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과 실패를 규정짓는 한 단어 : 노력
최근 연세대 심리학과 김영훈 교수의 '노력의 배신'이라는 책이 큰 화제다. 이 책은 기존에 우리에게 알려진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믿음을 철저히 파괴한다. 노력이 일말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정도의 희망 섞인 말조차 완전히 짓밟아 촌철살인 해버리는 책이다. 그의 저서에서 표현하는 바가 다소 과격하게 느껴질 수 있긴 해도 틀린 말은 하나 없다. 다만, 우리는 절대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인간은 모두가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는 본능을 갖고 있다. 인간은 나약한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방어적인 본능이 없으면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그것인 물리적인 부분에서도 마찬가지고 정신적인 부분에서도 마찬가지다. 물리적인 부분에서 방어적인 입장을 취할 수 있도록 고안된 것이 바로 사회 공동체인데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하고 최근에 발명된 것이 국가이고, 정신적인 부분에서는 종교와 같은 것들이 생겨났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고통, 상처 등으로부터 나를 지켜줄 어떤 존재들은 특정한 가치 규범을 갖고 있게 마련인데 우리나라에서의 대표적인 가치 규범은 바로 노력이다. 저자는 이 사회를 '노력신봉공화국'이라고 표현한다. 이상하리만큼 노력을 강조하는 노력 신봉자들은 대한민국에 많이 분포한다. 우리나라는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노력을 신봉하고 있을까?
나는 역사 속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사실 노력을 신봉하게끔 만드는 사회 현상은 집단 최면에 빠져있는 대한민국 국민의 특성이다. 대한민국은 약 600여 년의 조선 왕조가 무너지면서 대한제국이었다가 일제 식민지를 겪고 2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신흥 국가로 태어났다. 국민 구성원의 대다수가 노예였던 조선 왕조가 무너지는 것도, 나름대로의 평등사상을 도입하려고 했던 대한제국도, 일제에 의해 강압적 통치를 지닌 일제 강점기도, 논란이 있지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형성도 모두 다 100% 우리 스스로 이루어낸 것이 없다. 모든 과정에 외세의 개입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하루아침에 개인의 신분이 노예였다가, 일반 시민이었다가, 황국 신민이었다가 국민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국민 모두가 공감할만한 어떤 가치관에 대한 형성이 이루어질 수 있는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전후 국가 재건을 위해 모두가 정말 피나는 노력을 해야 했고 당시 정치인들은 기름 한 방울 안 나오는 대한민국에서 오직 믿을 것은 인적 자원뿐이라는 구호를 통해 노력을 중시하는 사회를 만들었다. 되던 안되던 재능이 있던 없던, 환경이 뒷받침되던 안되던 모두가 노력을 강요받는 시대를 보냈다. 개개인의 재능과 무관하게 모두가 노력만을 강요받았다. 파독 광부 중에 공부에 재능이 있던 사람, 스포츠나 문화에 재능이 있던 사람이 과연 없었을까? 베트남전에 투입된 군인들 중에 만약 전쟁에 참전하지 않고 살아남았다면 더 대단한 다른 일을 할 수 있던 사람이 없었을까? 어떻게 이병철, 정주영 같은 재벌 총수들은 일제 강점기, 6. 25 전쟁에서 살아남아 기업을 일으켜 그렇게 대단한 부자가 되었는가. 그들이 그저 살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전쟁터에서 참호 속에서 3년을 보낸 전투병보다 더 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봐야 하는 것인가? 여러 면에서 그 당시 소수의 지배계층을 제외한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의 적성과 재능 등이 무시된 채 노력을 강요받았다. 그렇게 일으킨 사회다. 그 과정에서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것이 바로 노력이라고 하는 집단적 최면에 빠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사회의 지배계층이 초창기 형성된 배경에는 분명히 그들의 노력보다는 운에 달려있었겠지만 그들의 운을 정당화할 어떤 명분이 필요했고 그것은 곧 노력이라는 가치관으로 규범 되었다.
최근에는 여러 노력 중에서도 공부 노력이 중요하게 인정받고 있다. 사실 이것은 전 세계가 비슷한 현상이지만 유독 대한민국에서 잘못 해석된 부분이 있다. 과거의 정치인들(지배계층)은 싸움터에서 훌륭한 업적을 세운 장수들이었다. 전 세계가 영토 정복 전쟁에 빠져있던 중세 시대를 생각해 보면 허약하고 공부만 잘하는 장수들이 세계를 호령했을 것이라는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의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지배계층은 그 당시 엄청난 힘을 가진 장수의 이미지가 아니라 매우 똑똑하고 지혜롭고 세련된 범생이 이미지다. 즉, 사회를 지배하는 지배계층이 가진 재능이 바로 공부 머리인 것이다. 사회의 지배층이 된 상당수의 직업들이 모두 공부를 잘해야지 얻을 수 있는 직업들이 된 이상 지금 시대는 공부 머리가 중요해졌다. 그러다 보니 그 공부 머리라는 것 어찌 보면 특혜 받은 재능을 이용해 세상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논리와는 다른 지배 논리를 만들어야 했다. 과거의 건국 신화를 보면 알에서 태어난다던지, 하늘에서 내려왔다던지 하는 이야기를 통해 나는 보통의 인간과 다르다는 것을 나타내었는데 지금 시대에서 그런 것이 먹힐 리 만무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보통 사람들보다 더 똑똑하고, 좋은 환경에서 자랐으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으니 지배한다라고 하는 것 역시 앞의 신화와 다를 바 없는 것이기에 안 먹힌다. 하지만 노력이라고 하는 것은 왠지 공평해 보인다. 그래서 요즘 정치인들의 스토리는 아무리 어려운 환경도 노력으로 극복해서 이 자리에 왔다는 얘기가 주를 이룬다. 이를 통해서 모두가 납득할만한 지배 논리를 만들어 낸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결국 그 조차 개인의 노력에 의한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하늘에서 별이 떨어지는 것처럼 운이 좋게 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