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우리 장독대가 함께 숨 쉬고 있다

알맞게 익어가는 중 : 장과 함께

by 영지


장 담그는 날 아침. 장독대가 있는 썸머네 집으로 다시 모였다.


어제 항아리 소독을 못해놓고 간 것이 내심 마음에 걸려서 아침부터 서둘렀는데 달리 아는 방법이 없어 팔팔 끓는 물을 담아놓는 열탕 소독을 했다. 본래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지푸라기를 항아리 안에 넣고 활활 태워보고 싶었는데 인근 주민들이 불이 났나 걱정할까, 집안에 혹시 스프링클러가 작동할까 꾹 참았다. 능숙한 누군가가 어떻게 하면 된다고 알려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문제지와 항상 함께 있는 답안지 같은 사람이.


어제 미리 녹여놓은 소금물이 담긴 대야를 보니 바닥에 작은 모래알들이 가라앉았다. 바닷가에서 놀고 온 옷을 빤 대야에 가라앉은 모래 같았다. 새하얗게만 보이던 굵은소금에는 이런 것들이 담겨있구나. 그 모래들이 소금에 섞인 불순물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로 느껴졌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간단하다. 항아리에 메주를 차곡차곡 채워 넣고 소금물을 붓고, 마른 고추와 숯을 띄우고, 대나무살로 메주가 뜨지 않도록 고정하면 끝. 본격적으로 담그기 전 아침으로 먹을 김밥을 펼쳐놓고 무민이 내려주는 따뜻한 커피를 마셨다. 친구들의 퉁퉁 부은 얼굴과 새집진 머리가 귀여웠다. 아 물론 나도 그랬을 것이다. 수다로 웃음으로 얼굴의 부기도 서두르는 마음도 가라앉혔다.


1.8층 정도의 높이, 작은 문으로 허리를 숙이고 들어가면 장독대와 빨래건조대가 있는 공간이 나온다. 그곳이 우리의 장독대가 있을 곳이다. 20여 개 정도의 항아리 사이에 우리의 항아리도 자리를 잡았다. 우리는 모든 걸 함께 했다. 돌아가면서 메주를 하나씩 항아리에 담고 소금물도 한 바가지씩 나눠서 담았다. 고추와 숯도 하나씩 띄웠다. 대나무 살도 하나씩 끼웠다. 중간중간 한 명 한 명 사진과 영상도 찍었다. 아마 한 명이 했으면 5분도 안되어서 해치울 일을 우리는 아주아주 늘여서 천천히 함께 했다. 이런 우리가 어설프고 웃기고 귀여웠다.


그중에서도 정말 오랜 시간을 잡아먹는 시간이 있었는데, 소금물의 모래를 커피필터로 걸러내기. 그것도 냄비 위에서 커피필터를 손으로 들고서. 천천히 내려오는 물을 기다리는데 가장 많은 시간을 썼다. 아마 반장님이 지나가다가 보면 뭐 하냐고 한심한 듯 쳐다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해주는 답안지가 없어서 우리는 앉아서 똑똑 덜어지는 맑은 소금물을 기다렸다. 봄을 맞는 따뜻한 아침에 볕이 좋아서였을까,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함께하는 순간이 즐거워서였을까. 내가 생각해도 좀 멍청한 순간이었으나 그 느린 시간은 살면서 몇 안되게 느끼는 '이렇게만 살면 좋겠다'의 한 장면이 되었다.



어젯밤, 썸머 동거인의 친구가 우리가 장 담그기를 준비하는 걸 호기심 있게 바라보더니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근대 진짜 이거 왜 담그시는 거예요?' 우리는 그 질문이 너무 웃겨서 우하하 웃었다. 우리는 너무 담그고만 싶었기 때문에 이걸 왜 담그는지에 대한 질문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된장을 담근다고 말하면 함께 담가보고 싶다는 친구들이 주변에 더 많았기 때문이다. 되려 그 질문이 더 생소한 우리는 이렇게 말했다. '왜냐고요?... 재미있잖아요!' 우리는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서 장을 담갔다. 그리고 담그는 동안 정말 많이 웃었다. 우리가 이렇게 웃으면서 담근 된장은 정말이지 맛있을 것 같다.


장 담그기 아침의 소란은 끝이 났다. 일 년 내내 장을 두고 만날 생각에 기대가 되었다. 항아리도 꾸미고, 장도 가르고 또 함께 담은 장으로 맛있는 음식을 먹을 그날들을 떠올리는 것으로도 미소가 지어졌다. 이 서울에 우리의 장독대가 우리와 함께 숨을 쉬고 있구나. 마음 한 구석이 든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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