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장교. 계급은 소령(2021년 현재 기준) 대한민국 사회의 공식 꼰대층으로 등극한 지 어언 3년이다. 소위로 임관하고 지금까지 용사들과 끊임없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때문에 마찰을 겪어왔지만 이 세상 누가 이렇게 사랑받지 못하는 일을 하며 즐거울 수 있겠는가. 최근 간부 두발과 용사 두발의 차이에 대해 권익위에서 차별이라고 규정 지음으로써 규정을 수정하도록 권고한 바가 있기 때문에 더욱이 이런 상황에서 두발에 정리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은... 그것도 브런치 글을 통해 공식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꼰대로 공식적으로 박제되는 것이다. 84년 생인 필자는 Z세대와 밀레니얼 세대의 중간 어딘가 위치한 애매한 주변인이기에 용사들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바도 아니며 규정을 지켜야 하는 조직의 일부로 살아가는바도 이해하지 못하는 바 아니기에 스스로 혼란스러울 수 있는 나이다. 하지만 난 이 부분에 대해 진즉에 결론을 내리고 소신 있게 살아왔다. 그리고 한마디 더 보태자면 개인적으로는 권익위 권고에 따라 간부 표준형을 없애고 용사와 똑같이 간부도 스포츠형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내가 두발 정리를 하라는 이유는 조금 결이 다르다. 많이 다르다. 과거 백병전 시대에는 오히려 보병들이 긴 머리를 하는 경향이 있었다. 상대방에게 무서워 보여야 했으므로 치렁치렁한 긴 머리와 무섭게 칠한 얼굴 위장이 가까이 대면하여 싸우는 백병전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브레이브 하트의 그 장면을 떠올리면 쉽겠다. 현대전을 연구한 바에 따르면 치명적인 무기체계로 인해 머리에 손상이 많이 발생하고 짧은 머리가 상처 부위를 더욱 빨리 발견하여 응급처치에 유리하다고 한다. 그래서 현대 군인들에게는 짧은 머리를 요구한다. 그 유명하신 전인범 장군님이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때 전속부관으로서 국방부 장관님을 구출하고 남긴 소회이기도 하다. 논리적으로야 여러 논리가 있을게다. 전쟁사를 뒤져본다면 또 다른 이유가 있을지 모르겠다. 이러나저러나 수많은 Z세대 용사들에게 그들의 생명과 같은 머리를 짧게 자르라고 하는 것에는 많은 이유가 필요한 게 사실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모두 삼손 같아서 모든 자신감이 머리에서 나오는 게 분명하다.
스파르타! 가 아니고 어벤저스 어셈블! 도 아니다. 스코틀랜드의 처절한 생존 투쟁. 브레이브 하트.
결이 다른 나의 생각은 이렇다. 누구의 강요 때문이 아니라 내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머리를 짧게 자르는 거다. 젊은 세대가 왜 짧은 머리를 극도로 싫어하는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이 이유가 100%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주류 의견임은 분명하다. 왜 그렇게 자신하냐고? 나도 병사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두발 자유화가 있기 이전의 세대는 그나마 짧은 머리를 마주했던 경험이 있어서 낫지만 요즘 젊은 친구들(?)은 두발 자유화로 생애 처음으로 거울 앞에서 내 짧은 머리를 마주하는 게 어색하지 않을 수 없다. 짧게 잘린 머리를 가진 거울 속 나는... 사실 원빈이 아니고서야 예뻐 보이기 어렵다. 아니 혐오스럽기까지 할 수 있다. 그런 나를 마주한다는 것은 사실 고역이다. 또한 그렇게 짧은 머리를 타인에게 보이는 것은 더욱이 싫은 일이다. 여자 친구에게, 여사친에게는 더욱 그럴 것이다. 휴가를 앞두고 기어코 머리를 자르지 않고 조금이라도 더 길어서 나가고자 하는 마음이 그런 거다. 이것과 연계된 것으로 군이라고 하는 집단 자체가 존경을 받지 못한다는데 있다. 군이 존경받는 집단이라면 군의 상징인 짧은 머리도 인기가 있을 텐데 아쉽게도 그렇지 못한다. 그러니 군인처럼 보이고 싶지 않은 거다. 스스로를 군바리라고 부르며 또 다른 군인을 군바리라고 부른다. 자기들만.
