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어머니가 오시기로 했기 때문에 한라산 등반 준비를 했습니다. 처음에 하루 등반객 수용을 제한 둔다고 하여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확인했으나 자유 등반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지난번과 다르게 제가 직접 차를 몰고 성판악으로 갔다가 동일한 탐방로로 내려오기로 했습니다. 겨울철 중무장한 덕에 너무 힘들었기에 이번엔 가볍게 가자 벼르고 벼렀습니다.
산대장이신 어머니는 새벽 5시 52분 등반을 시작해서 진달래 대피소까지 1시간 50분 만에 달려가셨습니다. 글 작성의 시작은 진달래 대피소입니다. 장마가 막 끝난 제주도는 요즘 무더위가 한창입니다. 그래서 제주도민들은 아마 다들 바다로 가셨나 봅니다. 모처럼 올라온 한라산에 사람이 없이 호젓한 느낌입니다. 까마귀가 까악 까악 하며 먹이를 달라고 조릅니다. 별로 쉬지도 않고 어서 가자며 발걸음을 재촉하시는 어머니를 허둥지둥 따라갑니다.
제 손가락보다 긴 민달팽이가 신기합니다.
어젠 사실 반가운 분들과 늦게까지 담소를 나눴습니다. 손님 한 분이 오늘 육지로 돌아가셔서 사장님과 저 모두 아쉬운 마음에 밤의 끝자락을 붙잡고 채 놓지 못합니다. 새벽 4시 출발하기로 했지만 집에 들어오니 2시입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따라가려니 오늘도 쉽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더 여유롭게 보고자 구석구석 등반길을 관찰합니다. 오랜 장마 뒤의 등반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한동안 오가지 않은 흔적이 눈에 띕니다. 쓰레기가 없고 발자국이 많지 않습니다. 가다 보니 사슴인지 노루인지 사람을 보고 놀라지도 않고 천연덕스럽게 제 옆으로 자기 갈길 지나갑니다.
구상나무 열매는 이렇듯 참으로 예쁘게 생겼습니다. 솔방울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죠. 제가 좋아하는 초코파이를 잔뜩 쌓아놓은것 같습니다.
정상을 향해서도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십니다. 한 번도 쉬지 않은 덕에 3시간 만에 정상에 도착합니다. 나무 높이가 낮아지고 탁 트인 전경이 나오니 불어오는 바람이 에어컨 바람보다 쾌적하고 시원합니다. 신선놀음이 따로 없습니다. 정상 부근에서는 멀리 한라산 정상 아래로 뻗어가는 자락에 죽어버린 구상나무들이 듬성듬성 보입니다. 나무는 태어난 곳이 자신의 묏자리인데 이렇게 멋진 경치에서 태어났다가 너무 고지대라 제일 먼저 떠나게 됐는데 구상나무에겐 그게 좋은 건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런 구상나무의 짧지만 찬란한 삶이 부럽습니다.
한라산에 새치가 난것처럼 듬성 듬성 하얀 고목이 안타깝습니다. 찬란했을 그들의 삶에 찬사를 보냅니다.
구름이 덮인 한라산은 섬 아래가 보이질 않습니다. 백록담 역시 쉬이 그 자태를 보여주려 하지 않습니다. 구름이 잠깐 걷힐 땐 여기저기 찰칵 소리가 들립니다. 사람이 적다 보니 백록담 비석 앞에서 줄 서지 않아도 사진 찍을 수 있습니다. 조용하게 백록담을 보고 있노라니 내려가 보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장마 후라 물이 차있는 백록담이 신기합니다. 저 물이 죽어가는 구상나무에게 단물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백록담에 물이 차있는걸 실제로 본건 처음인데 참으로 멋집니다. 지금 방금 찍은 따끈한 사진입니다.(정상은 적당히 쌀쌀합니다.)
이제 다시 하산하려고 합니다. 앞선 글에서도 말했듯 인생의 목적은 정상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오르는 과정에 있는 듯합니다. 오늘도 역시 정상에서 머무는 시간은 짧습니다. 하지만 길고 더딘 올라오는 시간 동안 저는 또 한 번 성장합니다. 그렇기에 잠시 정상을 맛보고 내려간다고 해도 아쉽지 않습니다. 내려갈 땐 발목이 힘을 잔뜩 주고 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넘어지기 쉽죠. 인생에서도 언제든 내리막을 만난다면 마음을 단디 잡고 견뎌내는 게 좋죠. 힘들다고 흐물흐물해지면 삶이 다치기 쉽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