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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 아빠 Jul 31. 2020

#6 제주도 설문대할망이 만들언?

한라산과 360여 개의 오름은 그녀의 흔적


https://youtu.be/uh4dTLJ9q9o

I lava you.



 약 120만 년 전 애니메이션에서 보는 것처럼 제주도가 생겨났다. 내가 제주도에게 느끼는 감정은 왼편의 섬보다는 오른편의 섬에 가깝다 하겠다. 예쁘고 아름답고 수줍다. 그런 제주도가 간직한 가장 수줍은 절경을 꼽으라면 단연코 한라산이다. 제주 신화에 따르면 설문대할망이 앞치마에 돌을 잔뜩 이고 와서 바다에 붓고 주먹과 손바닥으로 탕탕 쳐서 다지고 쌓아 만든 게 제주도라고 한다. 재밌는 신화다. 잠시 머릿속에 그려보자.(설문대할망은 왠지 모아나의 '데피티'와 비슷한 이미지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 '모아나'에서 심장을 찾은 데피티는 지구에 생기를 불어넣고 다시 바로 잠든다. 설문대할망도 한라산을 끼고 누워있었다고 하니 모아나는 사실 설문대할망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1,947m의 한라산은 남한 내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날씨가 좋을 때면 제주도 전역에서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남쪽에서 보는 한라산이 북쪽에서 보는 한라산보다 더 멋지다. 번영로를 타고 남에서 북으로 넘어갈 때 왼쪽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한라산의 자태에 가끔 전방주시태만을 저지르기도 한다. 이건 내 잘못이 아니다. 한라산이 예쁜 걸 어떡하나. 일주동로를 타고 서귀포로 갈 때도 마찬가지다. 오른쪽에 보이는 한라산이 우리 가족들의 혼을 뺏기도 한다. 남쪽면의 한라산을 제대로 보기에 좋은 장소가 있다면 제스코 마트 서귀포점일 거다. 뒤편 주차장에 날씨 좋은 날 쭉 뻗은 능선부터 한라산 정상까지 제대로 한라산의 경치를 즐길 수 있다.


제주 남쪽 어디선가 바라본 한라산.  영주산 뒤로 보이는 한라산과 주변의 많은 오름들. 붉게 물든 석양이 제주도의 신비로움을 한껏 더하게 만든다.


한라산 등반은 단연코 제주도 여행의 끝판왕이다. 제주 살이를 왔지만 아이들이 아직 어려 한라산 정상까지의 등반은 어려울 듯하여 가족들 다 떼놓고 혼자 가야지 되는데 그렇게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안산 산대장인 장모님께서 제주도에 오신다면 얘기가 달라지지. 12월 추운 겨울 방문하신 장모님 덕분에 한라산 등반을 할 수 있었다. 16년 만에 오르는 한라산 정상이다. 아쉽게 눈은 오지 않아 눈 쌓인 한라산의 절경은 볼 수 없었지만 날씨는 좋아서 오르면서 눈이 심심하진 않았다. 다만, 16년 만에 오르는 한라산인데 내 몸의 변화에 대해서 무관심했다. 초코파이며, 커피, 무릎담요, 여벌의 옷, 양말 등 완전군장 수준의 짐을 매고 거기에 환경 정화 활동하겠다고 쓰레기봉투와 집게까지 들고 "어머님 축지법 쓰시네." 수준의 안산 산대장님을 따라가려니 버거웠다. 이렇게까지 배낭에 싸매고 올 일이었나.


한라산 등반은 2개 탐방로로 정상에 이를 수 있다. 성판악과 관음사. 올라갈 땐 관음사 탐방로로 내려올 땐 성판악 탐방로로 내려오기로 했다. 아내가 차로 관음사까지 데려다주고 다 내려오면 성판악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시각에 한라산에 올랐다. 16년 전 눈 쌓인 한라산을 오를 때 아이젠이 없으면 출입 불가라고 했지만 아이젠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산에 올랐다가 친구랑 둘이 봅슬레이 코스처럼 얼어버린 한라산길을 기어서 내려왔던 기억이 있어 혹시 몰라 아이젠도 챙겼지만 배낭에 무게만 더할 뿐이었다. 새벽의 한라산은 불빛 하나 없이 어두컴컴하다. 오직 비타민 A, 루테인에 의지한 내 적응시로 길을 더듬어 갈 뿐이다. 천천히 갈 법도 한데 어머님은 역시 빠르시다. 먼저 출발한 등산객들 몇을 지나쳐 올라갔다. 모두 조용히 헉헉대는 숨소리만 낼 뿐이었다.


