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 IU 이지은 씨에 대한 고찰
우리 집에서 9살짜리 딸아이와 대화를 할 때도 종종 언급되는 유일한 연예인이 있다면 이지은 씨, 아이유다. 노래를 할 때는 아이유로 연기를 할 때는 이지은 씨로 호칭되는 그녀를 이 글에서는 이지은 씨라고 언급하겠다. (연기자로서의 이지은 씨를 더 비중 있게 생각해서라기보다는 인간 이지은 씨에 대한 글이기 때문이다.) 이지은 씨는 1993년 생이다. 나보다 9살이 어리다. 우리나라 같은 유교적 관념이 짙은 나라에서 나이 어린 사람에게 존경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흔치 않다. 게다가 하필 이지은 씨가 여성인 관계로 사랑하는 아내가 있는 나로서는 이분에 대해서 언급할 때 종종 아내와 마찰이 있던 적이 있으나 이젠 아내도 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아내, 존경하는 사람은 이지은 씨로 구분된다는 것을.
내가 이지은 씨를 존경하게 된 것은 그녀의 삶에 관한 스토리가 지극히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성과 같기 때문이다. 이지은 씨는 그 이름 자체로 우리나라의 브랜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정도라고 생각한다. 빌보드 차트에 이름을 올린 방탄소년단이나, 가요계의 전설로 불리는 나훈아 씨 같은 정도의 반열에 오르지 않았다고 폄훼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난 인정하지 않는다. 이지은 씨는 이미 그것을 뛰어넘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이 시대의 아이콘, 브랜드이자 존재 자체로 이미 문화이다.
이지은 씨를 존경하는 것은 크게 세 가지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첫 번째는 노력하는 모습, 두 번째는 요행을 바라지 않는 모습, 세 번째는 예술가로서 창조하는 모습이다. 이 세 가지는 요즘 연예인들 사이에서 사실 흔히 볼 수 없는 모습이거니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동시대의 청년들에게도 흔하게 찾을 수 없는 모습이기도 하다. 연예인이라고 하는 겉모습을 빼고 이지은 씨를 바라본다면 이것이 무슨 얘기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지은 씨는 코리안드림을 새로 정의할 바로 그 아름다운 청년일 거란 희망이 있다. (아메리칸드림과 다르게 코리안드림은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인다. 대박과 같은 요행을 바라는 것이 코리안드림이라는 평이다. 박찬호 선수를 말하는 것이 아님.)
하나. 노력하는 이지은 씨
이지은 씨의 데뷔는 2008년에 이뤄졌다. 만 15세이던 그녀는 이미 스무 번이 넘는 오디션을 봤고 모두 다 떨어졌다.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음색을 가진 대단한 가창력의 소녀였지만 2008년도 우리나라 가요계를 생각하면 당시 이지은 씨는 소위 예쁜 얼굴의 걸그룹상은 아니었다. 이후 합격한 작은 소속사에서 10개월의 연습생 기간을 거쳐 '미아'라는 곡으로 데뷔했다. 하지만 결과는 완전한 실패. 만 15세의 소녀가 이해하기 어려운 깊은 감성의 곡과 곡조는 아무리 가창력이 뛰어나도 예술로 이것을 만드는 것은 삶의 정수가 더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의 문학 작품이 위대할 수 있는 이유라고나 할까. 미아라는 곡은 사실 꽤나 괜찮은 곡이다. 나도 플레이리스트에 넣어놓고 자주 듣는 곡 중 하나다. 이지은 씨를 존경해서가 아니라 노래가 정말 괜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 노래로 완전한 실패를 경험한다. 심지어 어떤 기사에 미아의 아이유(IU)라는 노래로 소개된 적이 있을 정도다. (https://news.nate.com/view/20080918n18998) 당시 경쟁상대는 소녀시대, 원더걸스, 빅뱅 등. 다만, 그녀의 가창력만큼은 인정받아 우수 신인음반상을 받기도 한다. 어쩌면 첫 도전이 실패로만 점철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망했다고 하는 것은 사실 이지은 씨 본인이 당시 첫 무대에서 느꼈던 좌절감 등을 후에 유머로 승화하면서 망했다고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지금의 성공에 비해 상대적으로 망했다고 평가하는 게 더 적절할 듯하다.
