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고 사랑받는 아빠
* 사진: Unsplash의Drew Coffman
아빠가 된다는 것은 결국 누군가와 사랑하고, 결혼하고, 출산의 과정을 거쳤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위대한 인간의 감정 여정을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아빠가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아빠는 위대한 존재이고, 남자 인생에서 어찌 보면 가장 높은 수준의 업적을 이룬 것이 아빠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금의 결혼 문화는 인류의 역사를 생각해 보면 생각보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20세기 경에 비로소 생겨난 것이다. 그 전의 결혼은 가문과 가문의 계약과 같은 형태였다. 귀족들은 결혼을 통해서 가문들 간의 계약을 했고 권력과 재산이라는 특권을 유지했다. 물론 귀족이 아닌 사람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노동력을 교환하는 수준이라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연애결혼이라는 문화가 생겼다. 처음에는 하층민 문화로 생겨났고 당시엔 문화적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귀족들도 그런 문화에 흥미를 느끼고 따라 하기 시작했다. 넷플릭스에서 방영한 '브리저튼'이라는 드라마가 이것을 다루고 있다. 미국 역시 귀족 사회는 아니었지만 유럽의 초창기 귀족들 사이의 결혼 문화(그들 나름대로는 이것이 매우 품격 있다고 생각함.)를 따라 하다가 결국 연애결혼 문화를 받아들였다. 다만 연애결혼도 초창기에는 가문과의 계약 형태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보통 연애를 '집'에서 했다. 집으로 찾아가는 것이다. 집에서 교제하고 상대방의 가족들과 함께 어울렸다. 그러다가 자동차 산업이 발달하고 파티 문화와 같은 사교 문화, 자동차 극장과 같은 것이 생기면서 조금 더 사적인 영역으로 발달했고 우리가 하는 지금의 결혼 문화(가족의 참견 없이 연애와 결혼으로 이어짐.)가 생긴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아직도 19세기 유럽의 가문과의 계약 결혼이 유효하다. 결혼을 하지 못하는 상당한 이유가 돈이 없어서, 집이 없어서, 상대방의 가족들이 부담스러워서 등이 있다. 즉, 나 자신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연애를 하고 결혼하는 것이 아닌 나를 둘러싼 환경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다. 전혀 힙하지 못한 과거의 계약 형태인 결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원수 가문 사이에서 서로의 사랑만 바라보다 둘 다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로미오와 줄리엣과 같은 낭만적인 사랑이 대한민국 사회엔 없다. 모든 것이 계약일뿐이다. 어찌 보면 이것은 전체주의적 동양문화(제러드 다이아몬드는 이것을 쌀 문화권의 형태라고 말함.)에서 가족 중심의 사회가 지배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결혼을 덜 하고, 출산을 덜 해서 합계출산율 0.78이라는 전 세계에 유례 없는 최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이런 연애, 사랑 문화에서 가장 진보적인 프랑스의 경우엔 합계 출산율이 무려 1.83에 달한다. 근데 상당수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상 가족' 사이에서 나온 자녀들이 아니다. 성소수자 가족, 미혼모 자녀 등이다. 물론 이런 환경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사회가 뒷받침해줘야 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왜 아이를 낳았냐는데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대한민국에는 그런 힙한 사랑이 없다는데 참으로 안타까움을 느낀다.
더불어 용기가 없고 뒤에 숨기 좋아하는 탓에 모든 것을 정부, 환경 탓으로 돌리는 일이 허다하다. 조지 오웰의 '1984'에서는 '빅 브라더'가 지배해도 사랑할 사람은 사랑 잘만 하던데 우리나라에서는 윈스턴과 줄리아 같은 용기를 지닌 사람들을 정부를 비난하는 사람들마저도 싫어하는 황당한 일이 발생한다. 결혼해서 잘살고 아이 잘 낳고 사는 사람들에게까지 때로는 비난의 화살을 돌린다. 어찌 보면 28살, 27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결혼해서 아이 둘을 낳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2023년 기준 12년째 이어가고 있는 우리 부부는 출생률을 저하시키게 만들려고 애를 쓰는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둘이나 낳은 21세기 윈스턴, 줄리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난다. 저항은 나를 좀 먹으면서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더욱 사랑하고 더욱 빛나는 존재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사랑하고 사랑받는 아빠가 되는 것이 곧 행복한 아빠가 되는 것이라고 하겠다. 가문의 계약과 사적인 연애결혼 그 과도기에 걸쳐있는 시대에 결혼한 아빠들 중 일부는 가문의 계약에 강요받아 행복하지 못한 결혼생활을 하고 불행한 아빠로 살아갈지도 모르겠다. 그런 아빠들을 보면 안쓰럽다. 결국 자신의 선택에 있어 용기 내지 못한 잘못이 있다면 있다고 하겠다. 결혼 후에도 여전히 사랑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본질로 여기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계약 관계를 만들어내는 행위를 한다면 불행할 수밖에 없다. 물론 여러 가지 심리학적, 생물학적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랑이라는 감정은 3년밖에 지속될 수 없다고 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흥분하게 만드는 도파민과 차분하게 만드는 세로토닌이 동시에 분비될 수 있도록 페닐에틸아민이 분비되어 도파민, 세로토닌이 모두 최상의 상태로 분비되어 황홀경에 빠지게 만든다고 한다.(리하르트 프레히트) 사랑을 감정이 아닌 다른 상태로 보는 의견도 존재하지만 적어도 연애결혼 때 우리가 느끼는 황홀경의 이유는 이것으로 설명 가능할 것이다. 다만, 결혼 이후에는 생존하기 위해서 경제권, 육아 방법, 집안일과 관련한 분담 등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이 부부간의 사랑과 신뢰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기업과 기업의 계약과 같은 조건이라면 그것이 사랑일까? 그건 마치 인수 합병되는 관계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 행복한 아빠 불행한 아빠를 연재 중인 제주 아빠는 오늘(23. 9. 3) 부로 결혼 12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결혼 12주년은 마혼식이라고 합니다. 마는 삼 마(麻)를 쓰는데 아마도 베 옷처럼 튼튼하고 시원시원한 사랑을 하라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나이 마흔도 안되어 12주년의 결혼을 맞이하며 나름 사회적 어른 역할을 하고 있는 제가 독자분들께 어찌 보면 따끔한 일침과 같은 말을 하는 것이 가소롭게 보일지도 몰라도 한 번쯤 우리 스스로 나 자신과 인간의 존재, 사랑에 대해서 고민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연재를 시작하였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