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바쁜 거 아시면서 왜 자꾸 질문하셔요) 이제 가세요!
의사 선생님은 질문을 자꾸 하는 아빠에게 솜방망이 같은 호통을 치며 내보냈다. 나는 헤헤거리는 감사인사를 하고는 아빠의 등을 떠밀며 문 밖을 나왔다. 그래봐야 고작 3분이 지났을 뿐이다.
그저 수치에 따라서 약을 줄이거나 늘이는 처방의 연속에 오늘도 속으로 한숨을 쉬지만 이제 처방에 의견을 얹는 것은 그만두었다. 으리으리한 병원 앞에서 혼자서 중얼중얼거려봤자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그냥 이렇게 병원을 다니는 것은 뭐라도 하는 것 같으니까. 바늘 찔리는 일이 많은 아빠의 팔뚝을 괜히 조물거린다.
오전 일정을 끝내고 부랴부랴 병원으로 향했다. 아빠랑 점심을 먹고, 의사 선생님이 읊어주는 처방을 받아 적어 가족들에게 보냈다.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버스나 기차를 예매하고 아빠가 좌석에 앉는 것을 확인하는 것으로 나의 일은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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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집에 다녀온 후 아빠만 생각하면 한숨이 나왔다. 아빠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강아지 산책을 시켜준 후 아침밥을 간단하게 먹는데 먹잘 것 없는 차림과 생기 없는 아빠의 표정을 보니 약을 먹기 위해서 겨우 먹는 밥 같았다. 하루 종일 티브이에 눈을 두거나 유튜브에 귀를 두다가 스르륵 잠에 들고 그러다가 깨면 세상 희망 없는 표정을 지으면서 집안을 돌아다닌다. 저런 일상이라면 건강한 사람도 병들지 않을까. 아빠의 줄어든 표정과 에너지를 볼 때마다 나는 마음 한 구석이 찌릿했다.
일주일도 안되어서 그런 아빠의 얼굴을 다시 보아야 한다니 자신이 없었다. 보호자가 꼭 필요하지 않은 병원 방문에 동행하는 것에 회의를 품고 있지만 도리와 연민으로 뒤엉켜 꾸역꾸역 병원으로 향하는 발걸음. 왜 하필 시간이 되어서.
오늘은 아빠에게 재롱과 회유를 번갈아가면서 건네면서 대화를 좀 했다. 명절에라도 꼭 나갔던 방범대 활동은 그만두었다고 한다. 꼭 경찰복 같은 옷을 입은 아빠가 참 멋졌는데. 동네를 위해 좋은 일을 하는 아빠의 뿌듯함이 나에게도 전해져 좋았는데. 형님 형님 하면서 따르는 동네 동생들 앞에서 어깨가 솟는 모습이 참 다행스러웠는데. 서로 죽고 못 살아 우정반지까지 나눠끼던 친구들도 통 만나지 못하고, 엄마 일터에서 코로나에 걸린 사람이 나왔다는 것에 바짝 쪼는 요즘이라고.
경제활동을 그만둔 후 지출만 있는 지갑이 걱정되었는지 일을 곧 할거라는 허풍을 부린다든지, 딸이 평생을 함께하고 싶다는 사람을 소개시켜 주고 싶다는 말을 언제인지 모를 때로 미루려는(아마 본인이 나아졌을 때로) 고집을 부리는 아빠가 애석하다. 몸도 마음도 바짝 움츠러든 아빠에게 괜히 색칠공부를 사줄까 물어보며 실없는 웃음을 얻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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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마음을 쓰지 말자. 돌보는 사람은 돌보는 일 밖의 일상을 살아야 한다. 병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만드는지, 병과 함께 살아가는 건 어떤 것인지 찬찬히 관찰해 보는 마음을 갖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