위의 세 가지 주된 이유 때문에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머리가 짧던 길던 나는 변함없다. 빛나는 20대 청춘의 시절은 머리가 짧다고 잠시 멈추고 길다고 흘러가는 것도 아니다. 내 인생의 앨범 한 페이지에 짧은 찰나(하지만 그 안에 있으면 무한의 시간처럼 느껴지는)에 불과하지만 그 한 페이지마저도 짧은 머리로 채우는 것이 용납이 안 되는 것이다. 이해가 된다. 사랑받고 싶지만 스스로도 사랑할 수 없는 요즘 젊은 세대들의 아픔을 이해한다. 그래서 머리를 자르라고 하기보다는 자신을 사랑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BTS의 노래처럼 Love yourself가 먼저다. 그래야지 사랑받는 사람이 되는 거다. 나 스스로도 나를 사랑해주지 못하는데 타인이 날 사랑해주는 것은 부모와 하나님의 사랑 말고는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타인에게 보이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타인이 내 머리가 짧다고 어색하게 느끼는 것은 오래간만에 만났을 때 찰나일 것이다. 그 이후부터는 상대방 역시 짧은 머리의 내가 아닌 그냥 나를 느끼고 받아들일 것이지만 나 혼자 계속 짧은 머리를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사회에 있는 친구들은 사실 무한의 시간이라고 느끼지 않고 오히려 휴가 나와서 몇 번 만났는데 벌써 전역이야?라는 전역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을 할 만큼 빠르게 시간이 지난다고 느낄 것이다. 오히려 군에 와서 늠름해진 모습. 성장하는 모습. 무엇보다 자신의 생을 머리 스타일과 무관하게 빛나게 살아내는 모습을 보길 원할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나. 나를 사랑할 수 있는 나. 그래서 겉모습이 조금 변한 나조차 용기 있게 마주할 수 있는 나여야 한다. 더해 내가 처한 환경과 내가 있는 곳, 내가 입고 있는 옷과 무관하게 빛나는 내 삶을 살아내는 나여야 한다. 나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조금 멋진 옷, 멋진 차, 좋은 집을 소유한다고 한들 본케가 개차반이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차가 벤츠가 아니라 내가 벤츠여야 한다는 거다. 내가 두발 정리를 하는 이유다. 거울 앞에 짧은 머리의 나를 객관적으로 마주한다면 그렇게 썩 잘난 외모는 아니지만 그 머리를 가진 나를 마주할 용기, 짧은 머리의 거울 속 나에게 시원스러운 미소로 화답할 수 있는 나를 사랑하는 마음. 장교이기 때문에 군대의 기간이기 때문에 짧은 머리, 깔끔하게 자른 수염, 각종 패치에 실팝 하나 없이 단정하게 입고 바르게 서있는 각 잡힌 모습. 무엇보다 그러한 외적인 모습뿐이 아닌 지금 이 순간 장교로서 살아가고 있는 내 모습을 사랑하는 것. 젊은 세대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이 직업을 사랑하는 것. 드라마 D.P에서 나온 상당수의 부조리를 당했지만 군의 청년을 변화시키고 그들과 함께 동행하자고 두 번째 입대를 나의 선택을 사랑하는 것이다.
결혼 10주년을 지난 지금 아내와 결혼할 수 있던 소회를 밝히자면 아내는 그렇게 애국심 있는 대한민국의 청년 사관이 좋았다고 했다. 장교로서 짧은 머리와 깔끔한 외모가 좋았다고 했다. 야근을 밥먹듯이 해도 피곤한 기색 없이 웃는 모습이 좋았다고 했다. 이 모든 것은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삶을 빛나게 살아내는 모습을 좋아한 것이다. 나 역시 나의 그런 면을 봐주는 아내가 좋았으며, 아내 역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빛나게 살아내고 있던 여자이기에 우리 둘은 결혼해서 지금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결이 다른 나의 제안 '두발 정리하세요.' 규정을 지키고 그저 군인다운 모습을 유지하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나를 사랑하라는 것이다. 빛나는 이 순간을 짧은 머리 때문에 스스로 꺼버리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길 바라는 것이다. 10년 뒤 내가 지금의 나에게 물어본다면, 그 순간 너는 스스로의 삶을 사랑하며 빛나는 모습으로 존재했냐고 묻는다면, 타인의 눈을 피해 조금이라도 머리를 길게 유지하려 노력했고, 누가 혹여나 지적할까 내내 마음 졸이며, 가장 아름다울 청춘의 시기에 나의 성장보다는 모근의 성장만 꾀했던 나에게 떳떳하게 'Yes'라고 대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두발 정리하세요. 이 말의 이면에는 이 말이 숨겨져 있다.
Love yourself whatever you are, wherever you are, whenever you are, whoever you are.
Live your shiny days. Environment never can make your life dark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