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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 아빠 Jul 29. 2020

#5 우리에게 필요했던 바로 그 집

동화 속에 나오는 넓은 정원과 2층 공주님, 왕자님 방


 넓은 정원이 있는 2층 집. 우리 작은 아이의 에너지를 품을 수 있을 정도의 너른 마당이 필요했고, 육지에서 오실 손님들을 위해 사랑방이 필요했다. 이사 날짜는 11월로 정했고, 10월에 아내와 아이들만 집 계약을 위해 제주도에 보냈다. 아내에게도 첫 도전이고 나에겐 미안한 부탁이었다. 블로그를 뒤져서 괜찮은 집을 추렸지만 신구간이 아닌 때라 집이 별로 없었다. 게다가 마음에 드는 집은 너무 비싸고, 그렇지 않으면 너무 싸서 적당한 수준의 집이 없었다. 제주까지 힘들게 내려갔지만 끝내 아주 마음에 드는 집을 계약할 수 없었다. 제주 전역을 고려하면 더 있었겠지만 나는 서귀포시를 고집했다. 육지를 등져야 한다. 남쪽으로 남쪽으로... 표선으로...


그. 런. 데


역시 하나님은 날 버리시지 않는구나. 차선으로 선택한 아주 작은 마당이 있는(절대 작은 아이를 품을 수 없는) 2층 집을 계약하기 위해 가는 도중 나에게 문자가 왔다. "사장님이 보증금 x00, 연세 x,x00에 해주신데요." 손가락이 바빠졌다. 아내가 지금 계약서에 사인하러 가는 중이니 잡아야 했다. 최선책인 지금의 우리 집이 내가 감당 가능한 값으로 제시된 것이다. "여보. 코지 타운 가봐. 거기 가격 조정됐어." 마침 아내는 그 근처를 지나고 있었고 우회전을 해서 바로 집으로 들어왔다. "오빠. 여기다."


조마조마했다. 사장님은 계약금도, 계약서도 필요 없으니 그냥 와서 살란다. 아니 뭐 이런 경우가 있나. 그러다가 다른 사람이 계약금 걸면 홀랑 넘기시려고? 조금 찝찝한 마음이었지만 사장님에게서 풍기는 좋은 사람의 향기를 믿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2달 후. 코지 타운 3동은 1년 간 우리 집이 됐고, 우리는 제주특별자치도민이 됐다. 한반도 부속도서의 외로운 69만 명 중 4명이 된 거다. 제주특별자치도 도장이 찍힌 주민등록증은 기념품이자 입장권이 됐다.


손님이 없을 때 2층은 아이들의 차지다. 작은 아이들에게는 조금이라도 더 '높은 곳'에서 세상을 보는 것이 신나는 일이다. 마치 키팅 선생님이 우리에게 단상 위로 가보라 한 것처럼


 처음엔 2층 집이니 에어비엔비 사업을 해볼까 고민했다. 이내 마음을 접었다. 나름대로 사람들과 어울려보려고 한 것이었으나 생각보다 많은 지인들이 우리 집 방문을 원했고 지인들에게 제공하기에도 빠듯한 일정들이었다. 첫 스타트는 동고동락했던 동료들과 그 가정, 가족 모두가 친구로 지냈던 대성이네가 방문했다. 첫 가족 방문으로는 장모님과 처남댁이었다. 누군가에게 쉼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제주에서의 삶은 분명 내가 선택했지만 국가 제도에 의해서 혜택 받는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았다면 나도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이 나쁘지 않은 삶의 방식이라 믿는다. 그들이 마음껏 우리 집에서 머물다 향기를 남기고 간다면 나에게도 소소한 행복일 테다. 예수님께서도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집에 오는 손님은 곧 자신과 같이 돌보라고 하셨기에.


하지만 손님이 안 계실 때 2층은 자연스레 아이들의 차지가 됐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다는 것은 자신들이 더 성장한 것처럼 느끼게 해주나 보다. 자신들이 결코 볼 수 없는 다른 시각으로 보는 것을 호기심 많은 아이들은 좋아했다. 2층은 햇살이 잘 들어 겨울인데도 한낮 내부 온도가 25도까지 올라갔다. 널찍한 테라스는 상시 소풍 온 것처럼 느끼게 해 줬다. 바다까지 직선거리는 1km 남짓이지만 높지 않은 터에 지어져 바다가 보이진 않았다. 그래도 해풍이 불 때면 파도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화장실도 딸려 있어서 사랑방으로 내놓기에도 제격이었다. 1년을 살아야 하기에 가정집처럼 꾸미고 싶었다. 가정집과 숙박업소의 차이는 책꽂이의 유무라고 생각했다. 책꽂이에 책이 혀있고 어디서든 꺼내볼 수 있어야 가정집답다. 단색의 저렴하고 단조로운 책꽂이를 쿠팡으로 구매해서 집 이곳저곳에 놓았다. 전자 피아노도 들고 와 2층 통유리 창문 아래에 두었다. 풍경을 보며 연주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이렇게 방을 꾸미고 나니 우리 딸아이는 마치 자기가 라푼첼이라도 되는 것 마냥 테라스를 들락거리며 난간 밖을 구경했다. 동화 속 그 집이었고, 우리는 모두 왕과 왕비 그리고 공주와 왕자가 됐다. 마당을 마음껏 뛰노는 나그네는 우리를 지켜주는 용감한 수호신이었으리라.


