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먼저 발명된 기계 : 돈 벌어오는 아빠
사진: Unsplash의Alec Favale
아파트가 불러온 또 다른 슬픈 이야기는 중산층을 나누는 기준이 집과 차가 되어버렸다는 데 있다. 무형의 가치관과 문화가 그 세대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유형의 돈과 재물이 그 세대를 대변하는 순간 아름답지 못한 현상이 발생한다. 현재의 한국 사회 역시 그렇다. 세계라고 해서 별반 다를 바는 없지만 그래도 서유럽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매슬로의 인정 욕구를 보면 모든 사람에게 있는 본능적인 생존의 욕구와 안전의 욕구는 동물적인 욕구이기 때문에 인간이라고 하는 종이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로 일치하는 한 피부가 하얗거나 혹은 검은색이거나 같을 것이다. 또한 어느 정도 국가 제도가 잘 갖춰지고 국가 권력이 정상적인 기능을 발휘하는 국가라면 이 두 가지 욕구는 시스템적으로 갖춰진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세 번째 욕구의 경우엔 한 사회가 제도적인 정비를 통해서만 갖출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장기간에 걸쳐 교육을 통해 어떤 분위기와 세태를 조장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그 나라에 거주하고 있는 주권자인 시민이 어떤 사고방식을 가졌는가가 더 중요하다. 알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의 문제라고도 할 수 있는 논란이 많은 부분이다. 어찌 되었건 세 번째 욕구인 애정과 소속의 욕구는 우리에게 어떤 가치관을 가진 사회에 속했느냐에 따라 그 애정, 소속감에 대한 기준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에 곧 그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시민의 품격과 직결된다고 볼 수 있다. 중산층이라고 하면 그 국가의 가장 보편적이고 일반화된 시민 사회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중산층의 기준은 곧 그 국가의 주된 시민 사회의 품격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유독 이 기준이 재산과 관련이 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이 재산이 곧 애정과 소속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필요한 필요충분조건이 되어버렸다. 결국 아파트 현상도 단순히 아파트라고 하는 건물 자체의 선호도라기보다는 재산을 증식하기 좋은 수단으로써의 선호가 되었고 중산층의 기준을 나누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자리했다.
흔히 말하는 전후 베이비붐 세대 때는 그것이 어느 정도 타당한 수준 내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아파트는 그때와 다르게 재산 증식이 아니라 로또 청약과 같은 대박의 상징, 계층 사다리와 같은 후세대를 위해 처절하게 매달려 있어야 하는 동아줄 같은 것으로 변질되었다. 가격도 터무니없이 비싸기 때문에 한 세대 내에서 과연 평균 소득으로 그것을 소유할 수나 있긴 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처음부터 아파트가 그랬던 것은 아니다. 초창기 아파트는 밀려드는 도시화 수요를 감당하고자 임대 주택으로 건축되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아파트가 소유물이 되면서부터 가격 경쟁이 일어나고 중산층의 기준이 되어버린 것이다. 덕분에 현시대를 살고 있는 아빠들은 이런 계층 사다리를 이뤄내기 위해서 아파트를 구매해야 하는 중요한 사명이 생겨버렸다. 예로부터 집안에서 남자의 역할은 신체적인 유리점을 이용하여 상대적으로 조금 더 위험한 활동을 했었다. 결국 그것이 먹는 문제라는 1차원적인 욕구 문제에 직결되는 것이었는데 가령 사냥을 한다던가 먼 곳으로 채집을 하러 떠난다던가 하는 일이다. 더해서 힘든 농사를 지어야 했고, 노동자로 일을 해야 했다. 하지만 산업화 시대에는 남자, 여자 할 것 없어 자본가가 아니라면 모두가 노동자로 노동을 해야 했으므로 어찌 보면 공평하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물론 지금도 일을 하는 여성들이 많다. 결혼 후에도 맞벌이를 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에 알게 모르게 저변에 깔려있는 의식의 구조를 생각해 보면 결국 집은 남자가 결혼을 위해 준비해야 할 어떤 가장 기본적 조건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나는 이것이 일방적인 어떤 특정 성별 혹은 역할에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집단 지성의 발휘에 실패한 지금의 시대를 만든 모든 시민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본다. 결국엔 이로 인해 현대 사회에서 아빠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주어진 역할은 돈을 잘 버는 것이다. 아빠의 연봉, 아파트 이름, 임차인인가 임대인인가가 곧 그 가정의 수준을 나타내는 알고리즘이 되어버렸다. 가정 내에서 아빠가 해야 할 정말 중요한 역할들 예컨대 인성을 교육하고, 문화를 일깨워주고, 건강한 신체를 가꾸는 법을 배운다던가, 성인이 되어 사회에 연착륙할 수 있는 노하우를 전수하는 일 따위보다 충분한 돈을 벌어와야 하는 기계가 되어버린 슬픈 현실. 과연 우리가 부동산 그중에서도 특히나 아파트라고 하는 현상이 없었다고 해도 아빠의 역할이 돈 벌어오는 기계에 그쳤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