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적 역마살 인생이 주는 교훈
* 사진 출처 : Unsplash Jake Nebov 'Boxes'
태어나보니 군인가족이었다. 장교이신 아버지 덕분에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나이에 벌써 이사를 두어 번은 다녔다고 한다. 이후 선명하게 기억이 남아있는 이사는 19번이다. 장교이신 아버지의 아들로 살아가는 동안만 이사했으면 되는데 굳이 나까지 그 길을 따라가서 절반은 내 덕에 아내와 아이들까지 이사를 다니게 되었다. 다행히 나를 제외한 가족은 더 이상의 이사는 없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제주도 정착은 이런 면에서 교훈의 결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1984년 9월 16일 17시 40분 광주 기독병원에서 태어났다. 오늘까지 13,530일(글을 쓰는 10월 2일 기준)을 살았고 21번의 이사를 다녔으니 평균 615일마다 이사를 다녔다. 2년이 채 안 되는 시간이다. 가장 짧게 지낸 곳은 약 한 달이고 가장 오래 산 지역은 서울이지만 서울 안에서도 이사를 4번 다녔다. 오래 머무른 것으로는 홍천이다. 강원도 홍천. 가족들은 이사를 하지 않아 횟수에서 제외하였지만 나 혼자 간 것으로 포함한다면 레바논 파병 왕복 이사 2번이 추가되어 23번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8개월을 열사의 땅 레바논에서 살았다. 두어 개의 박스와 큰 캐리어 하나를 보냈고, 조그마한 컨테이너에서 6명이 함께 거주했다. 돌아올 때는 박스가 1개 더 생겼다.
가장 최근의 이사는 며칠 전 칠곡군에서 고성군으로 하게 된 이사다. 가족들은 제주도에 있어서 나 혼자 이사를 했고 육지에 남아있던 가족들 짐을 배에 실어 제주로 보내고 내 개인 짐을 이사했는데 20개의 박스는 택배로 남은 짐은 해치백 벨로스터에 가득 욱여넣어 옮겼다. 이사의 과정과 부대 일정이 복잡하게 얽혀 칠곡에서 대구로 대구에서 제주로 제주에서 대구로 대구에서 평택으로 평택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제주로 제주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고성군으로 이동하는 것을 불과 이틀 만에 했다. 그중 하루 만에 제주에서 대구로 비행기 타고 와서 차를 끌고 대구에서 평택으로 평택에서 다시 서울로 서울에 차를 주차하고 김포공항에서 제주로 갔던 일정이 기억에 남는다. 이른 새벽에 다녀오겠다고 떠났다가 그날 밤에 다시 돌아온 거다. 제주는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다. 오히려 차를 끌고 대구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고성으로 가는 길이 더 길었다. 양양고속도로를 따라 코로나로 얼굴도 보지 못하고 어린 시절의 추억을 뒤로 한채 지난한 밤길을 달렸다. 나를 위로한 것은 오래간만에 먹어보는 맥도날드 햄버거와 너겟. 나에겐 버벌진트의 양고기 샌드위치급 위로다.
포장이사가 아닌 혼자서 이사를 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인데 유독 삶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2011년 아내와 결혼을 하게 되어 독신 장교 숙소에서 신혼집으로 이사를 할 때 1대의 포터 트럭을 불러서 소박한 짐을 옮겼다. 몇 개 되지 않는 책 박스, 옷가지가 전부였고 가구는 하나도 없었다. 소형 냉장고가 있었지만 후배에게 물려주기 위해 그냥 두고 나왔다. 10년이 지나고 짐은 몇 배로 불어났다. 몸집이 비대해지자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군인이라는 직업을 선택하고 언제든 비상시 뒤도 안 돌아보고 앞으로 뛰어나가겠다고 다짐하며 간소화하고 살았고 비상 배낭을 만들어놓고 군장 품목들을 구비해두었지만 이번 이사를 하면서 과연 내가 이걸 놓고 갈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소돔과 고모라를 탈출하며 뒤를 돌아보지 말라 일렀거만 끝내 뒤를 돌아보고 소금 기둥이 되어버린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 역시 소금 기둥이 되어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과감하게 짐을 줄이고 버리기 시작했지만 줄이고 줄여도 결국 30여 박스가 나왔다. 끝내 그릇들은 아내의 조언으로 과감하게 버렸다. 