콘셉트를 완전히 바꿔서 나온 것은 'Boo'라는 노래다. 2009년도에 완전히 새롭게 바뀐 분위기와 스타일로 꽤나 선방을 한다. 무명 가수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그녀의 변신은 '있잖아', '마쉬멜로우' 등으로 이어지며 조금씩 명성을 쌓아갔다. 그녀는 가요계에서만 활동하지 않았다. 라디오 MC 등과 같은 방송활동도 닥치는 대로 했다. 정말 열심히 일했다. 그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2010년도 말에 발매된 '좋은 날'이 대박 터져서 지금의 이지은 씨가 있다고만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연예계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밟아오며 노력했던 모습을 보면 '좋은 날'의 성공은 그녀의 노력이 비로소 빛을 발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좋은 날' 이전에도 '첫사랑이죠', '다섯째 손가락', '여자라서', '사랑을 믿어요', '그대네요', '잔소리'와 같은 곡들이 연달아 히트를 치기도 했다. 오랜 노력의 결과로 '좋은 날' 이 정상의 반열에 올라 단독 앨범 1위 달성과 '국민 여동생' 타이틀을 획득하게 된다.
이후에도 이지은 씨는 가수계에서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진정한 아티스트로 성장을 위해 노력한다. 2011년에는 드림하이에 출연하여 연기활동을 시작하였다. 이후 그녀의 연기 필모그래피는 엄청난 성공을 일으켰으며, 그녀의 연기를 보면 응당 노력에 의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게 하였다. 가수는 일종의 모노드라마를 뮤지컬화 한 장르의 아티스트라고 생각한다. 어떤 음악(스토리)을 노래로 풀어내는 모노드라마와 같은 것인데 이지은 씨는 오랜 시간 가수로 활동하면서 그러한 역량을 충분히 키웠기 때문에 연기활동을 시작한 이후에도 완숙한 연기를 보일 수 있었으리라. 그녀의 연기 노력 또한 대단하여 2013년 '최고다 이순신'은 시청률이 30%를 넘고 KBS 연기대상에서 신인상과 베스트 커플상을 받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연기 경력은 이어져 높은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그녀는 연예계로 입문하기 전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사랑받기만 해도 모자를 나이에 가정 형편상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야 했던 적이 있으며, 그녀를 시샘한 일부 친척들은 그녀의 연예인이 되고자 하는 꿈을 응원해줘도 모자랄 판에 힐난했다. 그녀 주변엔 주로 그녀를 깎아내리려는 존재들이 존재했다. 그녀의 성공은 진부한 권선징악형 스토리라고 할지라도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고전으로 읽히는 옛이야기들이 괜히 고전이겠는가. 그것은 모두 인간사에서 뻔하지만 너무나 공감할 이야기이기 때문이고 그 이야기를 너무 멋들어지게 잘 풀어낸 것인데 마치 이지은 씨의 삶이 그렇다. 통쾌하다.
2012년 은혁과의 스캔들은 그녀를 한 걸음 멈추며 심호흡을 가다듬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너무나 열심히 달려온 그녀가 앞만 보고 달리다 한 번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사건이라고 생각된다. 사실이 어떻든 별로 관심 없다. 그저 인간 이지은 씨에게 너무 중요한 경험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우리나라는 유독 유명인들에게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곤 한다. 2012년에 20살이었을 그녀의 나이를 생각하면 애초에 무얼 잘못했는지 조차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는 이 경험을 통해 예능 활동을 줄이고 가수와 연기자로서의 활동에 집중하게 된다. 오히려 진정한 아티스트로서의 성장을 할 수 있게 하는 기회가 됐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실수라고 말하는 것은 그녀가 후에 이것을 실수라고 표현했기 때문에) 요즘 세상은 실수한 인간을 비난하는 것으로 행복을 삼는 시대다. 그러면에서 여자 가수, 그것도 국민 여동생이라는 이미지를 가진 가수에게는 치명타일 수 있는 이 경험에도 그녀는 진솔한 노력으로 극복해낸다.
둘. 요행을 바라지 않는 모습.
