찬 생활과 위계가 있는 관계들로 몸과 마음에 스트레스가 쌓일 때 해소를 위해 택한 방법은 먹는 거였다. 친구들과 뷔페에 가서 '배꼽에서 음식물이 튀어나올 때까지' 폭식하는 것은 주말마다 늘 있는 일이었다. 실습으로 상선을 탔을 때는 식자재 창고에서 과자나 우유를 훔쳐서 방문을 걸어 잠그고 먹었다. 어떤 것도 선택할 수 없어 잠시 쉬어가는 시기에는 삶에 대한 공허함에 몸부림치다가 몸에 음식을 욱여넣으며 무언가를 채우려 하다가 배탈로 괴로워하며 잠에 들곤 했다.


요가를 만나고는 변화 없는 제 몸을 찾은 것 같다. 절제력도 늘고 감각이 예민해져서 폭식을 '못하는' 쪽에 가깝다. 여전히 배가 다 채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식탁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소식은 쉽지 않지만. 이 글을 쓰는 전날의 밤에도 피로감과 압박감에 늦은 시간에도 자꾸 먹을 것을 입에 넣은 바람에 얼굴이 폭 부어버렸다.



요가에서 오래전부터 식생활을 강조해 왔다. <하타요가프라디피카>에서는 요가를 실패하는 요인 여섯 가지로 과식, 과로, 다언(多言), 사회적 통념을 고집하는 것, 무절제한 교제, 변덕스러움을 꼽았다. 또 열 가지 금지계로는 살생하지 않을 것, 거짓말하지 않을 것, 도둑질하지 않을 것, 음란하지 않을 것, 인내, 굳은 의지, 자비, 꾸밈없는 표현, 절식, 청정을 말한다. 여기서 절식(節食)은 '소식'에 가까운 뜻으로 '부드럽고 향긋한 음식을 섭취하되 위장의 4분의 1을 비워두고, 쉬바신에게 기쁘게 공양을 올리는 기분으로 식사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경전은 금지계 중의 제일을 절식으로 꼽는다.


이태영 선생님은 책 <하타요가>에서 요가를 수행하기 위해서 올바른 식생활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그 방법으로 조금 먹는다, 때에 맞춰 먹는다, 채식을 한다, 지나치게 자극적인 음식을 삼간다, 오신채를 먹지 않는다,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다, 부적당한 음식을 먹지 않아야 한다,라고 요약했다. '소식하지 않고서는 어떠한 요가에도 성공할 수 없다'는 하타요가의 경전을 언급하며 위장은 반만은 음식으로 채우고, 나머지 반은 물로 채우고, 나머지는 공기가 자유롭게 드나들도록 비우라고 덧붙였다. 또 오후에는 음식을 소화흡수하는 기관보다 다른 내장기관이 활동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오후 불식을 강조했다.



나는 요즘 갓 지은 쌀밥에 된장국, 제철 채소를 찌거나 구워서 장으로 만든 소스를 곁들이는 식사를 자주 차린다. 동거인은 단백질이 부족하니 달걀이라도 챙겨 먹으라고 자주 말하면서 장 볼 때 두부나 템페를 챙겨주기도 한다. 나는 매 끼니마다 단백질을 굳이 챙겨 먹을 필요는 없다고 말하면서도 언니의 정성과 약간의 찝찝함에 단백질 음식을 챙기기도 한다. 동거인만 그럴까. 최근 오랜만에 친지들이 모여 먹으면서 먹는 이야기로 주제가 옮겨갔다. 탄수화물을 최대한 배제하고 지방을 먹는 저탄고지며, 공복의 시간을 일정 시간 가져가는 간헐적 단식이며, 노화를 늦추는 저속노화까지 다양한 먹기의 방법이 오가면서 서로의 의견에 참견을 더한다. 채식을 하면서 먹거리 공부를 틈틈이 해온 나는 특히 탄수화물을 무장적 살찌는 주범으로 만들거나 고기를 자주 먹는 것을 정당화하는 '고지(高脂)'에서는 입을 열고 말을 보태고 싶었으나 분위기가 고조되는데 보태는 것 같아서 참았다. 서로 다른 의견이 자칫 다툼으로 향할 가능성으로 번지던 그때에 막내 이모가 한 마디로 정리를 했다. '그냥 골고루 적당해 먹으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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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이자 푸드라이터인 정재훈 작가는 책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소식의 과학>에서 '건강과 장수, 안티에이징에 대한 이야기는 어느 것이든 조금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며 '부분적으로 과학적 사실에 근거를 두긴 했지만 지나치게 부풀린 이야기이거나 지나친 예측일 경우가 많다'라고 말한다. 나 역시 내가 궁금하고, 믿고 싶고, 알고 싶은 방향의 책을 펼쳐놓고 이 글을 쓴다.


책은 소식이 개인의 건강이나 수명뿐 아니라 인류의 지속가능성과도 연결된다고 마무리 짓는다. 세계 인구는 현재 추세로 계속 늘어날 경우 2050년에는 100억에 이를 예정이다. 기후 위기로 식량 생산은 줄어들고 가격은 배가 넘을 것이다. 어떤 식단으로 건강할 수 있다고 하는 말이 우리가 지구에 사는 동안 마땅히 해야 하는 말인지를 고찰해 보아야 할 때인 것이다.


더욱이 사람마다 생활의 패턴과 어려서부터 가져온 입맛과 체질에 따라서 당기고 필요로 하는 음식이 다르다. 건강상의 문제가 있다면 주의해야 음식도 있다. 모두 다른 몸과 역사를 가진 우리는 식사의 모습도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제 '어떻게 먹어야 한다'는 주장은 좀 줄여도 좋지 않을까. 뭐가 맞다는 식사법을 논하기 전에 그래래서 지금 나는 어떻게 먹고 있는가를, 왜 그렇게 먹는가를 더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



“수신여신(修身如神) 자증극귀(自贈極貴) 가이가세(可以佳世)이어라”


수잔의 <수신여신> 후렴구에는 이런 한자어가 반복된다. 뜻은 '자신을 신처럼 여기고(수신여신), 스스로를 귀하게 여김으로써(자긍극귀), 그 힘이 세상까지 아름답게 한다(가이가세)'는 뜻이다. 요가의 세계에서 우리는 대우주를 닮은 소우주이다. 우리가 먹는 일을 신중히 하고 주의를 기울인다면 그 생명력으로 세상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들 것이다. 우리 몸 자체가 우주이니 어떻게 먹는가, 왜 그렇게 먹어야 하는가 하는 고민의 시작 그 자체로 세상은 아름다워질 것이다. 무엇을 먹을까 하는 고민이 들 때 혹은 삐뚤어지고 싶은 식사 앞에서 노래를 흥얼 거린다. '내 몸에 신이 놀러 오시면 어떤 음식을 내어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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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도서

- <절반만 먹어야 두 배 오래 산다 (후나세 슌스케)>

- <하타요가 (이태영)>

-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소식의 과학(정재훈)>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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