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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 아빠 Jul 29. 2020

#3 먼 길로 돌아가기

볼매 ; 볼수록 매력, 그 이름 제주도

 

 대한민국은 운이 좋은 나라다. 제주도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 옛날 이곳 제주도까지 배를 타고 와서 어떻게 복속시켰는지는 여러 설이 있지만 여하튼 그 당시 제주도의 가치를 알아본 육지의 선조들이 참 대단하다. 덕분에 제주도가 아예 다른 나라거나, 일본, 중국의 땅이 아닌 대한민국의 ‘부속도서’가 된 것이다.(근데 만약 다른 나라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재밌는 상상도 해본다. 참고로 제주어는 유네스코에서 육지에서 쓰는 한국어와 별개의 언어로 취급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소멸 직전의 아주 심각한 위기 언어로 분류된다.)


제주도는 육지와 확연히 다른 자연환경을 가진다. 아열대성 기후, 화산섬 등. 덕분에 1년 내내 이국적인 야자수 나무를 볼 수 있으며, 한라산과 360여 개의 오름이 섬 전체를 동화 속 세계로 만든다. 바다를 건너기 위해 비행기나 배 같은 수단을 이용해야 하기에 외국 가는 맛을 주기도 한다. 부모님 세대만 해도 제주도는 신혼여행지로도 제일 인기였다.


해질 무렵 함덕해수욕장. 파도가 칠 때마다 그 안에 노을이 넘실댄다. 하늘을 품은 바다 그리고 바다를 닮은 하늘.


 섬이라고 해서 결코 만만하게 볼게 아니다. 그 크기가 서울의 3배에 달한다.(바다 여행까지 생각할 때 바다 없는 서울을 고려하면 그 차이는 3배 이상이다.) 나태주 시인의 유명한 시 “풀꽃”에서 나온 구절처럼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러운 게 제주도다. 


하지만 우리나라 여가 문화가 늘 그렇듯 바쁜 일상에 주말 껴서 3박 4일, 4박 5일이 여행 기간의 전부고 모처럼 긴 휴가를 내려고 하면 국내 여행은 늘 아쉬워 해외로 쏜다. 제주도를 좀 아는 사람이나 제주에 자주, 오래 방문하는 듯하다. 그 계기도 아마 자세히 보고, 오래 본 경험에서 우러나오리라. 그렇다 보니 제주도로 오는 방법은 아마 비행기를 이용하는 경우가 절대적으로 많을 것이다. 빠르니까. 빨리 와야지 조금이라도 더 둘러볼 테니까.


그렇게 빨리 와서 조금이라도 더 둘러보려고 해도 시간은 더 빠르다. 생각보다 큰 섬인 제주의 동서남북을 돌아다니면 차에서 시간 보내다 돌아가기 일쑤다. 배를 타고 제주에 온다는 것은 그래서 특권이다. 시간이 많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 이곳 타운하우스에 뿌리를 내리고 늦가을부터 겨울 초입까지 시간이 지나는 동안 수많은 관광객들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늘 남아 있는 자요, 그들은 늘 떠나는 자였다. 제주에 남아있는 자일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그렇게 제주에 남아 있는 자로 지내다 보니 온갖 제주의 예쁨을 만끽한다.


더운 여름 시원한 냉면 흡입하듯 후루룩 삼키는 것이 아니라 컵까지 뜨거워져 좀처럼 손대지 못한 채 후후 불어 식혀먹는 커피를 맛볼 때처럼.


현맹춘 할머니가 조성하신 동백숲 덕분에 한겨울에 재현된 동화 속의 한 장면에서 너도나도 숲 속의 공주, 왕자가 되어본다.


 먼 길로 돌아다닌다. 표선해수욕장까지 일주동로를 이용하면 5분 거리다. 하지만 굳이 10분 걸리는 해안도로로 간다. 육지에서 그렇게 과속을 밥 먹듯 했던 내가 상시 어린이 보호구역을 달리는 듯 천천히 느리게. 그러다가 너무 아름다운 바다 풍경에 때로는 멈춰 서기도 한다. 목적지가 있어서 가는 것도 아니고 그저 바다가 있으니까.


제주도를 음미할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은 참으로 큰 행운이다. 그렇게 아무 바닷가에나 멈춰 서고 차에서 내려 어슬렁어슬렁 아무 현무암에나 털썩 주저앉아 홀짝홀짝 커피를 마시며 먼바다를 하염없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듣고 보고 마신다. 이따금 파도가 높게 칠 때면 투명한 코발트그린 빛깔의 바닷물 속에 거뭇한 물고기 떼들이 보인다. 파도에 몸을 맡기고 서핑을 즐기는 물고기들. 연신 낚싯대를 휘두르며 찌를 멀리 던져보는 낚시꾼들도 여유가 넘쳐 보인다. 모든 것이 느리게만 흘러가는 이 곳 제주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년이란 남은 시간 속에서 나는 느리게 걷기를 택한다. 먼 길로 다니기로 마음먹는다. 빼곡히 다이어리에 써 내려간 여행 일정 대신 여백을 가득가득 둔 채 그곳을 바다로, 돌로, 풀로, 하늘로 채운다. 남들이 보지 못하고 스쳐 지나간 곳을, 남들이 멈추지 않고 차창 너머로 지나쳐 버린 곳을 나는 밟아본다.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른 바다가 햇빛에 반짝일 땐 코발트 그린색으로 변한다. 위태해 보이는 갯바위 끄트막에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사이를 해치고 찌를 던지는 낚시꾼.


 누군가 나에게 제주 여행을 추천한다면 나는 지체 없이 아무것도 하지 말다 가라고 할 것이다. 시시각각 제주의 하늘이 변해가는 모습을, 비가 오는 제주도의 풍광을, 끊임없이 현무암을 조각하려는 파도의 노력을 그저 감상하고 앉아 있으라고. 그리고 먼 길로 돌아오라고 하겠다. 배를 타고 와보라고. 하늘길보다 더 푸른 바닷길을 헤쳐와 보라고. 섬에 닿으면 큰 도로가 아닌 중산간의 굽이 굽이 내륙 도로를 따라가라고. 그리고 그 끝에서 김영갑씨가 그랬던 것처럼 오름을 밟아보고 그 위에 서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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