그녀는 진정한 이 시대의 코리안드림에 대한 정의를 다시 쓸 아름다운 청년으로서의 면모가 보인다. 조선이 끝나가던 무렵 우리나라는 너무나도 빨리 변하는 국제사회에 적응하지 못했다. 대한제국을 건국하며 근대국가로의 도약을 시도하였으나 일제의 무자비한 폭거 앞에 너무 쉽게 무너졌다. 이후에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는 사실상의 제3차 세계대전과도 같았던 한국전쟁을 겪었다. 부모세대는 자식들에게 이러한 고통을 물려줄 수 없다는 생각에 정말 너무나도 희생하며 우리나라를 지금의 모습으로 일으켜 세워주셨다. 문제는 그렇게 애지중지 자식들에게 물려준 이 나라가 어느 순간 그러한 잘못된 부모 사랑으로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코리안드림. 대박을 뜻하는 이 말의 뉘앙스에는 어떤 요행에 의해 성공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말이 됐다. 부모를 잘 만나서, 부동산 투기가 대박 나서, 주식이 크게 터져서 등등. 심지어 외국인 노동자들도 코리안드림을 꿈꾸고 온다. 두어 달만 일해도 일 년 치 자국 연봉에 해당하는 수준을 벌 수 있으니 불법 노동자 취급을 받으며 고통을 받더라도 대박이라는 생각에 몰려드는 것이다.
연예계도 그와 같았다. 잘생기고 예쁘면 말 그대로 대박. 그렇게 해서 부모의 유산으로 외모를 가진 사람들이 요행으로 연예계의 샛별이 되었다가 뜨고 지는 경우를 수도 없이 봤다. 그래서 연예계에 별로 흥미를 두지도 않을뿐더러 TV도 잘 안 본다. 대학교 때 전공이 영상학이었음에도 영화가 예술적 가치로서 인정받기 위해선 여전히 쉽지 않다고 생각하는 수준이다. 그나마 연기자로서 예술가로 인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병헌 씨 정도. (그는 30초짜리 광고를 찍을 때도 2시간짜리 영화 찍는 만큼의 노력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2008년에 등장한 이지은 씨 역시 그런 반열에 올라선 예술가라고 생각된다. 그녀의 노력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이렇게 어린 사람이 이렇게 솔직하게 노력한다고. 이제 곧 3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지만 그녀의 노력은 12년 전부터 시작됐고 한결같이 이렇게 요행을 바라지 않는 노력을 한다는 게 쉽지 않겠지만 그렇게 살아왔다.
사회적 명성을 얻은 연예인이라면 무릇 부와 명예를 모두 얻고 싶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사람이 욕심도 생긴다. 심지어 그런 인간의 명예에 관한 욕망을 보여주는 '명예박사 학위'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는가. 연예인 역시 특례 입학 등으로 자신들의 콤플렉스를 채우려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김태희 씨처럼 처음부터 공부를 잘해 서울대간 후 데뷔하여 유명해진 연예인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자신은 연예활동을 하느라 공부를 못한 거지 난 원래 공부 못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는지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대학은 그런 연예인의 이름을 팔아 대학 홍보에 열을 올리는 등의 행위가 연예계엔 일상이었다. 사실 연예인이 되기 위해한 노력과 그렇게 노력해서 연예인이 되어 성공하는 모습을 보면 그들이 만약 그 노력을 공부에 쏟았다면 당연히 최고의 학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진중한 노력과 요행을 바라지 않는 태도로 연예계의 최고가 된 케이스를 많이 보진 못했다. (애초에 연예인이라는 직업군 자체가 대박을 노린 불나방들이 노리기 가장 쉬운 직업군이기도 하다.)
그런 연예계에 경종을 울리는 이슈는 이지은 씨의 수능 미응시 선언. 이지은 씨는 솔직하게 나는 연예계 활동을 하느라 공부를 못했고 수능을 봐도 아는 문제 하나 없으리라 생각되어 수능을 포기한다고 밝혔다. 특례 입학으로 대학을 갈 수 있었음에도 딱히 공부하고 싶은 것이 없다는, 문제를 봐도 아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솔직한 마음으로 대학 진학도 포기한다. (만약 보통의 엄마가 이런 말을 들으면 등짝 스매싱 각. 이지은 씨 어머니도 대단하심.) 대신에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음악, 연기 등의 예술활동)를 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녀는 요행을 바라지 않는 아름다운 청년이다. 그녀가 걷는 길은 결코 꽃길만 있지 않다. 그녀라고 여자 가수, 여자 배우인데 예쁘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 없기야 하겠냐마는 그러한 이미지조차도 요행보다는 꾸준히 다듬어내어 진정 그런 아름다운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유튜브에 나오는 '아이유의 집콕 시그널' 등의 영상을 보면 코로나 시대 공연을 거의 하지 못하고 있지만 끊임없이 이런 활동을 통해서라도 팬들과 소통을 하려는 그녀의 노력은 그녀 인생에 요행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녀 인생은 행운의 여신이 미소 가득 머금고 껴안고 있는 모양새다. 되레 요행을 바라지 않는 그녀에게 운이 가득하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고, 하늘은 노력하는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은 이지은 씨를 두고 하는 말이리라. 그녀의 이러한 모습은 독서의 힘이라고 생각된다. 그녀가 밝힌 바에 따르면 부모님들께서 어린 이지은 양이 잘못을 했을 때 선택한 훈육 방식은 '책을 읽어오게 하기'였다고 한다. 그래서 꾸준히 독서를 했고, 촬영이 없을 때도 성실하게 학교를 출석했으며, 학교에서도 책을 계속 읽었다고 한다. 최근 수능 만점자는 자신의 만점 비법을 독서라고 했다. 역시 독서는 모든 통찰의 유일한 답인 것 같다.
