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 끊기면 육지 가야지.
1년 살이 할 요량으로 내려간 제주에 3년째 살고 있다. 금강산 가다 설악산에 눌러앉은 울산바위 마냥 우리 역시 제주에 눌러앉았다. 제주에 내려온 첫해부터 지금까지 좋은 이웃을 계속 만나고 있다. 이보다 감사한 일이 있을까. 덕분에 이맘때 우리 집은 귤이 끊이질 않는다. 주황빛과 귤향이 가득한 제주 우리 집뿐 아니라 육지 여기저기도 향기가 퍼진다. 처음엔 멋모르고 우체국 택배로 보냈다가 택배비 폭탄을 맞고 지금은 귤 박스에 정성스레 보낸다. 박스가 조금 비싸지만 택배비 고려하면 더 싸다. 육지 올라와서 일한 지 좀 되다 보니 나도 감을 잃었는지 5kg이면 충분하다고 호언장담하다가 하루 만에 동내고 10kg를 받았지만 이틀 만에 동났다. 그 와중에 우리 엄마는 그 어느 때보다 이웃 농사 풍년이라 120kg 넘는 귤을 얻어왔다고 한다.
그렇다고 받아먹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남한테 신세 지고 못 사는 성격인 엄마는 이래저래 또 잘도 갚고 다니신다. 곧 무 시즌도 온다. 무 시즌이 오면 또 무를 잔뜩 얻어오겠지. 무청도 잘 말려 겨우내 먹게 될 것이다. 아내가 보내준 추수감사절 예배당 사진에는 정말 추수에 감사할 풍족함이 쌓여있었다. 육지 교회에 다닐 때는 과일바구니와 같은 돈 주고 산 농산물이었다면 제주 교회의 강대상엔 각자가 소출해낸 혹은 이웃 농사를 통해 얻어온 것들이 쌓여있어 더 풍족해 보였다. 얻어온 귤을 나누니 또 얻어온 루비 키위, 레드 키위가 돌아온다. 제주 삶의 매력을 꼽으라면 바로 이거다. 이웃사촌이 요즘 시대 사라졌다고 하는데 제주에서 잃었던 이웃사촌을 재회했다. 이렇게 좋은 이웃을 만나니 우리 역시 좋은 이웃이 되고자 노력한다. 좋은 이웃과 살아가는 삶. 그게 에피쿠로스가 말한 선한 기쁨의 삶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제주에는 귤 떨어지면 정 떨어졌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조금 더 해서 왕따라는 말도 있고, 육지 가야 한다는 말도 있다. 제주 생활 3년 차에 감사하게도 아직은 정 떨어지진 않은 것 같다. 앞으로도 좋은 이웃으로 지내며 나누길 소망한다. 우리가 나눌 수 있는 것이 있음에 감사하고, 그분들이 우리에게 나눠줄 수 있음에 감사하다. 오랜 친구가 제주 생활을 꿈꾸고 있다. 그 친구에게도 좋은 이웃이 생기면 좋겠다 바라본다. 더불어 글을 통해 우리의 좋은 이웃이 되어준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전한다.
소랑하민 웃당보민 행복해진덴 햄쩌! 고치 제주서 살아봅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