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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취미생활

37년 만에 드디어 바이올린을 잡다.

by 제주 아빠


십여 년 전 '프랑스인의 중산층 기준'이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조르주 퐁피두 전 프랑스 대통령이 언급했다고 하는데 정확한 사실 여부는 알 수 없다. 여러 기사에도 언급된 적이 있는 만큼 사실에 가까우리라 생각된다. 여하튼 그 당시 이런 이슈에 나는 프랑스에 가서도 나는 중산층일 수 있겠다 싶어서 기분 좋았던 기억이 난다. 다만, 당시 이 언급이 이슈가 된 것은 물질 만능주의가 뿌리 깊게 박혀버린 한국 사회에서의 중산층 기준과 비교하기 위한 자학적이고 냉소적인 이유 때문이었기 때문에 씁쓸한 마음도 같이 들었다. 왜 우리나라 사회는 항상 물질적인 것을 갖고 기준을 삼을까.


download.png 2013년 머니투데이 기사에서 발췌(프랑스와 미국에서 중산층이지만 한국에서는 극빈에 가까운 하류층인 작가의 삶)


어릴 때 엄마 덕분에 피아노를 잠시 배운 적이 있다. 체르니 40번까지 배웠는데 잦은 이사에 더 배우지 못하고 결국 그만뒀다. 게다가 사각의 작은 방에서 피아노를 배우고 있노라면 하얀색 모나미 볼펜으로 손가락을 부드럽게 굽혀야 한다고 손가락 마디를 골라서 쳐대던 선생님 덕분에 흥미를 갖기도 어려웠다. 그저 꾸역꾸역 배웠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 분야에 관심이 많고 워낙 흥미를 느꼈던 터라 그만두고 싶진 않고 차라리 바이올린을 배워보고 싶다고 했었는데 결국 배워보지 못하였다. 생각해보면 당시 바이올린을 배운다는 것은(아니 애초에 예술을 한다는 것은) 재산이 꽤 있어야만 가능했다. 피아노 학원비도 가계에 부담이 됐는데 그나마 피아노는 개인 악기가 없어도 학원에서 할 수 있지만 바이올린은 개인 악기가 있어야만 했다. 진입 장벽에 매우 높은 고급 취미였다. 어쩌면 프랑스인의 중산층 기준에 다룰 수 있는 악기 하나가 있어야 한다는 것도 돈이 있어야만 하는 건 아닐까 헛웃음이 나기도 한다. 당시 장교였던 아버지의 빠듯한 월급에서 고상한 취미로 바이올린을 하기엔 쉽지 않았으리라. 엄마 마음도 이해가 간다. 동생 역시 발레에 매우 소질이 있어서 전국 콩쿠르에서 상도 타고 했지만 너무 비싼 작품비, 복장 비용 때문에 그만했으니 취미 생활로 바이올린을 한다는 것이 분수에 안 맞다고 생각할 밖에.


6차 교육과정으로 학교를 다녔던 나는 음악을 고1까지 배웠고 미술은 중3까지 배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요즘 와서 느끼는 생각에 음악과 미술과 같은 예술이 어느 나이에 그만 배워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는 게 참 안타깝기 그지없다. 고1 음악 수행평가 때 슈베르트의 세레나데를 독일어로 암기해 불렀고 A+을 받았다. 작곡 시험에서도 A+을 받은 적이 있는 바 지금도 음악에 대한 나의 열정은 식을 줄(?) 모른다. 어찌 보면 이것 때문에 우리가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반문하곤 한다. 자주 언급하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의 명언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 깊이 아로새겨져 있다.


의학, 법률, 경제, 기술 따위는 삶의 수단에 불과 하지만, 시와 미, 낭만, 사랑 이야말로 삶의 목적이다.

최근에 가족 모두와 함께 감격하며 봤던 영화 '소울'에서도 우리가 사는 목적에 대해 일깨워준다. 제주도에서 매일 아침 해의 떠오름을 느끼고 앞마당의 잔디 색깔이 변하는 것을 보며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새의 지저귐과 나비의 날갯짓, 벌의 앵앵거림과 한라산 정상의 적설을 보며 살아가는 것. 천지를 창조하신 신의 위대함과 그 섭리의 완벽한 조화를 느끼고 감사하며, 찬양하는 것. 그것 외에 우리가 사는 목적이 있을까? 한 후배가 곧 임관을 앞두고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면 좋겠냐며 질문을 했다. 군사 전략 시간에 배운 수단, 방법, 목표를 배우면서 인생의 목표가 무엇인지 교수님의 질문에 자신 역시 되돌아보게 되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통해 무엇인가를 이루는 게 목표라고 착각하고 있다. 장교는 장군이 되는 것이 목표이고, 사업가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목표이며, 회사원은 승진하는 것이 목표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인생의 목표를 이루는데 필요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라고 답해주었다. 수단을 목표로 삼는다면 삶은 불행해질 것이다. 장교가 장군이 되는 비율은 동기생 전체 중에서 5% 내외일 것이다. 4성 장군이 되는 것은 1%도 되지 않는 것이다. 그 사람들만 목표를 이루었다고 한다면 우리 삶은 너무 가혹하다.


