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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 아빠 Jul 31. 2020

#7 꼰대의 문턱 앞 주변인의 무위도식 자연인 되기.

제주에서 오롯이 자연인으로 놀고먹으며 2020년을 보내기에 앞서...

 * 표선해수욕장 일출. 기울어진 제주 여인의 물허벅에서 둥근 해와 찬란한 빛의 기둥이 쏟아진다. 제주의 먼바다가 허락한다면 표선해수욕장에서 언제든 이런 일출을 감상 가능하다. 새벽기도를 다니며 일출 보기를 자주 허락받았다. 부지런한 몇몇의 행인들이 연신 셔터를 눌러대거나 '스탕달 증후군'에 빠진듯한 표정으로 하염없이 먼바다를 바라본다.


 새해를 제주도에서 맞는다는 것은 아마도 새해 한라산에 올라 각오를 다지거나, 제주의 멋진 경치와 조화된 일출을 보기 위함일 것이다. 특히 그 이름에 걸맞은 '성산일출봉'은 새해를 맞이하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다. 행사도 많고 사람도 많다. 그 외에도 여러 다채로운 행사들이 제주에서 새해를 기념하며 열린다. 관광객으로 새해에 제주에 와본 적은 없다. 하지만 이제 이주민으로 제주에서 새해를 맞이 해본다. 여행객과 이주민 사이의 묘한 주변인으로 존재하는 우리로서는 엉덩이 들썩거리며 제주만의 새해를 기대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늘상 그렇듯 삶의 연속 선상에 있는 송구영신 예배를 택한다. 표선행복한교회는 작은 개척교회다. 올망졸망 몇 안 되는 신도들끼리 모여 새해를 기념하고 말씀 카드를 뽑는다. 집으로 오자마자 피곤한 몸을 뉘이고 내일 새벽 일출을 보겠다는 다짐으로 잠이 든다. 그러나 먼바다는 나에게 멋진 해를 호락호락하게 보여주진 않는다. 구름이 낮고 짙게 깔린 수평선 너머로 해가 떠 오르는 것을 보진 못하지만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됐다는 것은 느낀다. 2020년이다.


특정한 날 일출을 본다는 것은 우주의 허락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해는 늘 뜨지만 바로 그 날 구름 없이 맑은 하늘과, 피지 않은 바다 안개 그리고 새벽 기상을 할 의지가 필요하다.


2020년의 1월 1일에 뜨는 새해나 여기 살면서 앞으로 보게 될 새해나 매일이 새로운 해일뿐이고 사실은 그 태양은 45억 년 전 생성된 태양이 여전히 바로 그 태양이다라는 생각으로 아쉬워하지 않는다. 그저 기회가 된다면 보겠지. 허락된다면 나도 볼 수 있겠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부지런한 기상이다. 새해를 맞이해 기념하고자 성산일출봉에 오른다. 이틀 전 예행연습 차 올라가 보면서 9살, 6살 아이들에게 조금 가파르지 않을까 했는데 기우였다. 6살짜리 아이는 거의 뛰어오르다시피 했다. 홈스쿨링을 하고 있는 9살짜리 딸아이는 이런 것 하나하나가 과목과 같다. 오늘은 체육과 자연, 사회에 대해서 배운다. 6살짜리 아들내미는 그냥 망아지 같다. 잠시도 멈추는 법이 없다. 쉴 새 없이 뛰고 또 뛴다. 그렇게 첫 도전을 성공적으로 끝낸 아이들에게 도전의 의미에 대해서 설명해준다. 나에게도, 아내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제주의 삶은 도전이다. 2020년의 제주에서의 삶이 기대가 된다.


성산일출봉은 일출만 장관인 게 아니다. 이렇듯 지는 해도 참으로 멋지다. 저물어가는 2019년의 해를 보며 지난 한 해 내가 한 모든 선택들에 감사함을 느낀다.


 2020년. 만 35세. 한국 나이로 37세. 한창 벌어야 한다는 그런 나이. 마흔을 앞두었으나 여전히 사회에서는 어린 축에 속하는 나이. 시니어들의 입장에선 여전히 어리기에 "Latte is horse."를 들어야 하는 나이면서, 90년 대생들의 중간보스로 꼰대의 문턱에 진입하고 있지만 깨닫지 못하는 나이. 아파트 한 채 정도는 대출금 끼고 보유해야 하는 나이. 그렇기에 어깨 위에 올려진 짐은 꽤나 무거워진 나이. 두 아이의 아버지이자 아내의 남편이란 타이틀을 가지고 세상과 싸워 이겨야지만 먹고살 수 있는 나이. 주변인이다. 어느 한 집단에 속하지 못하는 주변인의 나이에 세상을 등지고 가족의 품에 안긴다. 육아휴직을 신청한 것은 그 주변인에서조차 멀어지는 것을 의미했다. 스스로 자연인이라고 한다.


만 35세의 나이에 자연인이 됐다. 한시적이지만 놀고먹는 백수다. 백수의 삶을 마음껏 누릴 한 해가 왔다. 2020년은 나에게도 우리 가족 구성원들에게도 분명 의미 있는 한 해가 될 것이다. 이러한 기대감을 더없이 극대화시킬 제주 이 땅에 나는 지금 서있다. 이러한 선택에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사실을 말하자면 계획은 없다.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아갈 뿐이다. 지금은 다시 오지 않으니까. 카르페 디엠(Carpe Diem). 키팅 선생님이 속삭였다.