셋. 예술가 이지은 씨.
가장 존경하는 부분은 예술가로서의 이지은 씨의 모습이다. 그녀는 대한민국 연예계의 기본 생리를 바꿔놓고 있다. 그 변화는 아직 미미하지만 분명 그 끝이 창대하리라 믿고 응원한다. 예술가란 어떤 존재일까. 앞선 브런치 글에서 모든 인간은 예술가여야 한다고 언급하였듯이 예술가란 진정한 인간다운 존재라고 생각한다. 가장 인간다운 존재는 창조적 존재다. 그녀의 창조성은 대단히 놀라운 수준이다. 몇 가지 일화를 소개해보겠다.
그녀도 처음 시작은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었겠다. 하지만 조금 순수했다. 관심받는 게 좋았다고 한다. 사랑받는 걸 느끼고 싶다고 한다. 중학교 체육대회 때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무대체질이라고 느꼈고 그때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환호할 때 너무 짜릿했다고 한다. 15살 중학생 소녀다운 감상이다. 그렇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 내용은 앞서 얘기했다. 예술은 이렇게 순수성을 갖고 시작한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도 아니었고, 자신의 명성을 드높이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이후에 그녀가 성장하며 자신의 진로를 굳힌 이후에 그녀는 본격적인 예술가의 길로 뚜벅뚜벅 걷기 시작한다.
그녀가 본격적인 예술가의 길을 걸을 수 있게 한 사건은 앞서 말한 은혁과의 사진 유출 사건이다. 2012년 그 사건을 계기로 많은 예능 방송을 줄이고 노래와 연기에 집중한다. 예능은 소비에 가까운 상품이라면 노래와 연기는 소비가 병행되어야 하지만 예술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지은 씨를 존경하는 사람으로서 예능에 출연한 이지은 씨의 모습은 본적이 별로 없다. 그녀의 성공담은 후에 그녀가 유튜브에서 밝힌 내용이거나 혹은 여러 인터넷 사이트에서 알게 된 내용들이다. (미리 밝히지만 이지은 씨의 팬이라기보단 존경하는 위인 정도로 생각하다 보니 그녀의 CD 한 장 산적이 없다. 그녀에겐 별로 도움이 되는 사람은 아니다. 멜론을 구독하면서 꾸준히 플레이 리스트에 그녀의 음악을 넣어놓는 정도.) 다만, 그녀가 출연한 드라마를 한편 정주행 했다. '나의 아저씨' 그리고 이 드라마는 내 인생 드라마의 반열에 오른다. (제주 아빠 인생 드라마 목록 : '미안하다 사랑한다.', '도깨비', '미스터 선샤인', '나의 아저씨')
연기자로서 예술적 활동은 2019년 넷플릭스에서 개봉한 '페르소나'라는 실험적 영화로 이어진다. 다소 파격적이고 난해하여 쉽게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대학교 시절 6mm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그런 류의 영화를 찍거나, 내가 주인공이 되어 난해한 연기를 했던 기억이 떠올라 흥미롭게 봤다. 국민 여동생의 이미지는 사실 이미 벗어던진 지 오래기 때문에 그녀의 야한 연기가 거부감이 있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분명히 예술적으로는 실험적이고 다분히 본인의 한계를 뛰어넘고 싶어 하는 몸부림이 느껴졌다. 여자 가수(그것도 아직 한창 주가를 올리며 활동 중이고, 남자 팬들을 상당히 보유한)이면서 배우인 그녀가 이런 종류의 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분명 큰 용기가 필요했겠다고 느꼈다. 마치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알을 깨는 새처럼. 그리고 분명 이 또한 아프락사스로 날아갈 것이다.