아빠의 취미는 바로 그 인생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딸과 아들에게 보여주는 가르침이다. 종종 휴가 가서 피아노를 쳐주지만 충분히 연습할 시간도 공간도 (심지어 피아노도) 없는터라 학원이라도 다녀볼 요량이었으나 고성에는 피아노를 배울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속초까지 나가야 되는데 속초에 나가서 피아노를 계속 치자니 차라리 새로운 것을 배워보자는 마음에 내 오랜 염원 속에 묵혀두었던 작은 꿈 책자를 꺼내 먼지를 툴툴 털고 펼쳤다. 어릴 적 나의 모습 그대로 간직된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은 마음. 그렇게 시작된 아빠의 새로운 취미. 만 37세가 되어서야 내돈내산으로 바이올린을 시작하게 된 것이니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마침 지난번 휴가 때 딸아이가 피아노와 그림을 배워보고 싶다고 하여 피아노, 미술학원을 등록해서 지출이 빠듯했지만 딸아이가 배울 때 아빠도 배우는 아빠로 함께 하고 싶어 아내에게 양해를 구하고 학원을 등록했다. 가정이 있는 가장이 이렇게 비싼 학원비와 악기를 구매하는 것이 못내 미안했지만 그런 남편을 응원해주는 아내에게도 너무나 고마웠다. 마침 크리스마스 연주회를 위해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연습하는 딸아이와 함께 나도 그 곡을 연습하겠노라 했다. 크리스마스 때는 안타깝게도 가족 상봉이 이루어지지 않겠지만 구주가 오신 기쁨은 1년 365일 누려야 하기에 내년에 만났을 때 같이 연주할 수 있다면 이 얼마나 큰 기쁨이겠는가.


KakaoTalk_20211212_211316389.jpg 사뭇 진지하다. 재밌어할 뿐 아니라 열심히 한다. 무엇보다 자기가 스스로 노래를 만드는 것을 즐겨한다는 점에서 나를 닮았다 느낀다.


가족은 하나님이 주신 가장 작은 공동체다. 그 가정이 존재함 역시 주를 찬양하고, 그분의 인자하심을 함께 누리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가장 작은 성가대는 가정이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가족 음악단을 꿈꾼다. 그 자체가 삶의 목적이기도 하다. 시, 미, 낭만, 사랑이 이 가족 음악단에 모두 담겨있다. 37살의 늦은 나이에 잡은 바이올린이지만 열심히 하면 20년 뒤엔 파가니니를 연주할지 누가 알겠는가? 설령 그리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 작은 몸집의 악기에서 나오는 날카롭고 선명한 음색으로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딸아이와 함께 연주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되었다고 생각한다.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좋은 가르침이 될 것이며, 나에게도 있어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 그 행복과 즐거움은 이미 지난번 결혼 10주년 홈파티 때 느껴본 바가 있기에 더욱 기대가 된다. 딸아이는 부모를 위해 'Over the rainbow'를 연주해주었고 나는 아내를 위해 '다행이다.'를 연주하며 노래 불러주었다.


이제 막 피아노를 시작한 딸아이를 응원한다. 악기를 배운다는 것은 사실 지난한 시간을 견뎌야 하는 것이다. 결코 즐겁지만은 않다. 사각의 방에서 모나미 볼펜으로 손등을 맞지 않아도 되는 때에 딸아이가 피아노를 배우게 된 것은 다행이다. 다만 아이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또 다른 무엇인가가 있다면 그것은 함께 그 지난한 시간을 동행해주는 아빠의 바이올린 교습이 아닐까. 피아노 초보자와 바이올린 초보자가 함께 그 시간을 걸으며 우리 삶에 진정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깨달아가는 여정을 나선다. 악기 하나쯤은 다룰 수 있어야 한다는 프랑스의 중산층 기준은 속절없이 노래나 부르고 한량 같은 배짱이 프랑스인이라서가 아닐 것이다. 오랜 유럽 땅의 역사 속에서 가장 먼저 시민 혁명을 꽃피웠던 그들이 겪은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깨달음에서 오는 결론이라 믿는다. 좁은 사각의 방은 여전하다. 방음이 잘 되지 않는 숙소에서 연습하고자 약음기도 주문했다. 유튜브에 새로운 구독 채널이 생기기 시작한다. 취미를 갖고 그것을 즐길 줄 아는 아빠. 나는 놀 줄 아는 아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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