전국 산천 깊은 곳 어디든 전몰장병의 영이 서리지 않은 곳은 없을 것이다. 그들의 희생의 피로 덮인 대한민국에서 우리는 자유를 누린다.


관음사 코스로 오르는 길에는 특전사 전몰장병 추모비가 있다. 대통령 경호작전에 투입되기 위해 이동하던 특전사 요원을 태운 항공기가 추락하여 전원이 순직한 사고를 추모하기 위해 사고 당시 비행기가 추락한 그 지점에 원점비를 만들어 뒀다.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가서 한 번 보고 추모하는 마음을 갖기 위해 잠시 어머니와 이탈해서 걸었다. 분명 쓰레기를 버리지 말아 달라는 등의 문구가 있었음에도 그 깊은 곳까지 상당한 쓰레기가 버려져 있는 것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하나같이 고이 접힌 휴지라니... 왜 일까. 한라산 탐방로에는 화장실이 많이 없다. 웃는 얼굴에 침 안 뱉는다고 하는데 우리를 보며 미소 짓는 한라산에 쓰레기 버리는 사람들의 심리는 어떤 걸까.


한라산의 멋은 역시 구상나무다. 하지만 이제 한라산에서 구상나무를 보기 힘들다. 크리스마스트리로 많이 쓰이는 구상나무는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나무지만 멸종될 수목 1호가 될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기후변화로 겨우내 눈이 내리질 않아 눈이 녹아 생긴 물을 봄철에 쭉쭉 빨아먹고 커야 하는데 그렇질 못하니 고사하는 거다. 오르는 길에 한라산의 아름다웠던 모습에 구상나무 대신 삭막하게 하얀 기둥의 앙상한 흔적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우리보다 오래 이곳에서 터를 내리고 살았을 구상나무가 굴러온 돌인 우리 때문에 생명력을 다 해간다는 것이 참으로 마음 아프다. 한라산은 여전히 멋지고 아름답지만 자세히 들여다볼 때 그녀의 고통을 더욱 느낄 수 있다. 여행객뿐 아니라 제주도민들도 한라산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봐야 하는 이유다.


한라산은 화산활동으로 솟아올랐을 테고 이후엔 바람과 비와 달빛, 별빛이 함께 다듬었을 것이다. 태고의 아름다움을 간직했지만 구상나무의 죽음이 그녀를 더욱 처연하게 만든다.


출발할 때는 어둡고, 날씨도 흐렸고, 구름 속을 헤집고 나가느라 주변이 잘 보이지도 않았지만 해가 뜨고 구름을 지나니 비로소 그 아름다운 자태가 수줍게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겨울 한라산의 멋은 단연코 화이트 파운데이션을 한 여인의 얼굴처럼 하얗게 빛나는 모습이겠다. 허나 눈이 오지 않더라도 화산활동에 의해 그저 무작위로 만들어졌다고 하기엔 너무나도 아름다운 각종 봉우리와 계곡들이 대신한다. 구름을 발아래 두고 오르고 또 오르는 한라산. 멀리 가장 높이 솟은 정상이 보이지만 굽이 굽이 향하는 길이 끝이 없다. 배낭은 더욱 무거워져만 가고 허벅지는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 너무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하자는 핑계로 천천히 하지만 자주 쉬며 오른다. 멈출 때마다 주머니 속에서 휴대폰을 꺼내 연신 셔터를 누른다. 카메라 메모리뿐 아니라 내 뇌에 저장하기 위한 노력도 쉬지 않는다. 어떻게든 더 기억하고 싶지만 기억의 한계는 아쉬움을 더할 뿐이다.


스위스로 신혼여행을 떠났을 때 융프라우요흐에 오르기 전 봤던 수많은 봉우리와 산맥들이 더 아름답다 느꼈었다. 우리는 정상에 오르려고 노력하지만 정상에는 사실 의외로 별것이 없고 정상에 올랐다는 보람만 있을 때가 많다. 오히려 정상에 오르기 위해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이 더 극적인 것이다. 관음사 탐방로의 비경은 익히 알려져 있다. 한라산 정상보다 오히려 이 탐방로를 오르는 길에서 만나게 되는 경치가 어쩌면 물이 말라 조금은 삭막해 보이는 백록담보다 더 아름다울지 모른다. 마치 사람도 정수리보다는 얼굴이 더 보기 좋은 것처럼... 이는 인생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에게 왜 사냐건 묻는다면 그 삶의 최종 목적이라고 하는 알 수 없는 정상보다 살아가는 그 인생 자체가 더 아름답기에 오늘 우리가 살아간다고...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라고 했다. 그런데 그 하늘 아래 뫼가 때로는 하늘보다 더 고혹(蠱惑) 하니 결코 더 높지 않다(高)고 할 수 없겠다.


