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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 아빠 Jul 28. 2020

#1 제주에 살멍

육아휴직 그리고 제주 1년 살이.

 

유튜브 시리즈 영상 공개 - 1편 제주에 옵서 https://youtu.be/DdkMGr-1DMs


 제주도에 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오래도록 간직해왔다. 언젠간 이뤄지겠지라는 기대로 삶의 서재 구석진 한편에 잘 놓아뒀을 뿐이다. 어느 가정집이나 책꽂이에 잘 꽂혀 있을 테지만 그 존재를 거의 망각하다시피 한 ‘국어대사전’이라던가,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와 같았다. 어느 날 소복이 쌓인 먼지를 후후 불어내고 집어 들었다. “그래 가자. 제주도” 육아휴직을 내고 1년간의 제주살이를 한다는 것은 고민하면 고민할수록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은 아니었다. 그래서 고민 없이 결정했다. 하늘을 나는 새들조차 잘살게 해 주시는 우리의 창조주께서 '하물며' 귀하게 지으신 인간을 버리시겠는가. 살다 보면 살아지겠지. 그렇게 제주에 왔다.


출퇴근용으로 사용하던 전기차를 별도로 탁송 보내는 비용보다 지게차로 트럭에 싣는 편이 더 저렴했다.


 이사의 과정은 꽤나 복잡했다. 신구간에 주로 이사하는 제주도만의 토속신앙으로 인해 11월에 이사하는 것은 쉽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비용도 너무 많이 들었다. 이 비용을 최대한 아끼고자 이삿짐센터가 아닌 일반 트럭에 필요한 짐을 싣고 나머지는 내 차에 싣고 바다를 건너가기로 했다. 냉장고에 들어있던 양념장이며, 한 해를 보내며 입을 최소한의 옷가지, 혹시 몰라 여분으로 챙긴 이불까지 쾌적한 승차감을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세단에 욱여넣어 승차감 대신 기대감을 채웠다. 야반도주하듯 늦은 밤에 대전집을 뒤로하고 떠났다.


완도로 가는 길은 비좁았지만 즐거웠고, 낯선 곳에서의 하룻밤은 피곤했지만 설렜다. 처음으로 제주행 배편에 올라탈 땐 비가 오는 데다가 불편하게 장거리를 내려온 터라 꼴이 영 말이 아니었지만, 우리는 모두 신나서 들떠있었다. 2명의 특등실 요금과 2명의 삼등석 요금을 내고 네 가족이 모두 침대가 있는 특등실에서 오순도순 배로 떠나는 여행을 즐겼다. 성인이 된 이후에 거의 매년 제주도로 여행을 왔었지만, 배를 타고 제주 땅을 향해보긴 처음이다. 짧은 휴가 중 하나라도 더 즐겨야 하므로 비행기를 타서 최대한 이동 시간을 줄이는 것이 관건이다.


이렇게 배를 타고, 아니 정확히는 하루 전 완도까지 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부터 시작된 제주로 향하는 긴긴 길에서 자유함을 느낀다. 급할 것도 없고, 뭐라도 하나 더 구경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없다. 나는 제주에 살러 가니까. 그저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나가다 보면 제주에 도착하겠지. 시원하게 물살을 가르며 남해를 지나 첫 번째 목적지 추자도에 도착해 찰나의 시간 동안 섬사람들의 삶을 엿보았다. 추자도에도 학교가 있다는 것은 처음 안 사실이다. 제주해협을 통과하며 육지로부터 영영 멀어지는 느낌은 시원스럽다를 넘어 짜릿할 지경이었다. 애초부터 육지를 아예 등지고 살아보고자 제주도에서도 남쪽 구석에 위치한 표선 부근에 터를 정했으니 이 기분이 얼마나 좋을까. 배가 속도를 줄이고 멀리 짙은 구름 아래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섬이 보이기 시작했다.


완도항의 레드펄이란 배를 이용해 바다를 건넜다. 꽤나 큼지막한 배라 파도에도 잘 견뎌 멀미가 나지 않았다.


 제주도다. 방금 내가 온 이 길은 조선 정조 때 가뭄으로 죽어가는 제주를 살리기 위해 나라에서 보낸 진휼미 운반선이 모두 침몰해버린 그 길일 터인데 감사하게도 나는 무사히 살아서 제주에 왔다. 그땐 제주도민이 진휼미를 반겼을 테지만 나는 굳이 반겨주는 이가 아직 없으니 내가 제주의 좋은 이웃이 돼보고자 다짐한다. 하선한 이후에 이제 ‘우리 집’이라고 불릴 그곳까지 가는 길에 배가 너무 고파 이제 막 이주해 제주의 삶을 시작한 우리에게 어울릴만한 식당을 찾았다.


와흘 밥상의 제주스러운 메뉴는 담백하고 푸짐했다. 배부를 때까지 밥을 주시니 배가 안부를 수가 없었고 매일 바뀌는 메뉴는 매일매일 새로운 제주를 닮았다.


 와흘 밥상은 제주스러운 식당이었고 우리의 허기와 기대를 달래기에 아주 적당한 식당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이제 정말 우리 집이 될 그곳으로 향했다. 육지에서부터 가져온 렌터카가 아닌 “내 차”를 제주 땅에서 달린다는 것 자체가 이미 나에게 특권처럼 다가왔다. 물질적인 것에 크게 감흥이 없던 나조차도 번호판이 "하, 허, 호"가 아니라는 게 으쓱해졌다. 왠지 모를 든든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내 차 역시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난 제주의 아름다운 해변 도로를 달려본 차야.’ 이대로라면 어서 통일을 이뤄 북녘땅에서도 이 차를 달려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미쳤다. 어디든 갈 수 있지. 우리는 그래. 얼마 후 사진으로만 봤던 바로 그 집이 내 앞에 있었다.


1년 간 우리의 베이스캠프가 될 제주도 우리 집. 널찍한 마당과 아기자기한 2층이 매력적이었다. 뒷마당의 후박나무와 올레 돌담은 제주도를 한 껏 더 느끼게 해 준다.


 현실과 이상이 묘하게 섞여 내가 이곳에 실존하고 있는지 잠시 혼돈을 느꼈다. 숭고함이라는 가장 극적인 감정에 도달했다. 비록 끝이 있는, 아주 분명한 종료 시점이 정해져 있는 시작이었음에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영원한 숭고함의 느낌 가운데서 마음으로 육체로 한껏 제주의 공기를 받아들였다. 몸에 밴 습관 때문에 그 감각의 절정도 잠시. 빠르게 차에서 짐들을 꺼내 정리했다. 어서 다시 그 감정을 느끼고 싶어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손이, 발이 움직였다.


잠시 후 깔끔하게 정리된 방에 만족스러운 시선을 보내고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타서 마당에 앉았다. 다시 현실에서 이상으로 뛰쳐나온 나의 감각들이 초록과 황금빛이 섞인 늦가을 잔디 위에 뛰어놀았다. 약간은 흐리지만 포근함이 느껴졌던 늦은 오후 난 그곳에 서 있었다. 제주에서의 삶을 확고히 결정한 후 4개월쯤 지난날이었다.


해 질 녘 표선해수욕장. 표선은 남쪽에서 살짝 동쪽으로 치우친 마을로 바다를 등지면 멀리 한라산이 보인다. 해가 질 때는 이렇듯 장관을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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