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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려요. 젊은이의 성장

BTS 활동 중단 선언을 지지합니다.

by 제주 아빠

* 사진 출처 : BTS 공식 트위터 계정


인간은 끊임없이 성장한다. 죽음은 성장의 멈춤을 뜻한다. 그렇기에 죽는 순간까지도 인간은 성장한다. 나이가 아주 어릴 땐 주로 신체의 성장을 겪는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생각의 성장을 겪는다. 완숙한 어른이 된 이후에는 마음의 성장을 겪는 것 같다. 이어령 선생님의 마지막 수업을 통해 어렴풋이 느낀다. 신체의 성장이 중요한 시기에는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는 게 중요하다. 뼈를 자극시키고 근육이 성장한다. 활발한 신체활동 후 푹 자는 것이 성장에 도움된다는 것은 헬스를 좋아하는 어른들도 다 아는 사실이다. 어느 정도 나이가 차면 생각이 성장하기 시작한다. 신체의 성장은 서서히 속도가 느려진다. 하지만 생각의 성장은 빠르고 예민하다. 내 존재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하고 고뇌한다. 생각의 성장은 마치 데미안의 새와 같다. 알을 파괴해야만 하지만 그 과정이 고통스럽다. 줄탁동시가 필요하다. 아프락사스에게로 날아가는 새는 충분한 생각의 성장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사랑하는 타자를 통해 나를 깨우치고 수단을 통해 목적을 깨우친다. 이 시기에 우리는 젊은이들에게 충분한 성장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한 현실을 마주한다.


BTS가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많은 언론사에서 그들의 활동 중단에 대해 하이브 주가가 폭락한 내용, 외신 기자들이 충격을 받았다는 내용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활동 중단의 이유와 BTS 멤버 개인의 고통 등 멤버 개인이 자기 자신과의 관계성에 대한 언급은 없다. 오직 사회와 그들의 관계성에 대해서 주로 언급한다. 이 순간 BTS 조차도 철저한 도구에 불과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이 사회는 아직 멀고 멀었다. 쥐어짜는 참기름 문화. 젊은이의 성장을 기다려주지 않는 문화. 어른들은 알고 보면 느릿느릿 이뤄냈으면서 젊은이들에겐 그런 여유를 주지도 않으면서 꼰대가 되어 그저 한심하다고 혀를 찰뿐이다. 과연 그 어른들은 지금의 젊은이와 동일한 상황에서도 지금의 성공을 이룰 수 있다고 자부하는 것일까? BTS의 활동 중단은 예견되어 있었다. 적어도 나는 예견했다. 지쳤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고 오히려 반갑기까지 하다. 좋아하는 BTS의 신곡을 한동안 기대할 수 없지만 나는 기다릴 수 있다. 아니 오히려 기대가 가득하다.


연습생 시절의 BTS는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무대에서 어른들의 말이 100% 맞는 마냥 따라갔다. 열심히도 따라갔고 어른들의 말은 어느 정도 맞았다. 성공을 거두기 시작했다. 이 시점에서 그들은 분명 이 성공을 그저 마냥 기분 좋게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젊은이들에게 갑작스러운 큰 성공은 오히려 아픔이기도 하다. 두렵기도 하고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 같은 느낌도 들 것이다. 소년등과가 가장 불행한 일 중 하나라고 했다. 게다가 그들은 정작 언급하지도 않은 군대 문제를 어른들이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최근의 BTS와 관련한 이슈들은 그들의 음악성에 대한 내용보다는 군대를 가야 하는지, 건보료를 제대로 납부했는지 등에 집중됐다. 세계적인 보이밴드에 대해 언급하는 우리나라 언론의 수준이다. 거기에 편승해 이 기회에 징병제와 모병제, 병역 혜택에 관한 각종 주장들을 고지식한 어른들이 마음껏 떠들기 시작했다. 정작 그들의 생각은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다. 그들을 지지하는 아미들과 MZ세대들에게 아무도 묻지 않았다. 몇 개의 숫자와 그래프들로 현혹된 어른들의 입장에 아미들은 입을 닫았다.


BTS에게는 성장이 필요했다. 쉼 없이 어른들의 말을 믿고 달려온 그들이 신체의 성장에서 생각의 성장이 필요한 상황에 어른들은 말한다. 나만 믿고 잘 따라오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가스 라이팅이다. 어디에서 많이 들어본 말이다. 세월호가 떠오른다. 세계 최고의 아티스트로 인기를 달리는 그들에게 조차 세월호에서 보여준 어른들의 가스 라이팅은 피해 가지 못했다. 잘 이끌어준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나 진짜 어른이라면 젊은이들의 성장을 기다려줄 수 있어야 한다. 생각의 성장은 템포가 빠르고 예민할 뿐 아니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 수 있다는 걱정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다려줘야 한다. 나 자신에 대해 탐구할 때 그 어떤 타인도 껴들을 필요가 없다.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나의 선택이고, 요청하지 않는 것도 나의 선택이다. 그저 묵묵하게 그들의 겪고 있는 생장의 고통, 알을 파괴하는 과정을 지켜봐 줘야 한다. 줄탁동시. 여기서의 '탁'은 기다림이다. 어미닭이 너무 세게 쪼아 바깥에서 껍질이 먼저 깨지면 부서져버려 태어날 수 없다. 탁은 섬세한 기다림이다. 아미와 MZ 세대들은 BTS의 성장을 기다릴 수 있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이었다. 조급함은 어른들이었다. 당장 돈을 벌어야 하니까. 물 만나면 노 저어야 하니까. 쥐어짜서라도 지금 당장 그들을 이용해야 하니까.