 한라산 정상엔 사람만큼이나 쓰레기도 많았다. 백록담 비석과 사진을 찍으려면 줄을 서야 했다. 그들의 로망은 이곳에 앉아 컵라면을 먹는 것이었나 보다. 다들 앉아서 컵라면을 후루룩 마시고 있었다. 그 아래에는 나무젓가락, 컵라면 수프 봉지 등이 쌓여갔다. 500ml 삼다수 페트병이 가장 많이 버려져 있는 것은 아이러니. 제주에서 생산되어 제주를 위해 판매되지만 제주를 병들게 한다. 초코파이와 아직까진 온기를 간직한 텀블러 속 진한 커피 한 잔에 피로를 녹인다. 16년 전 성판악 탐방로로 눈보라를 해치며 올라왔던 것이 생각난다. 그날 눈폭풍에 뒤덮였던 한라산은 나에게 20초 간 정상 전체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허락해줬다. 파란 하늘과 하얀 산이 너무나도 선명한 경계선을 보여줘서 원근의 입체감보다는 색판화에 찍어낸 그림 같았다. 오늘의 한라산은 다소 삭막하다. 16년 전에 비해 죽어 없어진 구상나무의 쓸쓸한 뒷모습과 온난화로 내리지 않는 눈이 백록담을 마르게 했기 때문일 것이다. 변한 것은 나뿐이 아니었다.


멀리서 보는 게 더 아름답다 느끼는 것은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싶은 진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눈이 내리지 않는 백록담의 겨울은 사실 초라하다. 정상이라고 하는 명성을 무색게 한


 씁쓸한 마음을 뒤로한 채 하지만 인간이 아무리 괴롭혀도 그 본질적 아름다움까지 훼손될 수 없는 그녀의 매력을 간직한 채 하산한다. 내려오는 길은 쓰레기를 주으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마우이가 '데피티'의 심장을 뺏어 '데카'로 변한 것처럼 한라산이 '데카'가 돼서 화산을 내뿜으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생겼다. 모를 일이다. 땅속에서 지구가 내뱉는 신음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게 우리 아닌가.


제주도는 설문대할망이 만들었다고 한다. 자신의 큰 키와 덩치를 자랑하며 커다란 바위를 옮기고 손으로 주먹으로 탕탕 쳐서 다지고 쌓고. 그렇게 만들어진 제주도는 여기저기 할망의 손길이 스며있다. 한라산에서 구름이 없을 때 아래를 내려다보면 섬 여기저기에 오름들이 잔뜩 솟아있다. 이 오름과 한라산이 바로 투박한 할망의 손을 대변하는 흔적일 것이다. 한라산을 언제 또 오를지 모르겠다. 대신 가족들과 함께 저기 아래 오름들을 점령해보고자 약속한다. 매주 목요일은 목오름이다. 오름 오르는 날로 정해서 할망이 두드렸다는 그곳에 올라서 보기로 한다.


한라산과 오름. 제주도를 대변하는 진정한 정체성일 것이다. 인간이 이곳에 발을 딛고 세워지기 시작한 인공적인 것들은 때론 제주답지 못하다. 해안선을 따라 달릴 때면 보이는 인공 양식장의 고압적인 콘크리트 벽과 바다의 정기를 빨아들이고 내뱉는 검은 인공 혈관. 제주도와 관련 없어 보이는 각종 박물관과 전시관. 한번 빠지면 좀처럼 나오기 힘들다는 죽음의 테트라포드 더미와 방파제들. 곳곳에 널린 쓰레기들까지 어느 것 하나 제주의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그때부터 지금까지 남아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인내심 많은 이 한라산과 오름들이야말로 진정한 제주의 주인이다.


제주도 지도를 펼친다. 오름들의 위치를 확인한다. 집에서 가까운 오름부터 하나씩 올라보고자 한다. 매오름을 갈 것이며, 성산일출봉에도 갈 것이다. 이후엔 백약이 오름, 아부오름, 다랑쉬오름을 오를 것이다. 오르내리는 길 쓰레기라도 주으며 그녀를 위로해야겠다. 아직 당신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노라고...


제주도민에게 오름은 애증의 존재다. 땅을 일구어야 작물 재배도, 집도 짓고 할 텐데 여기저기 솟아오른 오름이 방해된다. 하지만 오름의 매력을 안 관광객이 오름 때문에 제주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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