그녀의 최대 히트곡 중 하나인 '밤편지' 또한 마찬가지다. 이 곡은 당시 보통 정오에 발표하던 음원 발표 관행을 깨버렸다. 정오에서 오후 6시 사이에 발표된 음원만 당일 차트에 진입시켜주는데 6시는 순위권에 들기에 너무 늦은 막차 시간과도 같았다. 이지은 씨는 자신이 작사한 이 곡이 제목부터가 '밤편지'인데 정오에 발표하는 것은 곡과 어울리지 않다고 주장한다. 회사 차원에서는 음반 발표 직후 순위권에 들지 못하면 엄청난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상업적 면에서 평가를 하고 반대하지만, 이지은 씨는 이 부분에 있어서 예술적 면에서 자신의 노래가 퇴근길 라디오에서 들리길 바랐다. 그렇기에 엄청난 고집을 부려 끝내 오후 6시에 음원이 공개된다. 결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트 올킬. (이후 다른 가수들도 오후 6시에 음원을 공개하는 분위기로 전환된다.) 게다가 당시 이 곡은 대중적이지 않을 것 같다는 평가로 4집 음반 'Palette' 선공개 곡으로 회사에서도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다만, 아이유는 사실상 회사에서 거의 유일하고 독보적인 존재라 그녀의 말에 결국 따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예술가로서 이지은 씨가 보이는 행보 중 가장 감사하게 느껴지는 것 중 몇 가지는 한글 맞춤법과 발음을 잘 지킨다는 것이다. '밤편지'에 나오는 가사 중 '좋은 꿈이길 바라요'와 같은 경우가 대표적. 우리나라 사람들 상당수가 '바라다' 대신 '바래다'를 쓰는 편이다. 명사형 역시 바람이 아닌 바램과 같이 표현하곤 한다. 마치 아이스크림 설래임과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이지은 씨는 작사가로서 이 부분을 명확하게 했다. 또한 노래를 부를 때 발음에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작사 때도 마찬가지 발음을 고려한다고 했다. 사실 발음은 노래 부를 때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양성 모음인가 음성 모음인가 등에 따라 가수가 노래를 부르기 조금 수월할 수도 있고 어렵게 만들 수도 있으며, 어떤 단어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문장이 변하거나 연음을 사용할 때 가수들이 발음하기 상당히 어렵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시간의 바깥'이란 노래에서 '낮에도 밝지'라는 가사에 '밝지'를 '발찌'가 아닌 '박찌'로, '과거를 밟지'에서 '밟지'를 '발찌'가 아닌 '밥찌'로 명확히 발음한다. 그녀가 가장 아끼는 노래라는 '무릎'에서도(참고로 이 곡은 불면증이 있는 그녀가 잠이 오지 않아 밤새 가사를 써 내려간 그녀 피셜 최애 곡이다.) '무릎을'을 '무르블'이 아닌 '무르플'로 명확히 발음한다.
예술가로서 이지은 씨는 2015년 'CHAT-SHIRE'라는 음반을 내면서 본격적인 작사가, 프로듀서로서 활동한다. 이 음반은 다소 도발적인 분위기 인터라 여러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예술에 대한 평가는 결국 자신의 내면에 보유한 심미안에 의해 발현된다고 본다. 그래서 예술이 위대하다. 예술가가 정해놓은 예술의 틀에만 갇힌다면 그것은 예술가 개인의 창작 영역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대한 예술은 결국 자신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처럼 자신의 심미안을 반영하고 거기에 예술가의 창작이 더해져 이 세상에 오직 단 하나 '내가 보고 있는 예술'로서 존재할 수 있다. 창작이 창작을 창조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스물셋' 뮤직비디오나 'zeze'의 페도필리아(소아성애) 논란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는 환영하는 바다. 이는 당시 우리나라 시대상을 반영했다고 본다. 그만큼 사회적으로 이 부분이 예민했던 시기고 세상을 바라보는 보통 사람들의 시선이 삐딱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예술가로서의 성장도 성장이지만 23살이 된 이지은 씨가 가질 수 있는 고민이 반영됐다고 해서 나쁠 건 없다. 참고로 '스물셋'은 새해에 많이 듣는 노래 중 하나로 자리 잡혔다. 진짜 나이가 '스물셋'이 된 대한민국 청년들이 이 노래를 듣고 위안을 받는다고 한다. 이지은 씨를 존경하게 만든 계기가 된 곡 중 하나다.