단기간에 너무 거대한 존재가 되어버린 그들의 표정에서 의기양양함, 자신감을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과연 그들의 선한 영향력은 그들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가에 대한 질문이 생겼다. 해야 하는 것을 알고 있고 할 수 있다면 하겠다는 의지는 있으나 나 스스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맞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을 것이다. 아티스트가 문화적 영향력으로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그 구체적인 권위에 대해서 스스로 질문했을 것이다. 정치적으로 얽매이지 않으면서 순수한 예술의 힘을 어떻게 발현해야 할지 궁금했을 것이다. 직접 적어온 대본을 펼쳐서 읽을 때면 가슴 벅찬 순간을 맞이했을 것이다. 하지만 RM의 모든 말을 모든 멤버가 동의했을지 궁금하다. 그 말이 의미하는 바를 모든 멤버가 이해했을지 궁금하다. 그들은 생각의 성장이 필요한 시점에 어른의 생각을 그저 읊어주는 존재로 전락하고 있던 것은 아닐지 마음이 아프다.


우리 사회는 젊은이의 성장에 유난히 야박하다. 그들은 다 했다는 말로 한방에 젊은이들의 투정을 잠재운다. 왜 빨리 성장해야 하는지 이유도 모른 채 그저 어미닭이 쪼아버린 계란 껍데기 틈새로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외부의 차가운 공기와 눈부심에 온몸을 떨며 날개를 채 펼치지도 못한 채 세상 밖으로 던져진다. 그렇지 않은 사회를 찾기 힘들 정도다. 존재 자체가 목적인 인간을 리바이어던의 수단으로 써야 하는 군대가 가장 심하다. 우리나라 연예계는 사실 악명 높기로 유명하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고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왜 우리는 공교육 12년을 무조건 지켜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왜 그 사이에 생각의 성장을 '선생님 말 들어.'라는 한 마디로 박탈하는 것일까. 내가 들어야 할 말은 내 내면의 말이 아닌가. 생각의 성장은 나 자신에 대한 질문이 우선인데 그 질문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암벽이 한국 사회에 존재한다. 철저한 어른들의 세계. 성장하는 경계인에게 기회가 허락되지 않고 기다림이 허락되지 않는 사회. 알고 보면 지금의 어른들은 그렇게 성장하지 않았다.


어른들은 반문한다. 언제까지 기다려주냐고. 답은 없다. 늦은 성장조차 선택이다. 저물어버리는 것조차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올바르게 신체의 성장을 겪고 생각의 성장의 과도기에 접어들었을 때 어른들의 '탁'이 진정성 있다면 젊은이는 자신의 선택에 삶을 맡길 수 있을 것이리라 확신한다. BTS의 성장이 기대된다. 그들이 아티스트로 어떤 성장을 겪을지 궁금하다. 아니 정확히는 어떤 인간으로 성장할지 궁금하다. 멤버 한 명 한 명이 각자의 개성을 갖고 BTS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재개할 수도 있지만 영영 BTS는 돌아오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진정 그들을 응원하는 나로서는 개개인의 행복을 염원하고 응원한다. 그들 개인이 겪을 성장통이 즐거운 이유다. 행복한 비명이라는 역설적인 표현이 있다. 그들이 BTS로 돌아오던 돌아오지 않던 7명의 성장하는 젊은이는 남아 있을 것이다. 진, 슈가, 제이홉, RM, 지민, 뷔, 정국. 이 일곱 명의 개인은 각자의 다른 속도로 다른 방향으로 성장할 것이다. 세계의 최정상을 찍어본 그들의 성장 과정에서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하던 우리 사회는 그들에게 감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음악 선생님이 된다 하더라도 멋진 선택일 것이며, 작곡가가 되어도 멋진 선택일 것이다. 음악을 더 이상 하지 않는 김연아와 같은 영향력 있는 셀럽으로 남게 되더라도 의미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성장하는 그들이 자기 자신의 삶을 선택한 것이기에. BTS의 활동 중단은 가요계에 있어서 중단 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개인에게 있어는 되레 드디어 시작된 성장의 첫걸음이다. 내가 기자라면 이렇게 기사를 다시 써보련다.


"진, 슈가, 제이홉, RM, 지민, 뷔, 정국 아름다운 청년들의 삶의 여정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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