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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변을 친절로 채우는 법

먼저 친절하면 됩니다.

by 제주 아빠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제주의 어느 작은 마을은 교통편이 부족하다. 타운 하우스 위주로 형성된 마을은 길 가에 드문 드문 떨어져 있다. 인구 감소로 5개 마을에 있던 초등학교가 폐교되고 하나의 학교로 통합되었다. 덕분에 어떤 마을은 학교가 너무 멀어 도저히 걸어 다닐만한 상황은 아니게 되었다. 다행히 스쿨버스가 있지만 그마저도 하교 때 2회 운행될 뿐이다. 학교에서 늦은 시간까지 놀다가 깜빡하고 버스를 놓치면 집에 가기가 어려워진다. 도로에는 볼라드 하나 없어서 인도라고 할 것도 없고 아이들이 다니기엔 더 위험하다. 가로등도 제대로 있지 않아 해가 져버리면 아이들은 도저히 다닐 수 없는 곳이 된다.


우리 엄마는 이런 마을에서 학교 안전 지킴이로 일하신다. 시니어가 은퇴하고 할 수 있는 좋은 일자리를 찾으셨다. 비록 자원봉사 개념이어서 소정의 수고비를 받긴 하지만 최저 시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나이 드신 엄마가 여생을 보내며 보람차게 할 수 있는 일이라 만족하며 하신다. 특유의 책임감 덕분에 학생 이름을 거의 다 외우시고 매일 아침 아이들 이름을 불러주고 버스 탑승 시에도 안전을 꼼꼼하게 확인하셔서 주변에서 평판이 좋다. 아이들도 정말 좋아한다. 이런 연유로 종종 교장 선생님인 줄 알았다는 얘기도 듣는다. 비록 자원 봉사자임에도 무한한 책임감으로 일하시는 엄마가 대단하다고 늘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길에 한 아이가 터벅터벅 시골길을 걷는 것을 보셨다고 한다. 엄마는 대번에 어디 사는 누군지 아셨다. 그런데 집까지 아이의 걸음으로 가려면 몇 시간이 걸릴지 모를 먼 곳이었는데 아이가 혼자 걷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여 길가에 차를 대고 물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는 학원 버스를 놓치는 바람에 집에 걸어가고 있다고 했고, 엄마는 퇴근길에 아이를 태워 집까지 데려다주셨다. 아이 엄마는 직장에서 아이가 연락도 안 되고 학원 버스는 타지도 않고 애가 타셨나 보다. 다행히 집에 도착한 후 먼저 도착한 형에게 연락을 받고 한시름 놓으셨다고 한다. 그리고는 감사하다고 이 은혜는 잊지 않겠노라고 따뜻한 감사 인사도 여러 차례 건넸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있던 따스한 이야기다.


친절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친절이라는 단어는 한자어 친할 친(親)과 끊을 절(切)로 이루어진 단어다. 혹자는 중국의 4성으로 절의 의미가 가깝다는 뜻이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혹자는 일본 막부시대 할복 자살하는 동료를 돕기 위해 친한 장수가 옆에서 대신 목숨을 끊어줬다는데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어찌 되었건 친절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도 참으로 익숙하고 많이 쓰인다. 비록 어감이 썩 따스해 보이지는 않는 단어지만 이 단어를 들으면 따스하게 느껴진다. 발음보다는 그 안에 들어있는 의미에서 오는 느낌이 더 강렬해서가 아닐까 싶다. 나는 살면서 친절함을 참 많이 경험하고 살았다. 그런 작은 친절들이 모여 위험했던 어린 시절을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잘 보냈고, 어른이 되어 행복한 가정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나는 친절 속에 살고 있다. 소셜 미디어 속 세상은 험하고 악하기 그지없지만 나는 그런 세상과는 동떨어진 친절하고 향기가 풍기는 천국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먼저 친절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모수자천 같은 말일 수도 있지만 정말 그렇다. 친절로 주변을 채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먼저 친절한 것이다. 내가 친절하지 않으면 아무리 친절 속에 있더라도 어느 순간 친절이 당연한 권리인 호의로 인식되어 외면당할 것이다.


이 세상은 친절로 세워졌다. 문자가 없던 시절부터 어떻게 인간이 변변찮은 신체조건으로 이 험한 지구에서 수많은 포식자, 경쟁자 등으로부터 살아남아 문명을 이루었을까. 그것은 친절이었다. 함께 사냥하고, 함께 보호하고, 함께 나누는 공동체가 있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 친절은 생각보다 대단한 것이다. 우리의 삶을 지속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러니 친절하자. 어린아이에게, 어려운 이웃에게 친절하자. 가족에게 친절하고 낯선 이에게도 친절하자. 그렇게 친절로 주변을 채워나가자. 최근 사회가 강퍅해졌다고 느낀다면 더욱 친절하자. 친절의 힘은 문명을 존속시킬 만큼 강한 것이다. 우리 사회가 친절을 잃으면 무너진다. 우리가 베풀 수 있는 친절은 다양하다. 차를 태워준 엄마처럼도 할 수 있고, 잘 모르는 것을 천천히 친절히 가르쳐줄 수도 있다. 부족한 것이 있다면 비난하기 전 먼저 친절하자. 그렇게 차곡차곡 내 주변을 친절로 쌓아나가자. 우리 공동체를 지켜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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