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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 아빠 Jul 28. 2020

#2 삶의 선택들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 의해 결정되는 것.




과거 TV 프로그램의 한 장면 '그래 결심했어!'


 창조주는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 심지어 그 자유의지의 범위는 자신을 창조한 신의 존재를 믿을지 말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허락되었다. 하지만 광범위한 선택의 자유에 우리는 오히려 고통을 느끼기도 한다. 결정장애라는 말이 농담이 되곤 한다. TV나 유튜브 같은 매체의 채널을 고를 때, 점심 식사 메뉴를 고를 때 등과 같이 사소한 영역에서부터 결혼, 직업, 어떤 삶을 살지 와 같이 인생에 있어서 너무나도 중요한 영역까지 선택의 순간이 있고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이 고민이 꼭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신중하고 깊은 고민은 실수를 줄여줄 것이며, 후회를 줄여줄 것이다. 반대로 그렇게 고민했지만, 생각보다 고민할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아 허무한 예도 있지만 그럼에도 고민하는 과정에서 생각해본 여러 가지 선택지는 훗날의 결정에 알게 모르게 도움되기도 한다. 예전에 TV 프로그램 중엔 “그래 결정했어!”라며 2가지 선택에 따른 삶을 방향을 재밌게 각본 해서 보여주었던 것이 있었다. 이처럼 우리가 먼저 살아보고 맘에 드는 것을 선택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것은 가상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최근에는 이러한 선택을 도와줄 수 있는 알고리즘과 인공지능 기술이 개발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감각적이고 감성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인간이 해야 할 몫으로 남을 것이다.) 고민과 선택은 우리 삶의 기본적인 속성인듯하다. 오직 태어나는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우리는 선택을 해야만 한다.


우리 집은 3동이지만 그 어느 곳에도 표시가 없다. 매번 배송 오는 택배기사님들을 위해 문 앞에 직접 3동이라고 써붙인다.


 올바른 선택이란 무엇일까? 어떤 공식처럼 올바른 선택의 답을 구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게 우리네 삶이다. 그리고 한 번 내린 결정은 번복해서 살아볼 수 없기 때문에 애초에 정답이란 것 자체가 존재할 수 없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를 뿐이다. 이러한 우리는 인생(人生 ; 인간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애초부터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뭐든 맘먹은 대로 실현이 된다면 그건 신생(神生 ; 신의 삶) 일 것이다. 제주도에서 산다는 것 역시 내가 내려야 할 중요한 삶의 선택 중 하나였다. 게다가 이 선택은 나 혼자만의 결정으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 가족 구성원 4명의 동의를 구하는 것 자체가 결정을 더욱더 어렵게 만들었다. 하지만 고맙게도 우리 가족들은 모두 아빠의 결정, 남편의 결정에 무한한 신뢰로 찬성표를 던졌다. 꽤나 어려운 결정일뻔한 것이 생각보다 매우 쉽게 결정됐고, 이미 결정된 이후에는 진행이 일사천리였다. 결정하기 전에는 재봐야 하는 것들이 결정한 이후엔 자동적으로 실현됐다. 지금 와서도 그때의 선택이 참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방문하는 사람들을 위해 산타로 변신했다. 2층 집으로 정한 이유는 손님들을 위한 사랑방으로 내놓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우리 집이 쉼이 되길 바랐다.


 게다가 본의 아니게 코로나 19라고 하는 미증유의 세계적 대재앙이 지구를 강타한 순간 나는 노아의 방주에 올라타 안전한 곳에 있을 수 있게 됐다. 이점은 두고두고 미안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이 교차한다. 다른 선택을 했다고 해서 나의 삶이 고통 속에 파묻히진 않겠지만 중요한 것은 내 선택에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는 삶에 대한 자세가 아닐까? 다른 길을 걸어본 적 없기에 지금에 감사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선택이라는 것으로 하여금 인간의 삶을 더욱 아름답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선택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바로 살아왔던 길이다. 운이 좋게 직업 군인이라는 안정적인 직장을 택했고 제도권 내에서 아주 유용한 육아휴직을 쓸 수 있었으며, 휴직 기간에 비록 무급휴직이지만 육아 휴직 수당이 일정 부분 경제적 자유를 허용했다. 이 점에 있어서만큼은 나라에 참으로 감사한 마음이다. 반면에 제도권 내에서 머물러야 하는 이상 진급, 좋은 직책과 같은 중요한 요소들로부터 다소 거리를 두어야 하는 용기를 필요로 했다. 이는 내 삶의 굴곡 속에서 무엇이 더 나에게 좋은 선택인지를 배웠기 때문에 용기 낼 수 있었다. 당연히 이것은 ‘나’의 경우에 해당하기에 타인에게 내 결정이 주요할지는 전혀 알 수 없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알 수 있는 것이 ‘나’의 결정이 ‘타인’에게도 동일한 효과를 미치리란 기대 같은 것은 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결정을 강요하는 어떠한 것도 거부되어야 할 것이다. 이 말을 언급하는 이유는 이 선택을 하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선택에 대해 ‘조언’이라고 하는 명목 하에 ‘참견’을 했었고 반대로 내가 선택한 삶을 그저 살아갈 뿐인데 굳이 그것을 시샘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각자의 삶에 그저 충실하면 될 것을 그렇지 못한 것 역시 선택의 속성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타인이 선택한 삶은 내가 살아볼 수 없는 체험이다. 그렇기에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속담처럼 타인의 선택이 부러울 때가 생긴다. 이는 지금의 삶이 불만족스러울 때 드러나는 방어기제가 아닐까. 온전히 자신의 삶에 집중하는 태도를 보이는 사람에게 있어 결정은 고통이 아닌 삶의 활력이고 그렇기에 더욱 의미가 깊을 테지만 결정의 과정에서 고민하는 요소 중 내가 아닌 타인이 포함되어 있는, 가령 내가 짜장면을 골랐는데 앞에서 먹고 있는 사람의 짬뽕이 맛있어 보이면 어떡하지? 와 같은 경우 고통과 후회로 이끌게 될 것이다.


결국 선한 선택은 누군가에게 행복을 줄 수도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은 행복한 추억이라고 믿었고 그것을 주기 위해 결정했다.


 그렇게 기꺼운 마음으로 나에게 주어진 선택권들을 마음껏 써먹었다. 또한 가족이라는 공동체에 있기에 선택지가 교집합인 경우 마음껏 담론 했다. 우리의 상상만으로는 행복하기 그지없을 것 같은 제주도에서의 삶,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는 안갯속에 있는 육아휴직 이후의 삶, 아이가 삶의 결정들을 조금 더 일찍 깨닫고 행복한 삶을 스스로 선택하길 바라는 마음에 시작한 홈스쿨링까지 우리의 삶이라고 하는 그 큰 도화지 위에 차곡차곡 점을 하나씩 찍어나갔다. 그렇게 찍어나간 점들이 이어져 우리를 육지에서 이곳 섬으로 건너올 수 있는 거대한 다리를 만들어주었다. 오늘도 나는 고민하고 선택지 중에 어떤 것을 고른다. 다른 선택지에 대한 미련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으나 그것이 회환이 될 만큼 시간이 차고 넘치진 않는다. 지금 오늘 이 순간을 온전히 밀도 있게 살아내는 것 역시 참으로 소중하다. 선택에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며 오늘도 살아간다. 점심 식사 후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대신 비가 오니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고른 것처럼...


표선항 부근의 멋진 카페 '코코티에'는 프라이빗 비치를 제공한다.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 수 있는 해변 덕분에 부모들은 차 한 잔의 사치를 마음껏 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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