이미 길어졌지만 그녀의 정보를 나열한듯한 더 긴 글을 쓰지 않기 위해 여기서 이지은 씨에 대한 내 존경의 이유를 마치고자 한다. 이지은 씨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에 뒤지면 다 나온다. 대표적으로 '나무 위키'에만 가도 엄청나게 자세한 정보들이 나온다. (이 글에 적힌 몇 가지 팩트는 나무 위키를 참고한 부분도 있음을 밝힘.) 그보다는 내가 왜 존경하는지 느낌을 전달하고자 했다. 그녀는 이 시대 청년들이 본받을만한 사람이다. 꿈을 꾸고, 그 꿈을 향해 정진하며, 그렇게 해서 성공을 이뤄냈다. 그 과정에선 부모님의 올바른 교육이 있었으며, 권선징악의 진부한 스토리도 있었지만 결국 그녀의 진솔한 노력이 이 모든 이야기를 떠받치고 있는 탄탄한 구성이라고 본다. 그렇게 이끌어낸 성공과 영향력으로 그녀는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주고 있다. 기부를 많이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최근 간호사 아이스조끼 기부건은 정치적으로도 이슈가 된 바 있다.) 학교폭력 예방 홍보대사로도 활동한 적이 있으며, 국세청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제54회 모범납세자 선정) 그녀의 유튜브 마지막 영상은 실종아동에 대한 정보를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읽어주는 것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영향력을 사회적 최약자들을 위해 제대로 사용할 줄 아는 그 모습이 참으로 감동적이다. 하나 덧붙이자면 그녀가 '아이유팀'이라고 부르는 팀에 대한 정보를 꼭 한 번 확인해보기 바란다. 안정적이지 못한 '예술 시장'에서 마치 정규직처럼 평생직장이 될 수 있는 그녀의 팀은 이 시대 고용 환경에 대해서도 조용한 파란을 일으킨다.
코로나 19로 인해 2020년 그녀는 콘서트를 한 번도 열지 못했다. 게다가 그녀의 인생에 있어서 여러 가지 변화를 맞이하는 순간들이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절친이었던 설리의 사망과 구하라, 종현의 사망 등이 그녀의 성장하는 감수성에 분명 영향을 미쳤으리라. 내년이면 29살이 되고 20대의 마지막을 찍는 해이기 때문에 나이 시리즈에도 어떤 내용이 담길지 기대가 된다. 국민 여동생으로 시작한 그녀가 선한 영향력으로 대한민국의 심금을 울렸던 시간을 지나는 동안 아마도 그녀의 내면에 담긴 성장통은 더욱 침잠했을지 모른다. 지난 12년간 천착했을 이 영역은 너무 위대하여 그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지만 잘 견뎌낸 것이 존경스럽다. 이제 이 모든 것을 그녀의 노래 가사처럼 '엄지손가락으로 장미꽃을 피워'내기 바란다. 더욱 성숙하게 성장해주어 앞으로도 우리 사회에 청년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기 바라는 마음이다.
군생활을 시작한 이유가 그랬다. '선한 영향력' 대한민국 청년 남성의 80% 이상이 현역 판정을 받고 그중 70%는 육군을 거친다. 단순 계산으로도 대한민국 청년 남성의 56%는 육군을 거친다. 나이나 영향력 등을 고려하면 대한민국 청년 남성의 재사회화는 육군에 의해서 이뤄지고 지금의 문화는 육군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할만하다. n번방 사건과 같은 것도 육군 내부에서 종종 이뤄지는 안 좋은 사건과 닮았다. 결국 청년을 변화시키는 것이 대한민국을 변화시키는 것이고, 그들을 위해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런 면에서 이지은 씨는 존경하는 이 시대 청년이면서 동시에 내 마음속 전우다. 그녀가 보여주는 이 선한 영향력을 항상 응원하고 있다. 그 와중에 종종 보이는 인간적 고뇌는 우리가 함께 짊어지고 같이 성장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 그것이 우리 사회가 앞으로 더욱 성숙해야 하는 방향이다. 이지은 씨도 대한민국의 청년 중 한 사람이다. 사회적 영향력이 크다고 해서 청년을 건너뛰고 마치 노년의 완숙함을 가져야 한다는 것 또한 시선의 폭력이다.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청년으로서 우리보다 더 어려운 누군가를 위해 'Love Poem'의 가사에 나온 것처럼 '누구를 위해 누군가 기도하고 있나 봐'라고 그들이 느끼도록 해보자. 든든한 전우 이지은 씨에게 들리지 않을 메아리지만 감사함과 존경을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