오래 쓰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금이 생겼고 소위 이빨 빠진 그릇들이라는 것이다. 내 눈엔 너무 아까운 새 그릇들이었는데. 눈 질끈 감고 분리배출 마대자루에 조심스레 담아 버렸다. 미련도 함께.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무질서함은 증가하고 되돌릴 수 없다고 한다. 엔트로피. 인간의 삶은 공수래 하였지만 적어도 숨이 다해 공수거 하기 전까지는 끊임없이 엔트로피가 증가할 뿐이다. 그것을 털어내는 것은 마치 열역학 제2법칙을 깨뜨려야 하는 것처럼 이 물리계 속에서는 불가능할 듯하다. 그렇게 그릇을 버려내도 이사한 4.8평의 좁은 방엔 또 새로운 짐이 생긴다. 출입구와 방이 바로 연결된 원룸 형태가 익숙지 않아 커튼으로 가벽을 설치하고, 본격적인 홈트를 위해 도구를 가져다 놓는다. 침대에 누워 책을 읽고 싶어 스탠드 구매 버튼을 누른다. 양심이 걸려 그나마 제일 가격이 저렴한 것을 고르지만 버리고 온 그릇을 생각하면 역시 열역학 제2법칙은 적어도 이 물리계에서 진리인 것 같다. 지난 3개월여 칠곡의 아파트는 세 가정의 창고였다. 친엄마와 장모님이 각각 본인들의 집에서 뺀 짐들을 제주도로 한 번에 이사하기 위해 칠곡으로 보냈었다. 거의 내 키만 한 거대한 냉장고를 둘 데가 마땅치 않아 현관 바로 앞에 두었고, 매일 출근을 위해 세탁기 옆 좁은 통로를 지났고 퇴근할 땐 세탁기의 거대하고 동그란 초점 없는 눈이 날 마주했다. 그래서일까 불과 4.8평의 이 좁은 숙소라 하더라도 쾌적하게 지내고 싶어 이렇게 저렇게 가구를 배치하며 나름 최적의 동선을 만든다.
아직 살아있는 한 짐을 줄일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책 욕심이 많아 지금 책을 버릴 생각이 없고 더 살 생각은 있다. 이제 어딜 가든 필요한 것은 이 글을 쓰고 있는 노트북 한 대와 작은 LED TV 한 대가 전자제품의 전부일 것이고, 옷가지와 이불 정도.(지금 쓰는 이불은 아이들 위해 사준 하늘색 오리 이불) 나머지는 다 책이겠지. 그래도 다행인 건 책은 두고 전선을 가도 아쉽진 않을 것 같다. 책은 사실 물질이라기보다는 경험이기에 내 뇌세포 어딘가에 동일한 존재들이 복제되어 있을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태블릿 PC가 있지만 이북보다는 까끌한 종이가 익숙하다. 넘기는 느낌도 매끈한 태블릿 PC의 화면보다는 확실히 까끌한 종이가 좋다. 그런 면에서 사실 책은 매우 비싼 취미다. 예스24는 우수 고객이라며 등급을 올리고 각종 할인 쿠폰으로 날 유혹한다. 이런 것 역시 짐이다. 꼭 물질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나와 관계된 무엇인가가 하나 더 늘어난 거다. 이메일에 저장된 편지들을 지우는 게 탄소 배출에 매우 도움이 된다고 하는데 내가 죽기 전 미리 내 매일 계정을 삭제하지 않는다면 죽고 나서도 나는 계속해서 탄소를 배출하는 유해한 존재가 되는 것일까 고민해본다.
줄이고 줄이는 삶을 다짐한다. 꼭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처럼 느껴질 수 있겠지만 꼭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 공수거 하는 삶을 연습해야 하지 않을까. 영혼이 지구에 남아있지 않는 한 굳이 이곳에 나의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다. 굳이 흔적이 필요하다면 가족들과 함께했던 추억 정도면 충분하지 싶다. 이대로 복무한다면 훗날 죽은 뒤 국립묘지에 묻힐 테지만 지금의 마음으론 그냥 제주 바다 어딘가에 뿌려지고 싶다. 아직 한창 젊은데 벌써 욕심이 없어지는 게 열의 없는 나약한 존재라서가 아니라 21번 이사하면서 깨달은 내게 진정 필요한 것들을 이미 다 얻은 까닭이다. 더해 인간관계까지도 심플해진다. 사람을 좋아하고 선한 영향력을 주며 이웃사랑을 실천하며 사는 게 삶의 목적이지만 인간관계 자체를 늘릴 필요는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비우면 비울수록 내 삶은 선명해진다. 아직 풀지 못한 9개의 박스가 복도에 쌓여있다. 모두 책들인데 4.8평에 욱여넣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읽고 싶은 책을 박스에서 힘들게 찾아 읽어야 하지만 나쁘지 않다. 이 좁은 곳에 책꽂이를 사서 두느니 번거로워도 박스에서 찾아 책을 읽어도 여유로울 수 있을 만큼 비우고 왔다. 가볍다 느낀다. 걸리적거리는 게 없는 삶.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 그게 어디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