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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 아빠 Jul 29. 2020

#4 낯선 곳에서 낯선 나를 만날 때

미치도록 놀고먹고 싶은 것이 우리의 진심


 여행을 떠난 다는 것은 익숙함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익숙함으로부터 멀어진 곳에서 자유함을 느끼는 것은 누구에게나 방랑벽이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원래 인간은 머무르기보다는 떠돌아다니는 존재가 아니었던가. 해외여행을 선호하는 이유도 그럴 것이다. 익숙한 풍경에서 벗어나 생경한 풍경 속에 나를 던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던져진 곳에서 우리는 낯선 풍경뿐 아니라 낯선 나를 만나기도 한다. 타지에서의 한 해 살이는 삶이 이어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긴 여행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낯선 나를 마주할 용기가 있어야지 시작할 수 있다. 익숙함에서 멀어질 때 다시 그 익숙함으로 돌아오지 못할까 두려워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낯선 나를 또 다른 익숙함이란 이름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나는 그것을 성장이라고 말한다.


파도는 단 한 번도 똑같이 치는 법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 모든 것을 파도라고 한다. 나 역시 단 한순간도 동일한 존재일 수 없지만 그 모든 내가 나다.


 새벽 기상, 늦은 취침의 반복. 하루를 조금이라도 허비할 수 없다는 치밀함. 그렇게 밀도 있게 꽉꽉 채워 사는 삶만이 나를 버티게 한다. 체력적으로 부담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게 해야지만 중고등학교 시절 남들보다 세 배는 허비한 인생의 시간들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열등감이 동력이다. 또한 사회가 요구하는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부지런함. 친절함.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지칠 줄 모르는 추진력. 이런 것들이 타자들이 내게 덕지덕지 붙여놓은 이름표들이다. 진짜 나는 누구인가.


멈추지 않는 추진력 뒤엔 놀고먹고 싶다는 욕망이 도사린다. 놀고먹어보는 삶을 마주해보기로 한다.


 제주도에 내려오고 늘어지게 늦잠을 잔다. 부스스한 얼굴로 일어나 모닝커피와 집 문 앞에 무성의하게 던져진 신문 꾸러미를 집어 들고 회색 지면에 흩어 뿌려진 검은 활자들, 그 와 비슷한 색의 커피를 마구 마구 흡입한다. 세상과 단절되지 않기 위한 유일한 나의 동아줄이다. 마당에 따스한 햇빛이 내리쬐면 그 길로 나가 마당 테이블에 앉는다. 무심한 듯 시곗바늘은 빨리도 달려가겠지만 개의치 않는다. 사실 집에 그 흔한 시계조차 두지 않았다. 몇 시인지 알 길은 핸드폰 시계 아니면 우리 마당을 지나고 있는 해의 위치 정도. 조바심내고 싶지 않아 시계를 두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그냥 이대로 잔디와 일심동체가 되고 싶다. 휴직이니 그 반대편에 복직이라고 하는 문이 분명 존재하지만 근처에도 얼씬거리고 싶지 않다. 그동안 내가 외쳐왔던 헌신과 희생의 가치는 어디에 둔 것일까. 그 가치를 움켜쥐고 살던 것이 나 맞는가.


스스로에게 그리고 우리 가족들에게 지금 이제 막 시작한 여행 아직 많이 남았으니 오늘은 좀 마음 편히 보내보자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본다. 아직 이 낯섦이 적응이 되질 않아 은근한 두려움도 느낀다. '1년 생각보다 짧은데 아무것도 안 하다가 시간만 버리는 거 아니야?', '뭐라도 결과물이 있어야 되는 거 아니야?'


유일한 노동이라면 육아겠다. 하지만 당장 보상이 떨어지는 일은 아니라서 보람 없을 때가 많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덜 수고롭게 놀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다는 것이다.


 낯설다. 이런 내가. 하지만 분명한 건 이런 나도 나다. 다만 언젠간 또 그때의 페르소나를 다시 집어 들고 그 전보다 더 단단히 머리에 뒤집어쓴 채 나아가야 할 것이란 거다. 여행은 끝이 있고 내 삶은 여행보다 길기에.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왜 우리는 다들 이렇게 가면을 쓰고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사회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우리 개개인의 행복보다는 사회 자체의 유지 아닌가. 리바이어던은 우리를 그렇게 매일매일 착취하고 있는데 우리는 모르고 있는 게 아닐까. 조금 더 솔직해지자. 다들 미치도록 놀고먹고 싶은 거 아닌가. 사실 걱정은 관성일 뿐 1년 동안 놀고먹을 생각에 우리는 지금 너무 신났다.


뭘 해도 신나는 매일매일이다. 그저 누워있어도, 앉아있어도, 어딜 돌아다녀도. 아이들은 환장한다. 이렇게 놀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하루 종일 놀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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