의학, 법률, 경제, 기술 따위는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수단에 불과하다.
하지만 시, 미, 낭만, 사랑이야 말로 삶의 목적이다.    - 죽은 시인의 사회-

   

새해부터 성산일출봉에 오르느라 하얗게 불태웠다. 저 아이들에게 새해란 무슨 의미일까. 이제 막 8살이 9살로, 5살이 6살로 됐다는 게 큰 의미가 있을까?


넉넉해진 시간 속에 내 삶을 곱씹어 보기로 한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철학적 사색이 충만했던 고대 그리스 사회나 르네상스 시절의 현인들은 아마도 시간이 남아돌았을 것이다. 그날 벌어 그날 먹고 살기 바쁜 세상 속에서 사색이라는 것은 쉽게 허락되는 영역이 아니다. 게다가 그 사색으로 하여금 사람들을 존재의 목적을 깨닫게 한다면, 자본가들의 노동력 착취에 분명 반항할 것이기에. "할 수 있을 수 없음. 혹은 할 수 없을 수 있음."은 요즘 같은 현대 사회에서 금기어다. 못하면? 넌 낙오자. 루저. 그런 사회에서 스스로 무위도식의 자연인이 된다는 것은...?


누군가는 허무주의 아니냐. 인생 포기했냐라고 묻기도 한다. 집도 없고, 보장된 미래도 없는데? 반대로 묻고 싶다. 타인에 의해, 리바이어던에 의해 규정지어진 삶을 그저 열심히 받아먹으며 사는 것이야말로 삶을 포기한 것 아니냐고. 나는 시, 미, 낭만, 사랑을 이루기 위해 사는 것일 뿐이라고. 2020년은 나에게 그런 면에서 더욱 의미 있는 해다. 사색과 명상, 기도를 통해 무위도식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다. 놀고먹는 삶 속에서 인생을 깨닫는다. 어떻게 그렇게 되냐고? 나도 이제 시작해서 잘 모른다. 그저 책 속의 현인들이 새벽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밤새 와있는 업무 지시 메일을 확인하고, 전화 돌리며 현황 파악하고, 보고서 쓰고, 밥은 먹는 둥 마는 둥 욱여넣고, 다시 와서 눈이 빠지게 모니터 들여다보고,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아이들 잠들 때 퇴근해서 잠자기 전에 앉아 깊은 사색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는 내용을 본 적이 없을 뿐이다.


무위도식하는 것 같은 개 조차도 무언가를 하고 있다. 집을 지키거나, 재롱을 떨어 주인에게 마음의 위안을 주거나. 진정한 무위라는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인생이라는 긴 여행을 하고 있는 우리들 모두 각자의 여행길에서 외로운 존재다. 함께 걷고 있다면 그 여행에서 만나는 낯섦과 나 자신의 생소함에 대해서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그 감정의 해석은 모두 다르다. 그렇기에 거기에서 오는 불안함은 외로운 각자가 스스로 삼켜야 할 문제다. 그래서 더 외롭다. 애초에 외로운 존재들끼리 만나 표면적으로 공감하며 살아갈 뿐, 그 어떤 존재도 아토포스적 타자로 남을 뿐 나와 동일한 존재 일순 없다. 알고 보면 다 주변인인 것이다.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우리는 모두에게 있어 주변인이다.


자연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타인의 주변인이 되기보다 나 자신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막 시작하는 무위도식의 삶에서 먼저 내려놓아야 할 것은 타인에 의해 규정된 나. 그 페르소나 ; 가면이다. 이러한 삶의 태도가 큰 아이에게 홈스쿨링을 권유하게 만들었다.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아내도록. 자기 자신에 대해서 깨닫기도 전에 타인에 의해 규정된 나로 살아가는 것을 반대했다. 사실 8살짜리 아이가 무엇을 알겠느냐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렴풋이 그 말을 이해했는지 동의했고 절차에 의해 홈스쿨링을 하고 있다. 우리 가족 모두는 그러한 방향으로 살아갈 것이다. 제주에서의 1년은 아마도 그런 삶의 방향을 더욱 굳건히 만드는 숙성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쉽지 않은 길이라 하겠다. 내려놓고 자연인이 되려 하지만 처음으로 24시간 가족 모두가 함께 지내야 하는 시간들은 또 다른 마찰을 야기할 것이다. 아무리 좋은 환경이라고 아이들에게 제공해도 부모 만족이 되기 쉽다. 쉴 새 없이 불평하고 짜증 내는 것이 아이들의 속성일 수 있지만 부모 역시 그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화가 치미기 쉽다. 우리 네 명 모두가 자연인으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각자가 각자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되 가족 공동체로서 서로가 주변인이 되어야 할 때 누구 한 명의 양보에 의해서가 아닌 합의에 의해서 선을 찾아야 한다. 연습하는 거다. 아이들도 자연인으로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아이들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닌 존재하는 또 다른 한 인간이다. 부모는 그것을 인정하고, 아이는 그렇기에 세상으로 박차고 나아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오는 마찰은 우리 모두가 성숙해야지만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기대하고 있는 2020년은 생각보다 아름답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매일 우리는 성장하려 노력한다. 그 성장은 자연인으로의 성장이다. 각자가 스스로 행복을 찾는 것이다. 타인에 의해 영향받기보다는 감정의 선택, 관계의 선택, 결과의 선택 등 모든 것이 나로부터 시작됐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주변인으로서 살아왔던 나의 세계. 그 알을 파괴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 새로운 행복을 맛본다. 자연인으로서 살아가는 행복을. 이 곳 제주에서. 2020년에...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 데미안 -


우도에서 맞아 본 제주 바람은 경이로울 정도였다. 이 바람이 내게 불어 주변인으로 살아온 나를 모두 날려버리고 자연인으로의 나만 붙잡아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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