쉬이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다. 아이들에게 이곳은 동화 그 자체고, 천국이다. 살고 있는 우리 아이들이나 놀러 온 친구들이나 누구나 여기선 동화 속 주인공이 되어 설렌다.


 1층의 첫인상은 딱 숙박업소 같은 느낌이었다. 일단 바닥이 대리석 바닥이다. 처음엔 너무 까부는 우리 아이들이 미끄러져 넘어질까 걱정했지만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노느라 그럴 일은 없어 보였다. 게다가 아파트 3층에 살았던 터라 여기선 마음껏 뛰어도 된다는 것을 아이들도 본능적으로 느끼는 듯했다. 그렇게 뛸 거면 차라리 튼튼한 게 나으리라.


절제된 멋이 있는 아일랜드 식탁을 전면에 내세운 부엌은 요리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했다. 거실 TV는 우리 집 TV보다 훨씬 컸기에 육지에서 가져온 플레이스테이션을 하기에 참 좋았다. 이것은 아이들보다 내가 신난 부분이다. 안방으로 들어가면 화장실과 연결된 문이 하나 더 있고 붙박이장이 있어 그나마 가정집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책꽂이며 옷가지, 생활 용품 등을 잘 정리해서 놓으니 정말 내 집 같아 더욱 애정이 생겼다. 이곳에서의 1년이 기대된다.


2,000평의 대지에 9동뿐인 코지 타운. 우리 집은 3동으로 오른쪽 맨 아랫집. 우리 넷과 손님 한 두 가정을 수용하기에 충분하다. 주변에는 황금향, 감귤, 무밭이 조화롭다.


 우리 집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넓은 정원이다. 대지 2,000평의 넓은 땅에 고작 9채의 타운하우스만 지어놨다. 제주도 그 어딜 가도 이렇게 비효율적인 건축물은 없을 것이다. 보통 분양을 하건 숙박업, 임대업을 하건 좁은 땅에 많이 지어야 조금이라도 수익이 더 나는 게 상식인데 어찌하다 보니 여기엔 이렇게 듬성듬성 집을 지었다. 우리 집은 그중에서도 구석 쪽에 위치해 올레 담장과 120평에 달하는 마당을 단독으로 쓸 수 있는 구조였다. 앞마당은 우리 넷이 뛰어놀기에도 충분했고 뒷마당은 자동차 주차공간으로 쓰기에 제격이었다.


높게 뻗은 후박나무는 여름철 뜨거운 햇볕으로부터 차를 보호하기에도 제격 일터이다. 한쪽 구석엔 아직은 정돈되지 않은 텃밭도 있어 봄을 기다리게 만들었다. 적당하게 구성된 정원의 수목들은 철쭉, 소철, 야자수, 동백나무로 서로 멋들어지게 어우러져 있었다. 특히 동백나무와 야자수가 하트 모양으로 귀엽고 아기자기하게 서있었다. 동백나무는 한창 꽃을 피우고 있는 중이라 더욱 빛이 났다.


 그 어느 하나 흠잡을 데가 없는 우리 집. 여기가 우리 집이라니. 벌써부터 1년 뒤 떠나야 하는 순간이 아쉬워졌다. 우리에게 필요했던 그 집에 우리가 살게 됐다. 그리고 이 집을 함께 공유하며 육지의 많은 친구들이 쉼이 되길 바랐다. 모두가 동화 속 주인공을 꿈꾸길 바라며 그렇게 살기로 마음먹었다.


 아직은 겨울이라 잔디도 푸르름을 사리며 휴식 중이다. 제주 바람은 두 뺨을 거칠고 붉게 만들 만큼 차갑기도 하다. 그렇기에 봄이 오면 얼마나 더 이 집이 예뻐질지 기대가 된다. 제주 바다를 닮은 파란 하늘과 몽실몽실 피어난 솜사탕 같은 구름. 그리고 푸른 잔디와 예쁜 꽃들. 이어서 올 뜨거운 제주의 태양빛 아래 눈부실 이 마당. 청명하고 높은 하늘을 간직할 가을까지... 1년의 계절을 오롯이 이곳에서 겪어보리라. 계절이 변해가는 제주와 함께 성장하는 우리 가족의 모습을 함께 기대하며...


감귤 가격을 맞추기 위해 과잉 생산량을 처분한다. 고맙게도 처분장소가 우리 집 돌담 앞이다. 겨우내 균형된 비타민 공급원을 획득한다. 제주 인심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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